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발생한 제주 살인 미제 사건
살인 혐의, 1심 '무죄', 항소심 징역 12년, 대법원 '무죄'
대법원 판결, '무죄 추정의 원칙' 유지···"합리적·객관적 증거 없어"
새로운 증거 존재 가능성 낮아···사실상 제주 미제사건으로 남을 듯

1999년 발생한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교사범이 캄보디아에서 붙잡혀 8월18일 경찰과 함께 제주국제공항을 통해 송환돼 들어와 조사를 받고 있다.
1999년 발생한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교사범이 캄보디아에서 붙잡혀 제주국제공항을 통해 송환됐다. 

1999년 발생한 '제주 이승용 변호사 살인' 미제사건이 마침표가 아닌 물음표를 달게 됐다. "공소사실이 제대로 입증되지 않았다"며 대법원이 재판을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12일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살인'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모(56. 남)씨가 항소심에서 받은 징역 12년 형량을 파기 환송했다. 살인 혐의를 무죄로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제보 진술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증거나 구체적 정황도 존재하지 않고, 피고인은 직접 실행행위를 하지 않은 공동정범으로 기소됐다"며 "범죄 행위자 지위와 역할의 구체적 정황과 객관적 증거 등이 없다"고 했다. 

또 "원심 판단과 같이 제보 진술 일부의 신빙성을 인정하더라도, 정황증거를 갖고 살인 및 공모 사실을 인정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즉,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강조했다. 객관적 증거나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제주 출신인 이승용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졸업 후 검찰(사법시험 24회)에 입문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 등이 사법시험 동기다. 서울 등에서 검사 생활을 하던 이승용 변호사는 1992년 고향인 제주로 내려와 변호사 사무실을 차렸다. 

살인사건은 1999년 발생했다. 그해 11월5일 새벽 故 이승용 변호사(당시 44세. 남)는 제주북초등학교 북쪽 옛 체신아파트 입구 삼거리에 주차된 자신의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 추정 시각은 11월5일 새벽 5~6시 사이다. 

당시 이 변호사는 흉기에 가슴과 배를 3차례 찔린 상태였다. 부검 결과 사인은 심장 관통에 의한 과다출혈로 잠정적 결론 났다. 경찰은 괴한에게 일격을 당한 피해자가 차량 안으로 들어와 이동하려다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또 해당 사건을 '계획적 범행'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지만 결국 미궁으로 빠지며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잠들었다. 

제주판 미제로 먼지가 쌓이던 사건은 방송에서 다루면서 수면 위로 떠올라 재수사가 이뤄졌다. 방송은 자신을 과거 '유탁파' 조직원으로 소개한 피고인이 "변호사 살인을 교사했다"는 인터뷰가 담겼다. 

피고인 김씨는 1999년 당시 제주 유탁파 조직폭력배 행동 조직격으로 활동했다. 김씨는 같은 조직폭력배에 속한 '갈매기'라는 인물이 범행에 나섰다는 취지의 주장을 해왔다. 다만 직접 범행했다는 '갈매기'라는 인물은 2014년 8월 자살했다. 

재수사에 돌입한 검경은 지난해 4월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 적색수배에 나섰다. 캄보디아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숨어있던 김씨는 2021년 6월23일 현지 경찰관에 잡혔고, 8월18일 인천공항을 통해 국내로 들어와 결국 구속기소 됐다. 

김씨는 '살인'과 '협박' 혐의가 적용됐다. 협박 혐의는 이승용 변호사와는 무관하다. 방송 PD를 향해 위협을 가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사안이 적용됐다. 

제주지방법원 사진 자료

검·경 수사와 재판과정까지 피고인은 말을 계속 바꿨다. 

진술 번복은 크게 네 가지로 ①"내가 윗선 사주를 받았고, 실행은 갈매기(다른 조폭)가 했다" ②"윗선의 사주를 받은 것도, 범행 실행도 갈매기다"③"나도 갈매기도 범행에 관여를 안 했고, 나는 '리플리 증후군'이다" ④"윗선의 사주를 받은 것은 갈매기다. 나는 사건 발생 10년 후에 들은 내용일 뿐이다" 등이다. 

피고인은 경찰과 검찰 수사 과정에서 ①, ②, ③번 발언을 수시로 해왔다. 그러다가 재판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④번 주장을 내세웠다. 

진술의 흐름을 살펴보면 ①-②-③-①-③-①-③-②-④으로, 번복과 재번복을 거듭하다가 결국은 "나는 전혀 몰랐고, 사건 10년 후에 들었다"로 법원에서 입장을 바꾸기도 했다. 

2022년 2월17일 제주지법 1심 재판부는 살인 혐의는 '무죄'를, 협박 혐의는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피고인의 제보 진술은 신빙할 만하나, 살인의 고의 및 기능적 행위는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같은 해 8월17일 항소심 재판부는 협박 혐의는 1심과 동일한 판결을, 살인은 징역 12년을 내렸다. 살인의 고의도 인정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날 대법원 쟁점은 피고인 제보 진술의 '신빙성'과 살인의 '고의성'이었다. 대법원은 피고인 제보 진술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고 공소사실을 입증할 정도의 '신빙성'이 낮다고 봤다. 또 죽은 '갈매기' 조폭과 살인을 공모한 사실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 2부는 "피고인의 제보 진술과 정황증거만으로 유죄를 판단한 원심판결은 형사재판에 요구되는 증명의 정도, 진술의 신빙성 판단 등 법리를 오해했다"며 "공소사실 인정에 필요한 충분한 심리를 하지 않아 중대한 사실을 오인해 파기 환송했다"고 사유를 설명했다. 

파기환송 결과에 따라 새로운 증거가 입증되지 않은 한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은 결국 미궁 속에 남게 된다.  

저작권자 © 뉴스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