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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 '그녀들의 AM'의 문화공간. ©Newsjeju

“여기는 대나무 숲이예요. 가끔은 우리가 공연을 만들고 있는지 수다를 떨기 위해 모이는 건지 헷갈릴 때도 있어요”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에 위치한 문화공간, 이곳엔 ‘대나무 숲’이 있다. 한 가정의 엄마이자 아내의 삶에서 벗어나 그들에게 ‘이름’을 내어주는 공간이다. 오전에만 펼쳐지는 이곳의 이야기는 어느새 연극이 된다.

극단 멤버는 김선희, 나선희, 정경희, 임영숙, 이소영, 김은정, 박정순

그녀들은 무대에서 온전한 이름 세 글자로 불린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보여야 하는 것이 연극이라고 말한다. 인생이라는 극에서 주인공을 맡고 있는 편이다.

함께하면 즐거운 사람들과 의미 있는 연극을 만들고 싶어 모인 극단. 같이하는 것에서 가치를 찾는 그녀들을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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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 '그녀들의 AM' ©Newsjeju

제1막 : 극단의 탄생

설문대여성문화센터 1기 수강생에서 시작된 그들의 인연은 11년째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연극을 배우려고 간 것도 아닌데 운명은 그녀들을 극으로 이끌었다.

그들의 데뷔 무대는 문화센터 졸업작품. 각자 다양한 수업을 선택하고 왔지만 막상 수업을 들어보니 선생님은 연극을 가르쳤다. 일회로 끝내기엔 연극은 재밌었고 우정은 끈끈했다.

“문화센터 강좌는 이용하기 되게 좋았어요. 아이들이 학교 가는 시간에 수업이 개설되니까 그 시간에 한두 시간 잠깐 하기가 좋았죠. 졸업작품이 끝나고 한 3년 정도 있다가 저희가 그냥 동아리처럼 극단을 만들었어요”

사실 그들의 생에서 연극은 졸업작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줄 알았다. 하나만 더, 또 하나만 더하고 그만두자 하던 게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제는 실버 극단이 목표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즈음, 어디선가 손사래를 쳤다. “우리 감당할 수 있는 말만 하자” 말하는 입가엔 웃음이 걸려있다. 바로 이런 것이 그들의 장수비결이 아닐까.

# 극단 이름은 ‘그녀들의 AM’으로 지었다.

‘또 다른 아침(Another Morning)’의 시작이자 ‘오전(AM)’에 모인 그녀들이 새로운 일을 해낸다는 의미의 극단 이름은 그녀들의 삶을 대변한다. 평범한 주부였던 그녀들이 오전에 모여 대의를 도모하게 됐으니 말이다.

9시 반 부터 12시 반, 그녀들은 모여 공연을 꾸려나간다. 열심히 수다를 떠는 듯 보이지만 주제 선정과 오브제 만들기, 팜플렛 제작에 홍보까지 해낸다.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했지만 이젠 만능 엔터테이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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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문대 할망을 주제로 한 공연 <출처=그녀들의 AM 페이스북> ©Newsjeju

제2막 : 그녀들의 시선

그녀들의 시선은 따뜻하다. 일상적이지만 어딘가 소외된 것들에 다가가 있다. 문제 의식을 가질 때에도 교훈은 지양하고 이야기에 녹여내는 방식을 택한다고 했다.

성평등을 주제로 할 땐 설문대 할망과 해녀의 도움을 받았다.

“제주는 창조신이 설문대 할망이잖아요. 사실 창조여신이라는 건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어요. 그리고 설문대 할망의 품 안에서 제주 도민들이 신의 보호를 받으며 잘 살아나가고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섬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성평등에 대한 인식들이 굉장히 부족하죠. 할망이 꿈꿨던 세계처럼 다 함께 남성이든 여성이든 차별 두지 말고 우리가 서로 평등한 인간의 존재로서 함께 가자는 의미로 연극을 진행했어요”

”해녀도 마찬가지예요. 제주 가정의 경제를 살린 건 해녀예요. 예부터 제주 경제의 주체는 여성이었지만 가정에서의 지위는 더 낮아요. 그걸 더 높여달라는 것이 아니라 평등한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서로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담고자 했어요”

성평등 뿐만 아니라 환경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할 때도 많다. 그녀들은 지역사회에, 또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좋은 영향을 고민하고 나아간다.

엄마라는 경력을 살려 부모와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치매 노인을 모시던 경험을 녹여 진정성있게 풀어낸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위로를 전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가장 중요한 목적은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는 것 입니다. 그 가치는 우리 아이들과 가족들이 지역에서 이야기 나누고 공감하면서 함께 즐길 수 있어야 살아나는 것이라 생각해요. 서로 위안이 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이야기를 우리는 계속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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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 오브제 제작 중인 모습. ©Newsjeju

제3막 : ‘같이’의 단단함

이들의 인터뷰는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가치 있는 일을 즐겁게 ‘같이’하는 것.

“트러블이 있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가져갈 수 있는 건 그냥 같이 하는 것이 좋다는 게 가장 큰 이유 같아요. 연극을 시작하게 된 이유도 같아요. 그니까 참 이상한 팀이예요. 다른 극단들은 연극을 위해 모이는데 저희들은 같이 있기 위해 연극을 하니까요”

흩어질 기회는 많았다. 누군가가 그만두려고 할 때 누군가는 또 붙잡는 것. 서로 함께하는 것에 대한 끈끈한 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왔다.

"서로 끌어주다보니 놓질 못했어요. 끌려다닌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각자가 다 끌고 있는 것 같긴 해요. 사실은 때려치자라는 생각을 한두 번 한 게 아니예요. 지금도 이제 언제 발을 뺄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희가 발을 빼려면 2000만 원씩 내놓기로 했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원성이 들려왔다. "2억이었어!"

2억을 내면 극단 탈퇴가 가능하다. 이러다 이들은 정말 실버극단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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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멤버들이 공연하는 모습. <출처=그녀들의 AM 페이스북> ©Newsjeju

제4막 : 선순환

이들의 연극은 본인의 인생과 주변인, 관객들에게 좋은 영향을 불러왔다. 내부적으로 치유받는 것을 뛰어넘어 선순환에 다가가고 있다.

완벽주의 성향이 있던 한 극단 멤버는 연극의 치유적인 힘을 설명했다. 그에게 극이라는 건 감추고 싶던 비밀도 사실 남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자신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알아갈 수 있었던 것이 연극인 셈이다.

처음에 극단이 만들어질 때 부정적이었던 가족 구성원도 있었지만 지금은 응원받는 편이다. 심지어 한 멤버의 남편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소유하던 건물을 고쳐 그들의 연습공간을 만들어줬다. 그곳이 바로 현재 그들의 연습공간이다.

“아이들도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 행복해해요. 어느 날 저희 큰딸이 어른이 되면 저희들처럼 살고 싶다는 말을 했어요. 엄마랑 이모들은 각자의 이름이 도드라지게 보이는 사람들이라고. 엄마로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개성을 살려 멋있게 살고 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게 너무 좋다고”

큰 딸은 또 이런 얘기를 덧붙였다고 했다. “이 극단은 엄마들만의 극단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극단이야. 누군가는 해야될 일을 엄마랑 이모들이 대신해줘서 난 너무 자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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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들의 AM 극단 멤버들. <출처=그녀들의 AM 페이스북> ©Newsjeju

어떡하면 관객들에게 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점점 공연이 어려워진다는 그녀들. 가족에게도 지역사회에도 선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에겐 이름이 있다. 일과 꿈을 양립하기 위해 줄다리기를 이어가지만 그럼에도 놓지 않는 것이다.

그녀들은 ‘누구 엄마’가 아닌 이름으로 매번 불리고 있었다. 그들이 모이는 시간인 오전에, 그리고 박수갈채를 받는 그 무대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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