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판준비기일 열고 쟁점 정리 계획했던 재판부 
사유 없이 공소사실 부인한 변호인···"증거 기록 줄이고, 국참 가자" 반복 
검찰 "부인 취지 등을 말 해줘야 줄이죠···"  
재판부 한숨, "지금, 이 자리는 쟁점을 정리해야 하는데···"  

2월18일 박현우 도당위원장이 국정원에 의해 체포됐다.
국가정보원이 국가보안법 혐의를 적용해 압수수색에 나서는 장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된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 재판이 열렸다. 준비기일 취지와 무색하게 잇따라 흘러가면서 재판은 답보상태로 흘렀다. 

15일 오후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부장판사 진재경)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된 고창건(53. 남) 전국농민회 총연맹 사무총장, 박현우(48. 남) 진보당 제주도당 위원장, 강은주(53. 여) 전 진보당 제주도당 위원장 준비 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변호인 측은 공소장에 기재된 피고인들의 혐의(공소사실)를 전면 부인했다. 사유는 추후에 밝히겠다고만 언급하면서 준비 기일은 주요 쟁점이 될 사안을 정리하지 못한 채 지지부진했다. 

앞서 지난 4월24일 열린 첫 번째 공판준비기일에서 변호인 측은 "공소장이 약 120쪽 분량에 증거기록까지 더하면 약 1만 쪽에 달해 사건을 검토하지 못했다"고 발언해 재판부가 기일을 3주로 연기하고, 이날 재개됐다. 

공판준비기일은 정식 재판은 아니다. 재판부는 공판준비기일에 공소장 보완 변경, 쟁점 정리, 증거 신청 등을 차례차례 들여다보게 된다. 복잡한 사건의 쟁점을 미리 정리하기 위한 것이 주요 목적이다. 

변호인이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지만, 명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자 검찰은 주된 공소사실 핵심을 언급했다. 

검찰에 따르면 강은주 전 진보당 제주도당은 2017년 7월 캄보디아로 가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하고 입국한 혐의다. 또 같은 해 10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북한으로부터 13회가량 지령문을 받고, 총 14회 보고서를 북으로 보낸 혐의도 적용됐다. 

강 전 위원장은 고창건 사무총장과 박현우 위원장과 공모해 2018년 제주 이적단체 'ㅎㄱㅎ' 결성을 준비했고, 지난해 8월 북한 문화교류국으로부터 조직 결성 지침을 전달받아 노동, 농민, 여성 등 부문 조직을 만든 혐의도 더해졌다. 

이와 함께 지난해 3월부터 북한 대남공작원 활동을 칭찬하고 찬양하는 혐의도 추가됐다. 강은주 전 위원장에게 더해진 혐의만 '특수잠입', '탈출', '회합', '이적 단체구성', '통신', '간첩', '찬양·고무', '편의 제공' 등이다. 

고창건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과 박현우 진보당 제주도당 위원장은 이적단체 'ㅎㄱㅎ' 결성을 함께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제주지방법원.
제주지방법원.

재판부는 "강은주 피고인에게 적용된 혐의 중 '탈출'이 2017년 캄보디아에 출국한 것이라고 검찰은 말한다. 변호인은 무엇을 부인하는가"라고 물었다.

"뭐라고 잘라서 말할 수 없고 전부 부인한다"고 변호사가 재차 답하자, 검찰 측은 "굳이 공판준비기일을 하는 이유는 쟁점을 정리하기 위함으로, 캄보디아로 향한 것에 대한 입장을 밝힐 수 없는 것이냐"고 추궁했다.

변호사 측은 "그렇다. 발언을 실수하면 돌아올 수 없는 타격이 크다"며 "막연하지만, 공소사실을 전부 부인할 수밖에 없다"고 같은 입장을 내세웠다. 

법원은 공판준비기일 취지와 무색하게 흘러가는 행보에 고개를 저었다. 공소사실과 관련된 유사한 질문을 던졌지만, 변호사의 답변은 "부인한다", "피고인에게 확실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피고인 방어전략은 진술거부권이다" 등 또렷한 쟁점 정리와 선을 그었다. 

변호인은 모 유력 매체에 보도된 사설까지 끄집어냈다. 지난  준비기일에 국민참여재판 신청을 했더니 비난 사설로 거대 언론이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해당 매체에 다시 비난 보도가 나올까 봐 발언을 주저하고 있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해당 매체 기사를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고, 그것은 이 사건과 큰 쟁점이 없는 내용"이라며 "(강은주 피고인이)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는 공소사실은 인정하는가"라고 공소사실 내용 일부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졌다. 돌아온 답변은 "사실관계 확인이 어렵다"는 한결같은 답변이었다. 

변호인 측은 첫 번째 공판준비기일과 동일하게 1만 페이지 분량의 공소장이 너무 방대해 축소해 줄 것과 국민참여재판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연이어 내세웠다.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은 나중 문제로, 지금은 준비기일 절차답게 쟁점만 정리해 줬으면 좋겠다며 거듭 양해를 구했다.

검찰은 국가보안법 국민참여재판은 이미 타지역에서도 증거가 많다는 사유로 배제 결정이 났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와 함께 변호인 측에서 의견을 제시해야 검토해서 증거를 제외하거나 줄이는 등 방법을 강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한숨을 내쉬었다. 

법원은 "오늘(15일) 최소한 증거인부 등 공소사실 정리가 어느 정도 될 줄 알았다"며 "다음 기일은 쟁점 정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6월5일 오후 세 번째 공판준비기일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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