29일 제주지법, 총 40명 피고인 전원 '무죄' 판결
70년 세월 듣고 싶은 말 들은 유족들 '오열'
재판부 "4.3 사건, 영문도 모른 채 이념 대립 속에 희생됐다"

▲ 재판부가 '무죄' 판결을 내리자 오열하는 유족 ©Newsjeju
▲ 재판부가 '무죄' 판결을 내리자 오열하는 유족 ©Newsjeju

"삶이 소중함에도 피고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극심한 이념 대립 속에 희생됐고, 목숨마저 빼앗겼습니다. 피고인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서러워할 봄이라도 있지만...여러분들은 모두 무죄입니다"

재판장의 '무죄' 판결에 법원 방청석은 환호성과 박수, 울음으로 뒤엉켰다. 제주 4.3 당시 불법 군사재판을 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수형인들이 약 70년이라는 인고의 세월 속 간절히 듣고 싶었던 이음절이다. 

29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부장판사 장찬수)는 4.3 직권재심에 청구된 40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직권재심은 지난해 출범한 '제주 4.3사건 직권 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이하 합동수행단)'이 수형인명부를 토대로 2,530명에 대해 순차적으로 청구하고 있다. 명단은 1948년 12월과 1949년 7월에 치러진 두 차례 군법회의에 회부돼 수형생활을 한 사람들이다. 

이날 직권재심은 오전 10시와 11시 두 차례 각각 20명씩 총 4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주요 사례를 보면 4.3 당시 A씨(남. 당시 17세)는 중학교 재학 중 자택에서 경찰에 연행돼 1948년 12월 군법회의에 의해 내란죄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아 인천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6․25 이후 행방불명됐다. 

농업에 종사했던 B씨(여. 당시 18세)는 4․3사건 이후 피난 생활을 하다가 군인에 연행돼 1949년 7월 군법회의에 의해 국방경비법 위반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전주형무소에서 복역 중 6․25 이후 행방불명됐다. 

▲ 합동수행단 변진환 검사가 피고인들에 무죄 판결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하고 있다. ©Newsjeju
▲ 합동수행단 변진환 검사가 피고인들에 무죄 판결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하고 있다. ©Newsjeju

재판에서 구형에 나선 합동수행단 변진환 검사는 "4.3 사건으로 약 3만명이 희생되는 비극이 제주에서 벌어졌다"며 "부모와 형제, 자매, 자식을 잃은 유족들은 통한의 세월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권재심으로 위법하고, 부당한 국가공권력이 바로 잡히길 바란다"며 "피고인들은 죄가 없어도 군경에 연행돼 처벌받았다. 모두 무죄 판결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내란죄,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오늘날 재판에 서게 됐다"며 "공소사실은 범죄 증명이 없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결했다. 

故 허봉애 수형인 딸인 허귀인씨는 "오늘 재판에 나와서야 아버지 죄명이 내란죄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며 "판사님이 무죄를 선고하시니, 정말 감사하다. '무죄' 판결을 듣지 못하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오른다"고 오열했다. 

▲ 제주지법 제4형사부 장찬수 부장판사가 4.3 사건 당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유족들 전원에 무죄 판결을 내렸다 ©Newsjeju
▲ 제주지법 제4형사부 장찬수 부장판사가 4.3 사건 당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유족들 전원에 무죄 판결을 내렸다 ©Newsjeju

한편 제주지법 제4형사부 장찬수 부장판사는 시 구절을 인용하고, 첨가하면서 4.3의 아픔을 헤아렸다. 다음은 전문이다. 

다시 봄이다. 되돌릴 수 없음을 알기에 꽃피는 봄에도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년년세세화상사 세세년년인불동)'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살암시민(살아가면) 살아진다'는 말처럼 삶이 아무리 험해도 살아있는 한 살기 마련이다.
그만큼 삶이 소중함에도 피고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극심한 이념 대립 속에 희생되었고 목숨마저 빼앗겼다. 피고인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은 설워할(서러워할) 봄이라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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