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제주지법, 특별재심 청구인 33명 무죄 판결
미군정 재판까지 '무죄' 역사적 판결 나와
검찰 "희생자와 유족 분들의 고통 공감, 사과와 위로"
법원 "청구인 모두 무죄"···"어르신, 이제는 편히 주무시길 바랍니다"

▲ 4.3 생존자 고태명 어르신이 법정에서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Newsjeju
▲ 4.3 생존자 고태명 어르신이 법정에서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Newsjeju

"이제는 편히 주무세요" 4.3 전담 재판부를 신설한 제주지법이 과거 일반재판 등에 의해 유죄 판결을 받은 청구인 33명의 아픔을 어루만졌다. 유족 측은 재판부에 감사를 표하며 눈물을 흘렸다.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부장판사 장찬수)는 29일 오후 2시 진행된 생존인 고태명 어르신(91세) 등 33명 4.3 특별재심에서 전원 무죄 판결을 내렸다. 

피고인들은 1947년 4월부터 1950년 8월까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에 올라 유죄 판결을 받았다. 피고인들은 수사 과정에서 불법 구금과 구타와 고문 등 거짓 진술을 강요받기도 했다. 

재심 대상자 중 생존자는 고태명 어르신이 유일하고, 나머지는 유족이다. 33명 중 31명은 일반재판으로, 2명은 군사재판을 통해 옥살이 등을 했다. 

재심청구는 지난해 5월부터 이뤄졌고, 재판부는 미군정 시기 판결(故 이경천. 남. 76세)을 대한민국 법원이 판단할 수 있을지 여부를 가장 고심했었다. 

대한민국 법원 혹은 군사법원이 심리해 선고한 재판이 아닌, '태평양 미국 육군총사령부' 아래 미국 육군에게 적용되는 절차법에 따른 선고 재판이기 때문이다. 즉, 주권면제 원칙 등 여러 분쟁의 우려가 존재했다. 

故 이경천 어르신은 1947년 4월12일 태평양 미국 육군 총사령부가 설치한 육군점령재판소에서 포고 2호 위반으로 징역 8개월에 5,000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고심 끝 재판부는 "이경천 어르신이 체포돼 구금된 상태에서 군정재판에 회부 전까지는 한국인에 의한 수사절차를 거쳤고, 그 과정에서 형사절차를 위반했다면 재심 이유로 삼아야 한다"며 올해 2월15일 재심 개시를 결정하고, 이날(3월29일) 특별재심을 열게 됐다. 

▲ 법원 방청석에 앉은 유족들이 재판부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Newsjeju
▲ 법원 방청석에 앉은 유족들이 재판부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Newsjeju

29일 특별재심에서 검찰은 "이 사건은 최초의 특별재심 사건으로 다양한 법리적 쟁점이 있었고, 특별재심의 필수적 절차와 증거 및 법리에 관해 6개월간 충분한 심리가 진행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검찰은 지난 70년간 계속된 희생자와 유족 분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고,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희생자 등 명예회복을 위해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해 주길 바란다"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변호인 측은 "미군정 재판을 받은 故 이경천 어르신도 명예회복을 받을 기회를 준 재판부에 감사드린다"며 "법정에 계신 고태명 어르신을 비롯한 억울하게 희생된 피고인들에게 부디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했다. 

유일한 생존자 고태명 어르신은 "지난 날 억울하게 고민을 당한 이후로 잘 걷지도 못한다"며 재판부에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당부했다.

▲ 무죄 판결 후 재판부는 고태명 어르신을 향해 "편히 주무시길 바란다"고 위로의 말은 전했다. ©Newsjeju
▲ 무죄 판결 후 재판부는 고태명 어르신을 향해 "편히 주무시길 바란다"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Newsjeju

제주지법 재판부는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의 구성요건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피고인들은 범죄사실이 없다고 주장한다"며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어 형사소송법에 의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말했다. 

무죄 선고 후 재판부는 고태명 어르신을 향해 "오늘부터는 부디 편하게 주무시길 바랍니다"라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故 이경천 어르신 동생인 이승찬씨는 "한 세기가 지났다. 살아온 세월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나마 기회를 준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전했다. 

재판을 마치고 4.3 도민연대 측은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제주지법 4.3전담재판부는 청구재심에서 공권력의 위법 사실을 바로 잡아 사법정의를 올곧게 구현했다"며 "재판부의 판결 의미를 '미완으로 남아있는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역사적인 판결'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 재판부의 '무죄' 판결에 허공을 응시하는 유족 ©Newsjeju
▲ 재판부의 '무죄' 판결에 허공을 응시하는 유족 ©Newsjeju
▲ 약 70년간 얽힌 억울함이 풀리자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유족 ©Newsjeju
▲ 약 70년간 얽힌 억울함이 풀리자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유족 ©Newsjeju

한편 29일 하루(오전 직권재심 총 40명, 오후 특별재심 33명) 4.3 희생자와 유족 총 73명에 대한 명예회복이 이뤄졌다. 검찰의 합동수행단 출범과 제주지법의 재판부 신설 등으로 신속성도 담보되고 있다. 

'제주4·3사건 직권 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이하 합동수행단)' 출범 배경은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 측이 법무부 장관에 직권 재심 청구를 권고하면서 시작됐다. 

제주4.3 위원회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15조 제1항에 의해 '수형인 2,530명에 대한 유죄판결의 직권 재심 청구'를 내세웠다. 

법무부는 2021년 11월22일 법률에 따라 직권 재심 청구 등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 회복에 최선을 다하도록 대검찰청에 지시했다. 

이 연장선으로 '합동수행단'은 지난해 11월24일 이제관 고검 검사를 단장으로 제주도에 터를 잡았다. 합동수행단은 2,530명의 명부를 확인하면서 직권 재심 청구 및 공판 수행 업무를 나서고 있다. 이날(29일) 오전 '무죄'가 선고된 직권재심 40명도 합동수행단의 노력의 결실이다. 

제주지방법원은 올해 2월 '4.3사건' 재심 전담재판부를 신설하고, 희생자 등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신설 재판부는 형사 합의부로 제4-1부와 제4-2부로 나뉜다. 재판장은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제주 4·3 재심 사건을 담당해왔던 장찬수 부장판사(종전 제2형사부)가 낙점됐다.

제주지법은 장찬수 부장판사가 4·3사건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재심 사건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처리해 줄 적임자로 판단했다. 4·3 전담 재판부는 장찬수 부장을 필두로 총 4명의 배석판사(제4-1부 2명, 제4-2부 2명)가 함께 나선다.

신설 재판부와 합동수행단의 신속한 재판 절차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억울한 희생자들의 울분이 조금은 풀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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