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전 제주지법, 4.3 희생자 청구재심 4명 모두 무죄 선고
제주 4.3 희생자 유족회 "재판부와 합동수행단 등에 감사하다"
"희생자 분들, 철자상 진입장벽 높아 재심청구 못하는 경우 많아"

▲ 제주 4·3희생자 유족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부의 무죄 판결에 감사를 전했다. 또 일반 재판도 직권재심이 도입돼야 한다면서 정치권에 당부했다. ©Newsjeju
▲ 제주 4·3희생자 유족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부의 무죄 판결에 감사를 전했다. 또 일반 재판도 직권재심이 도입돼야 한다면서 정치권에 당부했다. ©Newsjeju

제주 4.3특별재심 청구인 4명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판결로 올해 3월 첫 번째 일반재심 청구인 33명을 포함해 총 37명이 억울함을 풀었다. 

재판 선고 후 '제주 4.3 희생자 유족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부와 4.3합동수행단 등 관계자에 감사의 마음 등을 표하며 일반재판도 직권재심이 도입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31일 오전 10시30분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부장판사 장찬수)는 4.3희생자 특별재심에서 피고인 4명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날 무죄 판결을 받은 이는 모두 고인으로 강승하·김두창(내란 방조), 한창석(기타의 죄), 이경원(국가보안법위반) 희생자다. 

피고인들은 1947년부터 1948년 사이 불법적인 절차로 인해 자신의 죄명도 모른 채 유죄 판결받고, 형무소에 복역했다가 숨졌다. 

검찰은 "희생자와 유족 명예를 회복하고 불행한 과거사를 바로잡기 위해 피고인 모두에 무죄를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변호인은 유족을 대신해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열거했다. 

강승하, 김두창, 한창석 희생자는 4.3 당시 농사를 짓던 평범한 도민들이었다. 강승하·김두창 희생자는 적법한 절차도 없이 목포형무소에 끌려가 복역했다. 6.25 전쟁 이후에는 행방이나 소식조차 두절됐다. 

농업에 종사하던 한창석 희생자는 무장대에게 곡식을 제공했고, 마을청년회장이라는 사유로 외도파출소에서 고문을 당했다. 

당시 경찰은 임신 중인 한씨 아내를 조롱하고, 배를 걷어차는 폭행을 행사하기도 했다. 한창석씨는 수개월 후 출소했지만, 이미 온몸은 고문으로 망가졌다. 극심한 트라우마도 동반됐는데, 숨을 거두기 전까지 경찰만 봐도 겁을 내는 등 평범한 생활이 불가능했다고 변호인은 강조했다. 

서귀포경찰서에서 순경으로 근무하던 이경원씨는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죄명으로 체포돼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공소사실을 증명할 근거가 없기 때문에 무죄를 선고한다"며 "희생자들이 겪었을 일들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약 70년 세월이 지나서야 무죄 판결을 받은 희생자 유족들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강승하 희생자 아들 A씨는 "어머니는 평소 '아버지는 죄가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매일 잠이 들 때마다 우셨다"며 "동네에서 '호래자식'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언급했다. 

김두창 희생자 아들 B씨는 어린 시절 어머니 성을 따서 '오씨'로 지내오다가 20살이 되서야 아버지 고향을 찾아가 '김씨'로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학업 등 여러가지 힘든 청춘을 지냈다고도 해다. 

B씨 모친은 늘 "아버지는 법 없이도 살 순한 사람"이라고 말을 해왔다. 부친의 혐의를 알 수 없었던 B씨는 어느 날 자기 아들이 전달해준 판결문을 통해 아버지의 행방불명 과정과 당시 몸 상태를 확인했다. 
B씨는 "판결문에는 부친이 오른팔도 못 쓰고, 위도 썩어있다는 내용이 있다"며 "법 없이도 살 분이...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울음을 보였다. 

그러면서 "가끔 꿈에 아버지가 나와서 '네가 가정을 이뤄서 사는 것이 정말 좋다'라고 말씀하신다"며 "무죄 판결을 내려준 재판부에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법원 방청석에 앉은 유족들이 재판부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법원 방청석에 앉은 유족들이 재판부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 뉴스제주 사진 자료

한편 이날 오전 11시50분 '제주 4.3 희생자 유족회(이하 희생자 유족회)'는 제주지법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희생자 유족회 측은 "정의로운 판결을 내린 장찬수 재판부와 이재관 합동수행단 단장 등 관계자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4.3의 광기 속에 일반재판을 받아 억울한 수형인이 됐던 4명에 무죄 판결은 제주지법 형사4부 전담재판부 등 신속한 절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희생자 유족회는 희생자 재심재판(2021재고합33)이  검찰 항소로 늦어지게 된 사안에 대해 유감도 표했다.

유족회는 "앞서 재심 신청인 10여명은 절차상 파열음이 생겨 재판부의 재심개시 결정 이후 검찰이 즉시항고에 나섰다"며 "약 두 달 만인 최근에 광주고법에서 기각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검찰 항고는) 오랜 세월을 기다린 청구인들에게 또 다른 아픔과 좌절감을 줬다"며 "지체된 재심절차가 신속하게 재개되길 바라고, 검찰이 이를 반면교사 삼아 이어지는 재판과정에서 좀 더 전향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일반재판 4.3 희생자에 대해서도 직권재심의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 청구자격 제한 및 재심사유 불명확성 등 절차상 높은 진입 장벽이 있어서 법적 문턱을 낮춰야 한다"며 "정치권도 이 부분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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