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고수하는 집행부, 의회와 어떻게 간극 좁힐까 의문... 재심사 이뤄진다해도 난항 '예고'

올해 첫 추가경정예산안이 심사보류되면서 일부 사업들이 중단되거나 지체되고 있다. 이 때문에 하루빨리 재심사가 이뤄져야 하지만, 여전히 집행부와 의회 간 신경전이 지속될 모양이다.

제주도정은 추경안이 재심사되더라도 기존의 원칙과 기준을 고수하겠다고 밝히면서 제주도의회와의 2차 예산전쟁을 예고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2일 오전 9시 30분 별도의 브리핑을 통해 추경안 심사보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허문정 기획조정실장이 나서 이번 사태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다"며 "의회와 논의해 (예산 편성에 대한)원칙과 기준을 정립하고, 선진적인 시스템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면서도 이번 추경안 편성 시의 원칙과 기준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 허문정 기획조정실장이 제주도의회에서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이 심사보류 된 사태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Newsjeju
▲ 허문정 기획조정실장이 제주도의회에서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이 심사보류 된 사태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Newsjeju

# 원칙과 기준에 맞춰 편성했다는 예산, 그러면 왜 심사보류됐나

허문정 실장은 "이번 추경안도 지난해 연말에 본 예산 편성 시의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편성한 것"이라며 "이에 대해선 의회도 충분히 알고 있었고 협의를 진행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기자단에서 "그러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진거고,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거냐"는 질문이 던져졌다. 

허 실장은 "도정과 의회 간 소통 부족의 결과라는 지적에 상당히 동의하고 뼈 아프게 받아들인다"면서도 "누구 책임이 더 크냐는 질문엔 답하기 곤란하다. 다만 소통은 양손이 부딪혀야 소리가 나는 법"이라고 답했다. 의회 역시 잘한 게 없다는 뉘앙스인 셈이다.

이에 이어진 질문은 자연스레 보조금심의위에서 다뤄진 보조금사업들로 옮겨갔다. 추경안이 심사보류된 원천이 여기에 있어서다. 올해 본 예산에 편성돼 있던 각종 보조금사업들을 보조금심의위가 다시 심의해 대량 삭감하고, 이를 다른 사업에 편성해버리면서 도의원들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분명 예산 편성권은 집행부의 권한이나, 의결권은 의회에게 있다. 의회에서 의결한 예산을 집행부가 다시 손질하는 건 명백히 예산 편성의 '원칙과 기준'을 벗어난 행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행부가 보조금심의위원회를 통해 손질을 가한 건, 지난 해 말 올해 본 예산 편성 시 '조건부 동의'라는 꼼수를 쓰면서 가능해졌다.

이에 대해 허 실장은 "예산 편성 전 보조금심의위로부터 심의를 거치는 게 바람직한 절차지만 지난해엔 동의할 수 없는 사업들에 대해선 재심의를 하겠다는 '조건부 동의'를 하고 이번 추경에서 재편성하게 된 것"이라면서 "조건부 동의를 해선 안 되는 것이기에 앞으론 어떤 결정이 나더라도 '조건부 동의'를 하지 않기로 의회와 협의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추경안이 '원칙과 기준'에 맞게 편성됐고, 재심사도 그렇게 하겠다고 항변했지만 허 실장 스스로가 그러지 못했다고 반증한 셈이다. 

'원칙과 기준'이 지켜지지 못한 사례는 또 있다. 추경안에 편성된 용역사업이 예산 의결도 거치지 않았는데 미리 집행돼 버리는가하면, 지난해 보조금심의위를 통해 부적정하다고 삭감된 사업 일부가 이번 추경안 편성 때 부활됐다. 보건복지안전위원회에서 지적됐던 사안으로, 당시 허 실장은 "다시 편성되면 안 되는 사업들"이라고 잘못을 인정한 바 있다.

이날 브리핑에서도 이 문제가 재상기되자, 허 실장은 "부적정한 사업으로 판명된 것을 다시 적정사업으로 편성할 수가 없다"고 재확인해줬다. 즉, 집행부 스스로가 예산 편성의 원칙과 기준을 어겼으면서도 다시 이를 고수하겠다는 건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 제주도정은 추경안이 재심사되더라도 기존의 원칙과 기준을 고수하겠다고 밝히면서 제주도의회와의 2차 예산전쟁을 예고했다. ©Newsjeju
▲ 제주도정은 추경안이 재심사되더라도 기존의 원칙과 기준을 고수하겠다고 밝히면서 제주도의회와의 2차 예산전쟁을 예고했다. ©Newsjeju

# 집행부가 고수하는 '원칙과 기준'은 무엇?

그렇다면 집행부가 고수하겠다는 '원칙과 기준'은 무엇일까. 그간 관행적으로 해왔던 것을 철폐하고 철저히 e호조 시스템에 입력되지 않은 사업들에 대해선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원칙'이다. '기준'은 보조금심의위가 맡고 있다. 보조금심의위를 통과하지 못하는 사업은 예산에 반영될 수 없다는 게 그렇다.

그간 관행적으로 해왔던 것이라 함은 '의원사업비' 혹은 '재량사업비'를 일컫는다. 도의원들이 각 자신의 지역구 주민들로부터 요구받은 사업들을 집행부 예산에 반영시키는 것이다. 이를 긍정적으로 보면 읍면동 민생예산이지만, 그간 선심성 예산으로 많이 집행돼 왔기 때문에 부정적 인식이 더 강하다.

이렇기에 허문정 실장은 이를 두고 "지난 2020년에 공식적으로 폐지된 용어다. 그런 용어를 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지역현안사업에 대해선 e호조를 통해 필요한 사업을 반영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이번 추경안에서부터라도 지난해 '조건부 동의'로 반영했던 일부 '지역현안사업'을 더는 수용해 줄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허 실장은 "이러한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며 "기획재정부에서도 세수(세입 수입) 펑크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상황에서 본 예산에 편성된 법정 필수경비를 잘랐다가 (지역현안사업을)추경에 반영해주다보면 더 이상의 추경이 없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기자단에선 "세수 급감이 예상된다면 도지사의 공약사업도 조정돼야 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지적이 가해졌다. 허 실장은 "고민해야 할 지점이긴 하나, 지사는 공약으로 당선된 자리다. 공약을 이행하는 것이 민생과 관련된 것이라 믿는다"고 답했다.

이러니 도의원들이 "지사의 공약사업은 민생예산이고 의원들이 증액하는 읍면동 사업들은 민생예산이 아니란 거냐"는 불만을 쏟아내는 게 당연하다. 허 실장의 답변은 꽤나 논리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도의원들의 입장에선 황당할 수밖에 없는 간극이다.

집행부의 이러한 태도는 정작 '보조금심의위'의 회의록 공개 불가 방침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삭감된 이유를 알아야 하는데 회의록이 공개되질 않고 있어 의원들은 그저 통보만 받고 있다. 이 때문에 '깜깜이 밀실 예산심의'라는 비판이 따라붙는다. 허문정 실장이 "아니"라고 항변해보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허 실장은 "보조금심의위에서 1년에 9700건 정도를 심의하다보니 이에 대한 회의록을 남기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변명으로 대신했다.

허 실장은 "물론 집행부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진 않지만 이런 부분은 개선돼야 한다"며 "부적정하다고 판단된 사업들에 대해선 별도로 기록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부연했다.

▲ 1차 추가경정예산안을 두고 오영훈 제주도정과 김경학 제주도의회 의정 간의 신경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Newsjeju
▲ 1차 추가경정예산안을 두고 오영훈 제주도정과 김경학 제주도의회 의정 간의 신경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Newsjeju

# 집행부-의회, 서로의 소통부족은 누구 탓?

추경안이 조속히 재심사돼야 하는 건 당연지사다. 허나 이를 바라보는 두 기관의 태도 간극이 너무 크다. 이게 문제다.

제주도의회에선 재심사해야되는만큼 추경안이 다시 설계돼서 제출돼야 한다고 보는 반면, 제주도정은 이미 상임위에서 다 거친 것이라 예결위 과정만 남은 게 아니냐며 굳이 6월 13일로 예정된 정례회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원포인트 임시회라도 개최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허나 의회 일정상 빠른 시일 내에 재심사가 이뤄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번 임시회가 끝나자마자 일부 상임위원회들이 줄줄이 해외 연수를 가고 있어서다. 돌아오면 6월 4일이라 이 때부터 다시 제출된 추경안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준비하다보면 제417회 정례회 개회 시기인 6월 13일과 별 차이가 없다.

결국 이 역시 소통 부족의 결과다. 이러한 소통의 실종은 이날 브리핑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제주도정은 이번 심사보류로 인해 당장 내일부터 탐나는전 할인과 대학생들에게 지원할 예정이던 천원의 아침밥 사업을 할 수 없게 됐다고 토로했다. 이들 사업이 제때 시행되지 못하는 것이 '의회가 심사보류 결정을 내린 탓'으로 돌려지고 있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탐나는전 소상공인 가맹정 대상 할인 시책사업은 당장 23일부터 잠정 중단된다. 또한 '천원의 아침밥' 사업과 취약계층 및 청년 등에 일자리를 제공하는 '공공근로사업'이 늦어지게 됐다. 이를 두고 허문정 실장은 "민생고가 가중되는 시기에 도민을 돕기 위한 사업들이 추진되지 못한 것에 죄송한 마음"이라며 "조속한 심사일정을 의회와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원칙 변화 없이 의회와 논의하겠다는 집행부. 의회와의 의견 차이를 어떻게 좁힐 것인지 의문인 상황에서 의회를 겨냥한 듯한 브리핑 내용으로 인해 추경안 재심사가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질지 안갯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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