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자치도, 국내 어느 곳에도 없는 '섬식정류장'과 양문형 저상버스 도입

제주특별자치도가 지난해 11월 22일에 발표했던 중앙버스차로제(BRT, 간선급행체계) 2단계 사업이 6개월만에 전면 수정됐다.

제주자치도는 기존에 발표한 BRT 2단계 사업이 보행환경과 가로경관 개선 등의 문제를 안고 있었음에 따라 이를 개선하고자 중앙차로에 '섬식정류장'을 설치하고, '양문형 저상버스'를 국내 최초로 도입한다고 24일 밝혔다.

▲ BRT 2단계 사업의 전면 수정안을 발표하고 있는 이상헌 교통항공국장. ©Newsjeju
▲ BRT 2단계 사업의 전면 수정안을 발표하고 있는 이상헌 교통항공국장. ©Newsjeju

# 섬식정류장과 양문형 저상버스, 왜 도입?

섬식정류장은 중앙버스차로 한 가운데에 양쪽 노선의 버스 승·하차만을 위해 존재하는 정류장이다. 기존의 중앙버스차로엔 가고 오는 노선에 따라 하나씩 두 개의 정류장이 설치돼 있지만, 섬식정류장은 하나만 있으면 된다. 즉, 양쪽 노선의 버스가 하나의 정류장을 공유하는 식이다.

이럴 경우, 기존 BRT 2단계 사업에선 편도 3차선 도로의 총 폭이 최소 26m가 필요했으나, 섬식정류장으로 대체되면 23.5m로 줄어들는 이점을 가지게 된다. 기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선 인도 폭을 줄여야 했고 이를 위해 가로수를 잘라내야만 했다. 섬식정류장이 들어설 경우 이 문제가 해소된다.

현재 예상된 섬식정류장의 표준횡단면도를 보면, 1개 차선의 도로 폭은 3m로 기존 계획안과 같으나 폭 3m의 정류장 인도 2개가 1개로 줄면서 4m로 넓혀지고, 버스중앙차로와 일반 차선과의 간격이 기존 0.25m에서 0.5m로 확대돼 안전성도 더 담보할 수 있게 된다.

섬식정류장을 구현하기 위해선 '양문형 버스'가 도입돼야 한다. 버스가 섬식정류장에 정차하면 도로 구조 상 왼쪽 편에서 문을 열어야 하고, 일반 정류장에선 오른쪽 편에서 문을 열어야 하기 때문에 양쪽에 모두 문을 갖고 있는 버스가 필요해서다.

제주자치도는 우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내년부터 3개년 동안 단계적으로 제주시 권역의 시내버스 총 682대 중 489대를 양문형 저상버스로 교체한다는 계획이다.

BRT 구간별 공사 일정에 따라 섬식정류장을 갖춘 중앙버스차로제를 2027년 1월까지 단계적으로 개통하면서 내년에 96대, 2025년에 234대, 2026년에 159대를 도입한다. 489대 중 약 300대는 버스의 내구연한(9~10년) 보다 1년 정도 앞당겨 도입하고, 나머지 189대는 내구연한대로의 일정에 따라 도입할 방침이다.

이번 BRT 2단계 사업이 전면 수정된 건, 앞서 기술된대로 보행 및 가로경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실제론 오영훈 제주도지사의 입김이 작용된 게 크다.

오영훈 지사는 올해 1월께 도내 한 방송사와의 신년대담 때 기존 BRT 2단계 사업에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한 질문을 받자 정류장을 하나로 하고 버스 양 쪽에 문을 두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 이날 브리핑에서도 이상헌 국장은 이러한 오 지사의 발언으로 인해 논의되기 시작한 게 맞다고 답했다. 그러다 이날 발표하게 된 건, 그간 이에 대한 기술적 검토를 하느라 시간이 소요됐던 것이라고 부연했다.

▲ 6개월만에 수정된 BRT 2단계 사업 구간 위치도. ©Newsjeju
▲ 6개월만에 수정된 BRT 2단계 사업 구간 위치도. ©Newsjeju
▲ 분리식(상단) 및 섬식정류장 표준횡단면도. ©Newsjeju
▲ 분리식(상단) 및 섬식정류장 표준횡단면도. ©Newsjeju

# 국내 어디에도 없다는 섬식정류장과 양문형 저상버스

문제는 섬식정류장이나 양문형 저상버스가 국내에 도입된 곳이 그 어디에도 없어 정확한 예산추계가 안 되고 있다는 점이다.

섬식정류장 공사는 기존 계획안보다 전체 도로 폭이 좁아지고 정류장을 위한 인도를 하나만 설치하면 되기 때문에 전체 공사비가 10~15%가량 줄어들 걸로 보고 있다.

버스가 문제다. 현재 양문형 버스 제작에 대한 기술은 상용화 돼 있으나 정작 국내에 양문형 저상버스를 생산하고 있는 업체가 없다. 이 때문에 제주도정은 양문형 저상버스를 제작할 수 있는 업체를 수소문했고, 현재 4개 업체 정도에서 제작이 가능한 것으로 파악했다. 4개 업체 가운데 2개 업체로부터 제주도에 제작 및 공급 의사를 타진받았고, 현재 개발을 완료해 국토교통부로부터 형식승인 절차를 앞두고 있다고 전했다.

보통 버스 한 대 가격이 2억 원가량 되며, 최근 매년 조금씩 도입되고 있는 전기 저상버스가 3억 8000만 원 정도다. 제주도정은 최근에 도입된 전기 저상버스를 개조해 양쪽에 문을 다는 방법을 고려 중이며, 이 때 개조 비용이 대당 2000~3000만 원 정도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차후 양산되는 양문형 저상버스는 최소 대당 4억 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되나, 제주도정은 섣불리 예상할 수 없다고만 답할 뿐 이번에 수정된 BRT 2단계 사업의 총 예산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정류장 공사비용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전체 비용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종전의 계획은 318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었다.

▲ 인도를 점령하고 있는 버스정류장들. ©Newsjeju
▲ 인도를 점령하고 있는 버스정류장들. ©Newsjeju
▲ 세종시가 조성한 반폐쇄형 정류장인 스마트쉘터. ©Newsjeju
▲ 세종시가 조성한 반폐쇄형 정류장인 스마트쉘터. ©Newsjeju

# 언제 어디부터 도입되나

우선 가장 먼저 적용되는 구간은 종전 계획대로 서광로부터다.

제주자치도는 국내에 섬식정류장 사례가 없는 만큼 설계기준 및 교통 및 신호체계 운영방안 마련을 위한 용역을 올해 하반기에 추진할 계획이다. 이 용역 결과에 따라 기준이 마련되면, 분리식 정류장으로 설계된 부분을 섬식 정류장으로 변경하는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설계변경은 서광로 구간부터 하고, 이후 동광로와 도령로, 노형로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중앙로는 이미 제주시청에서 아라초등학교까지의 구간에 분리식정류장이 들어서있는 만큼 이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분리식정류장으로 조성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제주도정은 서광로 3.1km 구간을 오는 2024년 7월부터 공사에 돌입해 2025년 상반기에 우선 개통하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이후 2027년에 나머지 구간을 완전 개통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동광로와 도령로 각 2.1km는 2025년 5월부터, 노형로 1.7km와 중앙로 1.6km는 2026년 5월부터 공사가 이뤄진다.

이 가운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공사에 착수했다가 중지된 서광로는 공사가 재추진 될때까지 도로변 가로등을 인도로 이설 후 가포장해 갓길로 활용한 뒤 본 공사 추진 시 가로수를 식재할 예정이다. 또한 서광로 구간 2개소엔 세종시에 조성된 반폐쇄형 정류장인 '스마트쉘터'를 시범 설치한다.

이상헌 교통항공국장은 "시가지화된 지역의 경우, 간선급행버스체계(BRT) 사업대상 구간이 대부분 편도 3차선으로 폭이 제한적이어서 인도와 자전거 도로를 상실해야 하는 등 보행환경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다"며 "섬식정류장과 양문형 저상버스를 도입해 이를 개선하고 대중교통 활성화를 유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에 전면 수정된 BRT 2단계 사업계획도 향후 수립될 트램 도입 방안에 따라 또 다시 바뀔 가능성도 있다. 이상헌 국장은 "트램과 BRT를 같이 검토하는 건 부담"이라며 "만일 트램을 도입하게 된다면 BRT와는 같이 못한다. 트램이 도입되면 버스의 주행로를 공용하거나 혼용하는 방식을 취해야 하는 걸 검토해야만 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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