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감기 진료 안 되고 비싸지만 보다 더 수준 높은 진료를 받을 것인가
제주에서 가장 높은 진료 수준을 갖춘 곳은 제주대학교병원이지만 전국 상급종합병원 기준으로 보면 60위권 밖에 있다. 정확히 몇 위 정도 하는지조차 가늠이 안 되는 수준이어서 실상 제주의 의료수준은 매우 열악하다.
실제 제주에선 제주대병원에서 치료가 안 돼 도외로 원정 진료를 가야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2021년 기준으로 제주지역에서 도외로 원정 진료를 간 제주도민은 전체 도민 환자의 16.5%에 달한다. 이는 입원환자 수 기준이며, 도내에서 8만 1000명이 입원해 치료받고 있을 때, 1만 6109명은 육지로 나가 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한 도외 유출 의료비용은 전체 도민 의료비용의 25.4%에 달하는 1080억 원으로 집계됐다. 그만큼 제주의 의료수준이 낮다는 얘기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이 열악한 의료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반드시 제주에 한 개의 병원 정도는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받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래야만 수준 높은 의사가 제주로 유입되고, 보다 더 많은 전문진료가 가능해져 원정 진료 비율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상급병원 턱걸이도 안 되는 제주대병원, 어떤 수준이길래?
국내 의료체계에서 의료기관은 1차, 2차, 3차 등 3개로 나뉘어져 있다. 이는 경증 및 중증환자마다 필요한 의료시설이 다르기 때문이다.
1차 의료기관은 30개 미만의 병상을 갖고 있는 의원, 치과의원, 한의원, 보건소로 주로 경증 외래환자를 진료한다. 2차 의료기관은 30개 이상 병상의 병원을 말한다. 이 가운데 진료과목이 7개 이상이면서 100개 이상의 병상을 갖춘 곳을 '종합병원'으로 재분류한다.
3차 의료기관이 '상급종합병원'이다. 500개 이상의 병상과 20개 이상의 진료과목이 있어야 하며, 각 과목마다 전속 전문의 1명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2011년부터 도입된 제도다.
제주대학교병원이 이에 속할 법하지만 지정받지 못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은 보건복지부가 병상, 시설 , 의료인력 등을 절대 및 상대 평가해 3년마다 지정하는데, 제주지역은 서울 권역에 묶여 있어 평가 순위에서 한참 밀리기 때문이다.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순위로만 봤을 때 제주대병원은 제 4기(2021~2023)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된 45개 병원 외에 지정받지 못한 15개 병원보다도 낮다. 즉, 60위권 밖에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제주는 오는 2026년까지 적용하는 제 5기 상급종합병원에도 지정받지 못한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지난 6월 20일에 제 5기 상급종합병원 지정계획을 발표했는데, 여전히 제주지역은 평가 대상에서 수도권에 묶여 있어서다. 수도권에 묶인 이유는 인구 수 때문이다.
이에 제주특별자치도는 원정 진료로 인한 도민 불편과 의료비 도외 유출을 해소하고, 중증환자 진료 역량을 향상시키고자 정부(보건복지부)에 평가대상에서 제주를 분리해달라고 요청했다.

# 제주자치도, 2026년에 제주권 상급종합병원 지정 적극 추진
허나 제주대병원이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받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데 있다.
보건복지부가 3년마다 정하는 기준이 매번 조금씩 강화되고 있는데, 현재로선 제주대병원이 이 기준을 충족하기 힘든 여건이다.
이번 제 5기 지정 기준에선 '입원환자 중 전문진료 질병군의 환자'가 34% 이상이면서 동시에 '단순진료 질병군 환자'가 12% 이하여야 한다. 제 4기에선 30% 이상 14% 이하였다. 또한 외래환자 중 경증환자도 7% 이하(직전 11% 이하)여야 한다.
이 외에 의사는 연평균 1일 입원환자 10명당 1명 이상이어야 하고, 간호사는 입원환자 2.3명당 1명 이상의 인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는 절대평가 기준으로, 반드시 이 수치를 확보해야 한다. 이 기준을 갖추고 다른 병원과 상대평가를 통해 상위권에 들어야만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상대평가에선 전문진료 질병군 환자가 50%, 경증환자 2%가 만점이라 상급종합병원 지정의 벽이 상당히 높다.
게다가 제 5기 평가부터는 경증 환자 비율을 낮추고 중증환자를 많이 진료하도록 경증환자를 병·의원으로 회송하는 비율을 상대평가에 추가했으며, 중증응급질환과 희귀질환 비율이 높을수록 가점키로 했다.
즉, 제주대병원이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받으려면 감기 및 타박상 등과 같은 단순 외래진료 비율을 크게 낮춰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제주자치도 관계자는 "현재 제주도 내 종합병원들이 상급종합병원 지정을 위한 평가기준을 충족할 만한 의료인프라 역량을 갖추지 못해 이제껏 신청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라며 "이러한 점을 개선코자 제 6기(2027~2029) 상급종합병원 지정을 목표로 전담조직(T/F)을 꾸렸다"고 밝혔다. 오는 13일에 첫 회의를 개최한다.
회의에 앞서 제주도정은 지난해 제주공공보건의료지원단에 '제주도 내 종합병원 진료 인프라 현황 분석'을 의뢰해 올해 2월에 연구를 마쳤다.

# 의료수가 더 오르기만 하는 상급종합병원, 지정되면 진료수준 나아질까
제주에 상급종합병원이 필요하다곤 하지만 제주에 생긴다고 해서 곧바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진 않는다. 정부로부터 예산을 추가 지원받는 것도 아니며, 더 나은 의료진이 마구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단점이 더 크게 부각된다. 우선 지정되면 그 즉시 당장 의료비가 상승한다.
상급종합병원은 다른 종합병원에 비해 의료수가가 더 높다. 제주대학교병원이 상급종합병원이 되면 진료비용이 더 비싸진다는 얘기다. 선택진료비도 더 올라간다. 또한 1, 2차 의료기관에서 발급받은 진료의뢰서가 있어야만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된다. 지금처럼 곧바로 3차 의료기관에 갈 경우, 상당한 진료비가 청구된다.
상급종합병원 지정이 제주도민을 위해 더 나은 의료수준을 제공하기 위한 거라곤 하지만 정작 중증이 아닌 경우의 대다수 도민들이 혜택을 받는 게 아니라 되려 더 부담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이 때문에 "더 비싼 돈을 주고 진료를 받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뒤따른다.
이에 대해 강동원 도민안전건강실장은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된다고 해서 당장 의료수준이 올라가는 건 아니지만 의료수가가 더 올라가기에 향후엔 좀 더 나은 의사들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면서 "게다가 1, 2차 진료를 받지 않으니 의사들은 그간 하지 못했던 자기 분야의 연구에 더 매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전문의 확보가 용이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강동원 실장은 "물론 대신 도민들은 진료비용 증가 부담으로 이어지게 될 테지만, 차후 의료수준이 올라가면 제주에서 육지로 나가야만 하는 원정 진료 건수와 비용이 줄어들 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실제 제주대병원이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받기 위해선 전문의 확보가 그 무엇보다 절대적인 조건이다. 허나 올해 상반기에만 5명의 전문의가 그만두고 있어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
한편, 소아청소년과의 전문의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문제다.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받기 위해선 감기 등의 단순 외래진료 비율이 낮아져야 하는데, 소아과의 대부분 진료가 이 형태라 어느 종합병원이나 해가 갈수록 소아과 전문의가 줄어들고만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지부는 제 5기 지정기준으로 2024년 1월부터는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 진료과목만큼은 상시 입원환자 진료체계를 갖추도록 의무화했다. 이를 위반할 시엔 기 지정된 상급종합병원이라 할지라도 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