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제주지법, '강도 살인' 재판 진행
살인 청부자 주범, 실행범 부부에 "학교 재단 이사장이다" 속여
거짓말에 거짓말,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아가기도
변호인 "범행 공모하지 않았다"···"살인은 우발적"

제주 오라동 청부 살인 사건 피의자들이 28일 오후 1시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됐다. 사진 왼쪽부터) 주범 박씨, 실행범 김씨와 아내 이씨
제주 오라동 청부 살인 사건 피의자들이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됐다. 사진 왼쪽부터) 주범 박씨, 실행범 김씨와 아내 이씨

제주 유명 음식점 대표를 청부 살인한 사건 첫 재판이 열렸다. 수사기관이 살인 청부자로 지목한 주범은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50대 주범은 재력가 행세를 해왔고, 피해자를 비롯해 여러 여성에 금전적으로 접근했던 정황도 드러났다. 살인에 가담한 부부에게는 자신을 "학교 재단 이사장"이라고 속이며 금전적 유혹을 던졌다. 피해자를 '꽃뱀'으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16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부장판사 진재경)는 '강도 살인' 등 혐의가 적용된 주범 박모(57. 남)씨, 실행범 김모(52. 남)씨와 아내 이모(47. 여)씨 구속재판을 진행했다. 

이번 사건은 2022년 12월16일 오후 발생했다. 실행범 김씨가 제주도내 피해자 집에 몰래 숨어들었다가 귀가한 A씨(50대. 여)를 아령으로 내리쳐 살해 후 도주했다. 김씨와 부부는 12월 19일 경남 양산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주범 박씨는 같은 날 제주에서 잡혔다. 

검찰 등에 따르면 주범 박씨는 피해자 식당의 전 관리 이사로, 살인을 지시했다. 김씨는 살인 행위자고, 그의 아내 이씨는 조력 행위에 가담했다. 

사건은 피해자 A씨와 박씨 사이가 틀어지면서 살인으로 번졌다. 둘은 2018년 골프 연습장에서 처음 알게 돼 친분을 쌓아왔다. 당시 박씨는 재력가 행세를 하면서 다른 여성에 접근해 금원을 착복해 왔으나, 우연히 알게 된 피해자의 재산을 알게 된 후 의도적으로 접근했다고 검찰은 말했다. 

그 무렵, 피해자 A씨는 유명 음식점 인수를 위한 돈이 필요했다. 박씨는 재력가 행세를 하면서 피해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처럼 접근해 호감을 샀다. 실제로 돈이 없던 박씨는 여러 내연녀에게 돈을 빌려 제공하는 등 피해자에게 신뢰를 쌓았다. 

거짓된 신뢰는 오래가지 못했다. 사업 관련 갈등이 생기자 A씨는 2022년부터 박씨와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했다. 

관계 단절의 문제는 '돈'이었다. 박씨는 A씨로부터 억대 채무 변제를 요구받았다. 재력가 행세로 이곳저곳에서 빌리거나 속인 금원 해결까지 불어나자 박씨는 타개책으로 피해자의 식당 운영권 장악을 꿈꿨다.  

악한 마음을 품은 박씨는 경남 양산을 고향으로 둔 김씨 부부에 유혹을 던졌다. 피해자에 위협을 가할 '손'이 필요했다. 

건설업 쪽에 종사하는 김씨는 불경기로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았고, 2억원 채무도 떠안았다. 박씨는 김씨 부부에게 "채무 해결과 식당 운영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재력가 행세는 김씨 부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나는 학교 재단 이사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박씨는, 피해자와의 관계를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자가 내 재산을 가로채려 하는 꽃뱀이다"고 말을 하면서 나쁜 사람이라는 인식을 김씨 부부에게 심어줬다. 

▲ 제주 주택가에서 50대 여성이 숨지는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발빠른 수사로 피의자 3명을 붙잡고, 동기와 가담 여부를 조사할 방침이다 ©Newsjeju
▲ 제주 주택가에서 50대 여성이 숨지는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발빠른 수사로 피의자 3명을 붙잡았다. ©Newsjeju

김씨 부부와 박씨는 지난해 9월부터 범행 공모에 나섰다. 2022년 12월16일 발생한 살인까지 총 7회 범행을 시도했다. 

첫 시작은 교통사고였다. 9월18일부터 이틀간 피의자들은 A씨가 운영하는 식당 주변에서 사고를 가장한 사건을 모의했으나 실패했다. 9월 말과 10월 초에도 계속 교통사고를 내려고 했지만, 상황상 미수에 그쳤다. 

계획한 교통사고가 실패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피해자 주거지를 찾기로 했다. 박씨는 실행범 김씨에 주소와 빌라 비밀번호 등 사전 정보도 제공했다. 

가해 수위도 조금씩 높아졌다. "병원에 2~3개월 눕게 하라"는 주범 박씨의 교사(敎唆)는, "일어나지 못하게 해도 좋다", "범행 후에 죽을 확률은?", "아예 죽어도 좋다"고 했다.

범행은 매번 실패했다. 반복되는 실패에 김씨 부부는 위축됐다. 박씨는 금전적 이익 약속을 하나씩 추가하면서 부부의 마음을 붙잡은 것으로 검찰은 판단하고 있다. 

주거지 범행으로 변경한 김씨 부부는 11월2일 제주에 A씨 빌라를 찾아갔지만, 재차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 공동현관 비밀번호는 맞았으나 A씨 주거지 현관 비번이 틀렸다. 박씨와 사이가 틀어진 피해자가 비밀번호를 바꾼 것이다.

11월10일 김씨는 빌라 밖에서 피해자를 기다렸다. 귀가하는 A씨에게 폭력을 행사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미수로 끝났다. 우연히 빌라 근처를 지나는 순찰자를 보고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이들은 고심 끝에 비밀번호를 알아내서 집 안에 몰래 숨어들기로 가닥을 잡았다. 

계획을 수정한 김씨는 12월5일 다시 제주를 찾았다. 비밀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퀵 서비스' 기사 위장 방법을 택했다. 철저한 변장을 위해 입도 배편으로 오토바이도 갖고 온 김씨는 헬멧을 쓰고 빌라 현관으로 진압했다. 

사람들의 의심을 피한 뒤 A씨 문 앞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같은 날 저녁 회수해갔다. 몰카 영상은 A씨가 현관 비밀번호 4자리 중 3자리를 누르는 장면이 담겼다. 확인되지 않은 숫자 1개는 박씨가 알아냈다. 박씨는 입수한 세 자릿수를 토대로 총 비밀번호가 A씨와 관련된 기념일이라는 것을 유추했다. 

비밀번호를 손에 쥐게 된 김씨는 다시 경남 양산으로 돌아갔다. 김씨 부부는 범행 발생 하루 전인 12월15일 여수에서 배를 타고 SUV 차량을 가지고 제주로 왔다.

아내 이씨는 배를 예약할 때 남편 신원을 감췄다. 이전부터 여러 차례 제주에 오가면서도 이씨는 다른 신분증을 도용해 남편의 행적을 지웠다. 

사건 발생일 12월16일 오후, 김씨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A씨 주거지에 몰래 침입해 2~3시간가량 귀가를 기다렸다. 경찰은 CCTV에 찍힌 피해자 귀가 시간을 토대로 범행 시각을 16일 오후 3시2분부터 19분 사이로 추정한다. 

같은 날 아내 이씨는 피해자 뒤를 몰래 밟으면서 이동 동선을 남편에게 알린 것으로 조사됐다. 아내 연락으로 A씨 귀가 임박을 알고 있던 김씨는 집 안에 있는 둔기(아령)로 피해자 머리 등을 내리쳐 살해했다. 

살해 과정도 잔혹했다. 실행범 김씨는 아령으로 피해자의 머리, 얼굴, 등 부위를 약 20회 내리쳤다. 살인 후에는 집 안에 있는 현금 491만원과 귀금속, 명품가방 3개(1,800만원 상당)도 챙겼다. 

살인을 저지른 김씨가 범행 현장에서 벗어나고 있는 모습. 주변 CCTV에 담긴 장면에서 피의자 손에는 종이가방이 있다. 피의자는 도주 과정에서 가방 안에 담긴 옷으로 갈아 입기도 했다.
살인을 저지른 김씨가 범행 현장에서 벗어나고 있는 모습. 주변 CCTV에 담긴 장면에서 피의자 손에는 종이가방이 있다. 피의자는 도주 과정에서 가방 안에 담긴 옷으로 갈아 입기도 했다.

범행을 여러 차례 계획했던 만큼 도주 과정도 치밀했다. 

살인 범행 후 김씨는 피해자 A씨 휴대폰을 갖고 나와 야외에 버렸다. 택시를 타고 제주시 용담 해안도로에 내린 실행범은 미리 준비한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김씨는 다시 택시를 이용해 제주 동문시장으로 갔다. 요금은 모두 현금으로 지불했다. 

도내에서 유동 인구가 많은 동문시장을 택한 김씨는 이곳에서 특별한 목적 없이 배회했다. 모든 과정은 범행 발각 시 경찰 추적을 따돌리거나 흔적을 지우기 위한 시도였다. 

동문시장을 서성거리던 김씨는 대기하고 있는 아내 SUV 차를 타고 제주항을 통해 사건 당일 곧바로 타지역으로 도주했다. 이 과정에서도 남편 김씨 여객선 탑승은 제3자 명의로, '유령' 탑승권이 이용됐다.

주범 박씨는 경남 양산으로 올라가 김씨 부부를 만나기도 했다. 완전 범죄 꿈은 곧 깨졌다. 

살인사건 다음날 2022년 12월17일 피해자 가족으로부터 신고받은 경찰은 발 빠른 수사에 나섰다. 피의자들은 흔적을 지웠지만, 수사망은 견고했다. 검찰은 피의자 3명을 올해 1월16일 구속기소 했다.  

이날 재판에서 박씨 변호인 측은 "살인 사건을 공모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김씨 부부 변호인은 "전반적인 공소사실은 인정하지만, 피해자를 죽이려고 마음먹은 시점은 다르다"고 했다. 미리 계획된 살인이 아닌, 피해자 주거지에서 몸싸움이 시작돼 우발적인 범행이 됐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다음 기일에 김씨 부부를 대상으로 증인 신문을 예고했다. 수사기관이 살인사건 설계자로 지목한 박씨가 혐의를 부인하고, 실행범 부부가 '우발적 살인'을 주장함에 따라 검찰이 어떤 법리적 논리를 세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다음 재판은 오는 4월3일 계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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