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민 역사장편소설 '펜안허우꽈'
차영민 역사장편소설 '펜안허우꽈'

모든 것은 하늘이 정해두었는지 모를 일이다. 거기서 한낱 한 사람이 그 뜻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탐라에 있는 시일이 기약 없이 늘어날수록 자신이 없어졌다. 이 시간들이 과연 후대에 어떠한 의미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 머릿속의 기억들은 얼마나 온전히 그대로 남길 수 있을까, 의문스러움은 좀처럼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늘의 뜻은 바꿀 수 없을지는 몰라도 방향은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결과는 정해져 있을 지라도 과정이 달라지면 어쩌면 결과 이후 새로운 시작은 하늘에서 선택권을 줄 지도 모를 일이다. 난 누구도 믿지 않는다. 절대적으로 모셔야 할 분도 믿지 않은 범위에 포함된다고 감히 고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들은 하나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 내 주변을 둘러싼 저 사람들의 움직임을 말이다.

저들은 모두 김통정 한 사람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저들의 끝은 이미 정해졌을 것이다. 예측은 할 수 있을지언정 완전히 알 수는 없다. 알려고 할수록 가까워지는 진실과는 더욱더 멀어질 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김통정을 살려서 개경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탐라에서 이대로 시간만 보낼 수는 없다. 눈을 피하는 것도 한계치에 다다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어찌 그를 온전히 개경으로 인도한단 말인가. 

“자네, 어딜 눈을 떼지 못 하는 겐가?”

김통정이 내 옆으로 다가와서 앉았다. 잠시 눈앞에 펼쳐진 저 멀리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시선은 뒀으나 인식하지는 않았다. 다시 눈을 깜빡여보았다. 당장 이대로 계속 앞만 보고 나아간다면, 저기 바다까지는 닿을 수 있을 터. 그곳에서 섬을 떠나는 배만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이 고려군이나 몽골군이 아니라면, 분명 개경으로 완전히 돌아갈 확실한 발판은 될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은 바다에 시선을 둔 김통정에게 손을 내밀었다. 

“같은 곳을 본다고 같이 움직일 순 없을 걸세.”

그러나 그의 시선은 내 손으로 조금도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눈을 크게 뜨고 저 멀리 바다를 바라보았다. 

“난 반드시 이 바다를 건널 것이네.”  

원하는 바다. 다시 손을 내밀었다. 지금 이대로 다시 일어나 나아가자고. 그러나 그가 원하는 방식은 달랐다. 단순히 혼자 몸으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함께 가겠다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 모여든 이 사람들과 함께. 그것도 탐라를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고려군과 몽골군을 완전히 몰아내겠다는 의지도 있었다. 

“자네가 나와 함께해야 할 것이야.”

그 과정에서 동행을 명확하게 제안하였다. 거의 통보 내지 명령에 가까웠다. 내겐 그의 말을 따라야 할 의무는 없었다. 그러나 함게 움직여야할 것은 분명했다. 따로 대답하지 않아도 그리해야 할 상황이었다. 문제는 이곳에 남은 세력들의 의지였다. 

“과연 마음 같지 될지 자신은 없네.”

김통정은 저들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추격을 피하고 바다를 건너고 따로 은신처까지 마련한 그들이었다. 그 정도까지 해냈다면 김통정의 바람처럼 최소한 탐라 탈환 정도는 해볼만한 시도였다. 그러나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저들의 움직임을 파악해보니 심상치가 않았다. 눈에 살기를 감추지 못 하는 김통정과 달리 저들은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그것은 언젠가 자신들을 추격해 토벌할 고려군이 대상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귀신처럼 찾아내 무자비하게 도살까지 서슴치 않을 몽골군에 대한 것도 역시 아니었다. 그보다 더 이들을 두렵게 만든 건, 매일 돌아오는 허기였다. 겉보기엔 은신처가 온전하였지만 정작 식량 조달은 쉬운 상황은 아니었다. 고르고 평평한 땅이 가까이에 없으니 따로 농사는 고사하고 뭐든 심어서 키울 여건이 아니었다. 그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날짐승들이 먹다 남긴 열매들을 가져오고, 크게 무기가 필요 없는 만만한 날짐승도 잡아보는 게 식량조달의 가장 중요한 방법이었다. 사냥이랍치고 김통정도 한 번씩 동행했지만 딱히 소득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몇몇 사람들 입에서는 나와 김통정을 자신들의 밥을 빼앗아먹는다며 노골적인 불만도 터져 나왔다. 

“역적들을 몰아내서 끼니도 되찾고, 집도 되찾고, 고향도 되찾을 것이오.”

한번씩 김통정은 사람들 앞에 나가서 외쳤지만, 정작 호응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와 가까운 몇몇 이들만 매번 힘 빠진 환호만 보탰을 뿐이었다. 이 상황을 명확하게 알아야 할 김통정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 한 눈치였다. 매일 사냥에 나섰고, 건장한 사람들을 모아 훈련에 매진하였다. 거기서 조금 더 발빠른 자들을 몇몇 바깥으로 내보내 소식들도 알아보게끔 하였는데 딱히 돌아오는 건 없었다. 애초에 나가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유의미한 내용도 알아낼 만큼 탐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기회는 분명 기습적으로 올 것일세. 그때를 놓치면 안 될 것이야.”

김통정은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를 기회를 기다렸다. 모든 것은 준비가 된 순간, 하늘이 움직여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완전히 무너뜨리는 일이 금방 다가올 줄은 예측도 못했을 것이다. 얼마 뒤 정탐을 내보낸 세 사람 중 단 한 사람만 돌아왔고, 그마저도 등에 큰 화살이 깊이 박힌 상태였다. 그 모습을 모든 사람들이 똑똑히 보았고, 김통정의 얼굴이 오랜만에 다시 어두워졌다.(계속)

소설가 차영민.
소설가 차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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