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제주특별자치도청에서 추락사 한 고 김홍주서기관은 국공유 재산관리에는 타의 추종을 불하하는 독보적인 능력자로 알려지고 있다.

고 김서기관이 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별정직으로는 최고의 위치라 할 수 있는 사무관으로 승진한 것도 이같은 능력을 평가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인은 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전국 최초로 토지비축제도를 운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가 토지비축제도라는 생소한 제도를 도입한 것은 제주도가 나날이 '청정제주'로서 전국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을 뿐 아니라 특별자치도와 국제자유도시로 제주도가 변함에 따라 토지가 곧 제주도의 자본이라는 사실을 인식, 이를 비축함으로서 제주도의 실질적 경쟁이 앞서 갈 것이라는 예견에서 나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고인은 이러한 정책분야 뿐 아니라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함에 따라 어떻게 하면 국가로 부터 제주특별도를 지키는가에도 고심을 많이 한것 같은 흔적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작은 도유지를 국가에 주고 큰 국유지를 도유지로 바꾸는 현지 감각을 이용한 '공적 부동산 거래'에도 '귀재(鬼才)'라 할 만큼 솜씨를 발휘했다.

남이 알아 주는 업무가 아니었다. 국공유재산은 개인 재산이 아닌한 공직사회에서는 '도외시'되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김서기관은 이같은 측면에 개의 없이 오직 자신에게 주어진 '재산을 지키는 일'에 묵묵히 홀로 길을 걸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례로 04'년 국방부의 요청에 따른 국유지 교환에서 고인은 현지답사를 여러차례 해 혹 제주도에 손해를 가져 오지는 않을 것인가를 면밀히 분석, 재경부와 건교부등과의 협의를 거쳐 색달동소재 당시 12억상당의 토지를 국방부소유 토지와 교환, 이를 102억에 매각하는 가 하면 이토지에 1200억의 민자를 유치하는 수완을 발휘, 사무관에 오르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고인은 '00년에는 290평의 도유지를 가지고 11만평의 국유지와 맞교환, 제주도에 토지를 비축토록 했을 뿐아니라 05'년에는 도유지 1만2천평을 35만평, 시가 73억원 상당의 토지와 교환, 현재는 재산평가액 110억원에 달하는 도립미술관 부지로 만든 공로자라는 것이다.

고인은 '국공유재산관리의 달인'답게 짜투리 토지는 과감하게 매각, 민원해결을 하는가 하면 국공유재산의 생산적 관리와 지방세수 증대를 위해 사용허가와 대부를 적재 적소에 하는 수단이 남달랐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85년 6월 제주도청 총무과 별정직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고인은 이후 20여년을 재산관리에만 매달려 왔다.

'한 우물만 판 것이다'. 고인의 이같은 강점은 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발휘되기 시작했다.

과거 '제주도'시절에서 벗어나 홀로 서야 하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위치가 어떤 것인가를 스스로 터득, 재산을 지키고 제주도를 지켜야 되겠다는 사명감으로 '토지비축제'를 도입을 한 것이다.

한마디로 제주도 땅을 '남에게 다 줄 수는 없다'는 제주도를 아끼는 마음에서 였다.

그래서 고인은 특별도 출범과 함께 국공유지 재산 관리 통함시스템을 구축을 했다.

한눈에 자신만이 볼 수 있는 가치를 저울질 할 수 있는 기능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인력이 모자라자 상부에 이를 건의, 인력을 보강시키는 역량도 과시 했다.

'사심 없이 일을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고인은 그것을 전산화 했다. 제주특별자치도청 최고 간부라면 한 눈에 재산의 가치를 알아 볼 수 있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고인은 그래서 그러한 공로로 별정직으로서는 최고의 위치라는 사무관에 승진을 한 것이다.

특히 고인은 정부 제주지방 합동청사에 이전하는 국가기관 소유 청사를 제주특별자치도가 인수, 무상사용 토록 조치를 했는가 하면 공공의 목적에 따라 도민들이 충족 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하는등 재산관리에 사심을 배제, 공익를 우선하는데 역량을 쏟는 공직자상도 마련했다고 말들을 하고 있다.

고인은 이같은 정신으로 추락사를 하는 날에도 직원들을 다독이며 자정이 다가오는 시간에도 내일의 회의자료작성에 매달렸다.

고인은 사회봉사도 끈임없이 해왔으며 그런 틈바구니에서도 자기 계발을 위해 묵묵히 한 길을 걸어 온것으로 칭송을 하고 있다. 노인들 목욕봉사까지도 마다치 않을 정도롤 사회봉사도 했다.

'개관사정(蓋棺事定)', 즉 '고인에 대한 평가는 관뚜껑을 덮은 후에가 진실이 나온다.'는 말처럼 고인은 진심으로 공직자의 길을 걸으여고 한 겻 같다.

그래서 '부하직원'을 '식구'라 칭했으며 그들을 '자식'처럼 아끼려는 마음과 '제주특별자치도'를 자신의 일처럼 성공시키려는 공직정신이 남달라 오늘 이같은 슬픈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 그를 지켜 보는 주변의 칭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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