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 상임위 모두 증액 '0원' 죄다 삭감... 농수위에서만 7억 증액
집행부와 의회 자존심 싸움에 묵혀지는 혈세들... 피해는 애꿎은 도민들만

집행부와 의회 간 예산전쟁이 현실화됐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의 각 상임위원회가 16일 오전까지 계수조정을 마무리하자 예산결산특별위원회(위원장 양경호)에서 이날 오전 10시부터 이번 1차 추가경정예산안 심사에 돌입했다.

예산전쟁이 본격화 된 건, 행정자치위원회와 보건복지안전위원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환경도시위원회 등 4개 상임위원회에서 모두 단 한 푼도 증액하지 않고 감액만 했기 때문이다. 감액 총액만 433억 원 규모며, 농수축경제위원회에서만 7억 원 가량을 증액했다.

의회가 올해 본 예산안을 지난해 말에 의결할 때, 당시 제주도지사는 의회의 증액예산에 분명 '동의'했다. 허나 '조건부 동의'라는 꼼수를 쓰면서 일단 통과시킨 뒤, 올해 초 보조금심의위원회를 통해 의회에서 증액한 예산을 다시 손질하는 행태를 감행해 이번 예산전쟁의 발단을 일으켰다.

이에 제주도의회는 직전 제415회 임시회에 이어 이번 제416회 임시회에서까지 이 문제를 강하게 질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정은 결코 물러섬이 없이 보조금심의위의 재심의가 필요하다고 맞서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예산전쟁'으로까지 번졌다.

▲ 올해 제1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문제를 두고 제주도정과 제주도의회가 예산전쟁을 벌이고 있다.
▲ 올해 제1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문제를 두고 제주도정과 제주도의회가 예산전쟁을 벌이고 있다.

집행부와 의회의 이러한 예산갈등은 사실 '의원사업비(재량사업비)'에 기인한다.

집행부의 일부 사업 예산들이 도지사의 공약사업을 반영하듯이, 의회에선 도의원들도 각 지역구의 주민들로부터 각종 민원을 받는다. 이에 도의원들은 집행부가 차기연도 본 예산안을 편성할 시 주민들이 요구하는 사업들을 반영시키고자 집행부와 물밑 접촉을 벌인다.

이렇게 의원들이 요구하는 사업들을 '재량사업비'라는 용어로 불러 왔고, 본 예산 편성 시 반영돼 온 관행으로 이어져왔다. 허나 집행부에선 이러한 의원사업비가 대부분 '지역구 챙기기'로 비춰지는 선심성 예산이 많다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인식해 왔다.

특히 지난 원희룡 도정에서 이 문제가 수면 밖으로 꺼내지면서 본 예산 의결 때 '부동의' 사태로 이어져 '예산 전쟁'이 벌어졌었다.

이번에도 또다시 이러한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지난해 본 예산 의결 때 반영된 의원사업비들이 올해 1차 추경안을 통해 죄다 삭감되고 재편성되자 의원들이 오영훈 지사를 견제하기 위해 '삭감 후 증액 0원'으로 맞섰다.

다만, 농수축경제위원회의 경우 해당 상임위원장이 국민의힘 소속인 강연호 위원장이라 다른 상임위와 완전히 의기투합이 되진 않은 모양이다. 농수위를 제외한 나머지 4개 상임위원장은 모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맡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의원사업비들은 지방보조금으로 투입되는 것이라 지난해 개정된 지방자치법에 따라 보조금에 대한 심의를 벌일 권한이 지방자치단체에 있긴 하다. 허나 문제는 의회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이 동의하고 의결한 예산을 집행부가 다시 삭감하고 재편성하는 건, 분명 의회의 예산 의결권을 침해하는 형태여서 갈등이 봉합되질 않고 있다.

최근에도 의회가 송악산 내 사유지 부지 매입을 위한 공유재산관리계획안을 심사보류 시켜버리자 집행부는 다음날 곧바로 입장문을 내고 의회를 압박했다. 횡단보도 길 하나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기관이 지근거리에 있음에도 소통 없이 언론 플레이로만 서로를 상대하고 있는 상태다.

양 기관이 수시로 만나 논의하자면서 상설정책협의회를 개최한 게 불과 3개월 전이다.

결국, 소통 부재의 문제다. 이 문제를 수면 밖으로 꺼내 의원사업비를 제도화, 계량화 해보자는 논의도 없이 집행부나 의회 모두 각자 자신들의 입장만 고수하느라 제때 쓰여져야 할 혈세들이 묵혀지고 있는 셈이다.

결국 두 기관의 자존심 싸움에 애꿎은 도민들만 피해를 보게 되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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