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동부경찰서 '강도 살인' 혐의로 피의자 3명 구속송치
12월16일 제주 오라동 빌라서 살인 사건 발생
피해자와 친분 있는 주범 박씨, 관계 틀어지자 7회 범행 시도
경남 양산 부부, 금전적 이득 얻고자 살인 가담
주범 박씨 송치 때까지 "살인 교사 안했다" 주장

▲ 제주 오라동 청부 살인 사건 피의자들이 28일 오후 1시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됐다. 사진 왼쪽부터) 주범 박씨, 실행범 김씨와 아내 이씨 ©Newsjeju
▲ 제주 오라동 청부 살인 사건 피의자들이 28일 오후 1시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됐다. 사진 왼쪽부터) 주범 박씨, 실행범 김씨와 아내 이씨 ©Newsjeju

제주 유명 음식점 대표 살인사건은 피해자의 재산을 노린 범행으로 드러났다. "공동 투자자"를 주장한 주범은 사업권을 독점하고 피해자 재산까지 가로챌 목적으로 조사됐다. 주범과 경남 양산 청부 살인 부부는 총 7차례 범행을 계획하는 등 '완전 범죄'를 꿈꿨던 사안도 발각됐다. 

28일 오후 제주동부경찰서는 '강도 살인' 혐의가 적용된 주범 박모(56. 남)씨, 실행범 김모(51. 남)씨와 아내 이모(46. 여)씨를 구속 송치했다.

당초 주범 박씨는 '살인 교사', 김씨 부부는 '살인' 혐의가 적용됐지만,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를 죽인 뒤 집 안에서 금품을 갖고 나온 사안 등이 발견되면서 혐의 변동이 이뤄졌다.

이번 사건은 피해자 A씨(50대. 여)와 박씨 사이가 틀어지면서 살인으로 번졌다. 둘은 2018년 처음 알게 돼 친분을 쌓아왔다. 신뢰 균열은 '돈'에서 비롯됐다. 피해자 음식점 사업 증식 과정에서 마찰이 잦았고, 박씨는 거액의 돈을 빌리고도 변제를 하지 않았다. 

갈등의 끝은 살인이었다. 

박씨는 경남 양산을 고향으로 둔 실행범 김씨 부부에 유혹을 던졌다. 건설업 쪽에 종사하는 김씨는 최근 불경기로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았고, 2억원 채무도 떠안았다.

김씨 부부와 박씨는 올해 9월부터 범행 공모에 나섰다. 12월16일 발생한 살인까지 총 7회 범행을 시도했다. 

첫 시작은 교통사고였다. 9월18일부터 이틀간 피의자들은 A씨가 운영하는 식당 주변에서 사고를 가장한 사건을 모의했으나 실패했다. 9월 말과 10월 초에도 계속 교통사고를 내려고 했지만, 상황상 미수에 그쳤다. 

계획한 교통사고가 실패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피해자 주거지를 찾기로 했다. 박씨는 실행범 김씨에 주소와 빌라 비밀번호 등 사전 정보도 제공했다. 

가해 수위도 조금씩 높아졌다. "병원에 2~3개월 눕게 하라"는 주범 박씨의 교사(敎唆)는, "일어나지 못하게 해도 좋다", "범행 후에 죽을 확률은?", "아예 죽어도 좋다"고 했다. 다만 실행범 김씨의 진술로, 박씨는 "겁을 주라는 취지"라며 살인 교사 행위를 계속해서 부인 중이다. 

착수금은 2,000만원 가량으로 알려졌는데, 수사 과정에서 3,500만원으로 불어났다. 범행 후에는 김씨 부채 2억원을 갚아주고, 피해자의 식당 2호점 운영권 제공도 약속했다. 

▲ 제주 주택가에서 50대 여성이 숨지는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발빠른 수사로 피의자 3명을 붙잡고, 동기와 가담 여부를 조사할 방침이다 ©Newsjeju
▲ 제주시 오라동 빌라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Newsjeju

주거지 범행으로 변경한 김씨 부부는 11월2일 제주에 A씨 빌라를 찾아갔지만, 재차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 공동현관 비밀번호는 맞았으나 A씨 주거지 현관 비번이 틀렸다. 박씨와 사이가 틀어진 피해자가 비밀번호를 바꾼 것이다.

11월10일 김씨는 빌라 밖에서 피해자를 기다렸다. 귀가하는 A씨에게 폭력을 행사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미수로 끝났다. 우연히 빌라 근처를 지나는 순찰자를 보고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이들은 고심 끝에 비밀번호를 알아내서 집 안에 몰래 숨어들기로 가닥을 잡았다. 

계획을 수정한 김씨는 12월5일 다시 제주를 찾았다. 비밀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퀵 서비스' 기사 위장 방법을 택했다. 철저한 변장을 위해 입도 배편으로 오토바이도 갖고 온 김씨는 헬멧을 쓰고 빌라 현관으로 진압했다. 

사람들의 의심을 피한 뒤 A씨 문 앞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같은 날 저녁 회수해갔다. 몰카 영상은 A씨가 현관 비밀번호 4자리 중 3자리를 누르는 장면이 담겼다. 확인되지 않은 숫자 1개는 박씨가 알아냈다. 박씨는 입수한 세 자릿수를 토대로 총 비밀번호가 A씨와 관련된 기념일이라는 것을 유추했다. 

비밀번호를 손에 쥐게 된 김씨는 다시 경남 양산으로 돌아갔다. 김씨 부부는 범행 발생 하루 전인 12월15일 여수에서 배를 타고 SUV 차량을 가지고 제주로 왔다.

아내 이씨는 배를 예약할 때 남편 신원을 감췄다. 이전부터 여러 차례 제주에 오가면서도 이씨는 다른 신분증을 도용해 남편의 행적을 지웠다. 

사건 발생일 12월16일 오후, 김씨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A씨 주거지에 몰래 침입해 2~3시간가량 귀가를 기다렸다. 경찰은 CCTV에 찍힌 피해자 귀가 시간을 토대로 범행 시각을 16일 오후 3시2분부터 19분 사이로 추정한다. 

같은 날 아내 이씨는 피해자 뒤를 몰래 밟으면서 이동 동선을 남편에게 알린 것으로 조사됐다. 아내 연락으로 A씨 귀가 임박을 알고 있던 김씨는 집 안에 있는 둔기(아령)로 피해자 머리 등을 내리쳐 살해했다. 집에서 빠져나오면서 피해자 명품 가방과 현금다발도 챙겨 나왔다. 

살인을 저지른 김씨가 범행 현장에서 벗어나고 있는 모습. 주변 CCTV에 담긴 장면에서 피의자 손에는 종이가방이 있다. 피의자는 도주 과정에서 가방 안에 담긴 옷으로 갈아 입기도 했다.
살인을 저지른 김씨가 범행 현장에서 벗어나고 있는 모습. 주변 CCTV에 담긴 장면에서 피의자 손에는 종이가방이 있다. 피의자는 도주 과정에서 가방 안에 담긴 옷으로 갈아 입기도 했다.

총 7번의 범행을 계획했던 만큼 도주 과정도 치밀했다. 

살인 범행 후 김씨는 피해자 A씨 휴대폰을 갖고 나와 야외에 버렸다. 택시를 타고 제주시 용담 해안도로에 내린 실행범은 미리 준비한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김씨는 다시 택시를 이용해 제주 동문시장으로 갔다. 요금은 모두 현금으로 지불했다. 

도내에서 유동 인구가 많은 동문시장을 택한 김씨는 이곳에서 특별한 목적 없이 배회했다. 모든 과정은 범행 발각 시 경찰 추적을 따돌리거나 흔적을 지우기 위한 시도였다. 

동문시장을 서성거리던 김씨는 대기하고 있는 아내 SUV 차를 타고 제주항을 통해 사건 당일 곧바로 타지역으로 도주했다. 이 과정에서도 남편 김씨 여객선 탑승은 제3자 명의로, '유령' 탑승권이 이용됐다.

경찰이 청부 살인 지시를 내렸다고 지목한 주범 박씨는 경남 양산으로 올라가 김씨 부부를 만나기도 했다. 완전 범죄 꿈은 곧 깨졌다. 

살인사건 다음날 12월17일 피해자 가족으로부터 신고받은 경찰은 발빠른 수사에 나섰다. 피의자들은 흔적을 지웠지만, 수사망은 견고했다. 

방대한 분량의 주변 CCTV를 수거한 경찰은 실행범의 이동 동선을 모두 파악해냈고, 접수 이틀 만인 19일 경남 양산으로 올라가 김씨 부부를 붙잡았다. 주범 박씨는 제주에서 붙잡았다.

수사 초기부터 주범 박씨는 알리바이를 주장했고, 살인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그러나 다른 피의자들은 "(박씨가) 사건을 다 안고 가면, 길어야 5년 이내에 나오게 해주겠다"고 회유하는 등 증거인멸 시도를 진술했다. 

박씨는 평소 주변 지인들에게 "A씨가 운영하는 식당 사업권 공동 투자자고, 관리 이사를 담당한다"는 주장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는 사업 확장 등 사유로 자금이 필요했고, 박씨는 빈틈을 파고들어 자신 명의 토지를 담보로 내줬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도 나왔다. 

박씨의 명의 토지가 실제 본인 자산이 아니었다. 다른 피해자 B씨 등이 실소유자다. 금전을 약속하고 명의를 돌렸지만, 이행하지 않았다. 해당 사건은 경찰이 별건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동부경찰서는 피해자가 숨지면 '공동 투자자'라고 대외적으로 주장해 온 박씨가 A씨 가족들을 설득해 자신이 사업을 챙길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이날 오후 1시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포승줄에 묶인 주범 박씨는 "(가족들에게) 죄송하다. 살인 교사는 하지 않았다"고 짧게 말했다. 실행범 김씨는 "죄송하다. 죽을 죄를 지었다"고 했고, 아내 이씨는 "죄송하다"며 울먹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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