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삼다도(三多島)

 

(1) 삼다(三多)

제주 섬을 부르면 삼다도(三多島)가 떠오른다. 삼다도를 부르면 제주섬이 대답한다. 섬과 섬을 이어주는 건 돌과 바람과 여자의 활동이었다.

 이 섬에 처음 와보는 사람들이 우선 이색적으로 느끼는 것은 오름 군(群)이 형성하는 물결 지는 지평선과 세계에서 보기드믄, 독특한 제주만의 돌담문화일 것이다.

가는 곳마다 만나게 되는 환상의 가로획, 아름다운 수평선과 돌로 길게 쌓아 올려 경계를 이루고 있는 돌담들이 고전적 표정일 것이다.

밭의 경계, 길의 구획, 집 울타리, 돌담들까지 숭숭한 구멍으로 귀를 열고 이방인을 맞이하는 그 서투른 표정들일 것이다.

심지어는 묘지까지도 겹겹이 돌로 쌓아 산불을 방지하고 우매한 마소들의 진입을 방지하며 신문(神門)을 갖추어 선조들의 영혼까지 보호하는 이 섬의 숨결일 것이다.

돌담 벽으로 차단(遮斷)을 하되 동시에 숭숭한 구멍으로 통과(通過)가 있는, 그 영원한 숨쉬기가 있는 풍경일 것이다.

막힘과 뚫림의 여백일 것이다.

 또한 섬을 한 바퀴 돌다보면 바다에서, 들판에서, 해안선에서 아직까지도 여성의 활동이 많다는 것을 자연히 보게 될 것이다.

 짧은 여행기간 동안에도 바람의 얼굴을 만져 보게 될 것이며, 운이 좋으면 바람의 갈퀴를 든 성난 얼굴을 보게도 되고 뱃길이 끊겨 옴짝달싹도 못하는 대자연(大自然)의 경외(敬畏)를 느끼고 철저한 고립(孤立)의 경험(經驗)까지도 하게 될 것이다.

창파에 조각배 하나로 몇 달을 걸려 뭍으로 교류하던 물마루 높던 시절, 섬사람들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단절(斷絶)의 섬에서 처절(悽絶)한 고독(孤獨)을 배웠다.

섬사람들은 거센 바람이 삶을 온통 휩쓸고 지나가는 돌 많고 척박한 화산회토의 뜬 땅에서 가난과 인내(忍耐)를 배웠다.

시퍼런 바다의 파고 높은 물이랑 속에서 시련을 배우고 그 혼을 단련시켰다.

혹독한 시련을 타고 넘는 지혜를 배웠다.

 반도 오백년 샌님의 역사가 경멸했던 바다, 아니 무서워서 피하기만 했던 바다, 그 난관의 살찐 바다를 맨발로 들쳐 메고 억세게 여기, 이 시대 앞에까지 따라온 것이 바로 돌 많고 바람 많고 여자의 활동이 많다는 삼다도(三多島)였다.

삼다도는 "돌과 바람과 여자"의 그 운명적 조합에서 섬의 원초와 미래의 기막힌 조응(照應)을 예감하게 된다.

돌이 주는 강인함과 무뚝뚝함, 태고(太古)에서 태고를 몰고 오는 기류, 그 바람의 무궁한 변화와 낭만성, 그 모두를 몸에 지닌 듯한, 섬 여성들의 야성적 그리움을 읽는다.

 돌의 영원성과 바람의 예술성 그리고 비바리로 대변되는 섬 처녀들의 야성적 건강미와 지혜로운 활동성은 강하게 미래를 잡아끈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제주의 시인 정인수 님은 그의 시집 "삼다도(三多島)"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三多島

 바람은 / 돌을 품고 입술을 깨무는 비바리의 / 치마폭에서 울고

돌맹이 바람 맞으며 / 비바릴 지키는데 / 비바린 바람마시며 / 돌처럼 버텨 산다.

 비바리는 시집 안간 다 큰 처녀를 지칭하는 제주어이다.

 이 '비바리'라는 어감만으로도 돌과 바람과 여성성이 조합된 강한 야성적 볼륨과 율동의 이미지를 느끼게 한다.

 
비바리

 情일랑 돌 틈에 묻고 / 돌아서면 시퍼런 / 작살

쌍돛대 / 하늘을 박차 / 태양을 밀어붙이며,

망사리 두툼한 무게만큼 / 부풀어 오르는 가슴

 태양의 딸들이 강한 생명력, 신선한 야성미의 굴곡과 풍요, 풍성한 미래를 읽는 이의 가슴에 안겨 주는 명시이다.

 

(2) 돌 담

제주섬은 한마디로 돌로 이루어진 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돌이 많다.

화산 폭발로 인하여 이루어진 현무암과 용암석들이 대부분이다.

바닥에 뒹구는 것이 다 돌이었다.

'돌버덕'이라 하여 돌로만, 암반으로만 이루어진 돌 들판이 있는가 하면 돌무더기 층이 깊고 너르게 형성된 곳에 나무와 풀이 자라 식물 숲을 이룬 '곶자왈'이 있다.

또한 한 군데로 돌들을 모아 쌓아 성을 이룬 '돌궤' 돌무더기군들도 쉽게 볼 수가 있다.

 해안선도 마찬가지로 돌로 이루어져 있음을 본다.

햇빛과 소금기에 절여진 새카만 바위와 돌들이 제각각의 괴상한 형태로 부서지는 하얀 파도를 맞아 날카롭게 뻗쳐 있음을 본다.

들판과 바닥에 널려져 있는 돌들을 치워냄과 동시에 그 돌들을 모아서 쌓아 올려 경계로 삼아 이루어진 것들이 바로 제주의 밭이요 밭담이다.

 그러나 밭담이 돌들이 기초부분도 그러하거니와 모가 진 돌들이 많은 것으로 봐서도 널려 있는 돌을 그냥 옮겨 쌓은 것이 아니라 바닥에 박혀있는 돌, 바위들을 캐어 옮겨 쌓은 것이 대부분이다.

정(丁)과 물메 (큰 쇠망치, 햄머)와 쇠궤(쇠로 된 지렛대)를 사용하여 순전히 인공(人工)으로만 바위를 쪼개고 일구어 내어 밭을 정리하고 밭담을 쌓는 고달픈 작업이 대(代)를 걸쳐 이루어져 내려온 것이다.

이렇게 피와 땀과 눈물과 지혜(智慧)가 어울린 고달픈 시간(時間)의 조각들이 기나긴 세월을 가늠하여 칠 백리 한 뼘 땅에 만리장성(萬里長城)의 수십배에 이르는 기나긴 돌담을 직립(直立)하게 쌓았다.

그리고 이 직립으로 쌓은 돌담은 섬을 그물망처럼 얽어 바람으로부터 섬을, 섬의 작물(作物)들을 지켜 왔다.

제각각의 형태로 모난 돌, 고르지도 못한 그 말없는 돌들이 위, 아래, 상하좌우(上下左右)로, 서로가 들고 남을 맞추어 정답게 자립(自立)으로 일어섰다.

만리장성(萬里長城)보다 더 긴 情으로 情을 쌓으며 파도치는 세월을 이어온 이 고장 선조들이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역사(歷史), 그 자체였다.

이 제주섬을 가로로 세로로 그물망처럼 얽으며 쌓아놓은 서투른 듯 견고한 돌담의 총 길이는 6만km, 15만리에 이른다.

이 지구를 한 바퀴 반을 너끈히 감싸 돌린다.

화산회토의 뜬 땅에 돌마저 많아 척박한 땅이기는 하나 바람이 많음을 감안하여 볼 때 돌이 많다는 것은 오히려 행운(幸運)이라 할 수 있다.

만약에 이런 돌들이 없었다면 과연 바람 많은 제주가 어땠을까 아찔한 일이다.

모양 자체도 둥글지가 않고 모가 지어 맞추어 가며 쌓을 수 있고 표면이 거칠고 구멍이 숭숭 곰보지어 있어서 돌과 돌이 마찰력이 크므로 센 바람에도 웬만해서는 넘어지지 않는다.

돌과 돌 사이의 부분이 동공(洞空)으로 남아 있어서 바람이 숨쉬기도 좋다. 무식한 바람이 빠져나가기도 좋게하여 차단과 통과의 지혜를 제공한다. 이래서 밭이나 길, 집 울타리의 경계 벽이 되어 바람을 막아주고, 우매한 마소들을 차단하며, 산불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공기의 유통을 원활히 하여 식물의 생육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은 필자의 시조 "돌담길"이다.

제주 돌담길

1.고향(故鄕)을 꿈꿀 때면 / 돌담 먼저 눈을 뜬다.

돌 틈새로 눈 맞추던 / 첫사랑이 달로 뜨면

유년(幼年)의 / 새벽별들은 / 담벼락에 귀를 열고.

 

2. 찬 이슬 발목 적시던 / 테우리의 어린 새벽을

가뭇이 굽은 잔등이 꼬불꼬불 인도하던

이끼 낀 회억(回憶)의 창가를 / 그대여! 오늘 서성이는가.

 

3. 어진 싹 바람을 막아 / 햇살 열린 / 뚫림의 벽

지붕 얽듯 섬을 얽은 / 돌 그물의 숨소리여!

태풍도 / 이 팔괘(八卦)의 진(陣)에 / 걸려 웃고 튀었다.

 

4. 위아래 / 상하좌우(上下左右) / 어께 걸며 일어선 섬

수평선 획(劃)을 질러 소라귀가 열려오는,

비바리 / 억새꽃 사랑도 / 일렁이던 꿈의 길.

 

※ 테우리 : 목동

팔괘(八卦)의 진(陣)(팔진도) : 제갈공명의 미로(迷路)작전(作戰)의 하나. 돌로 얼기설기 쌓아 수시로 변화를 주어 그 안에 들어가면 얼른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 지구를 한 바퀴 감싸 도는 기나긴 제주 돌담문화의 상징적 궤도는 대륙과 대양으로 또 한 바퀴 더 돌며 그 숭숭한 구멍으로 청정(淸淨)한 영혼(靈魂)의 바람소리를 일으킬 것이다.

 

 (3) 돌하르방

- 돌하르방은 평화(平和)와 장수(長壽)를 상징(象徵)하는 인간계(人間界)의 수호신(守護神)이다.

 

‘하르방‘이란 할아버지의 제주적 이칭이다. 따라서 돌하르방이란 돌로 만든 할아버지라는 뜻이다.

돌하르방은 제주도의 곰보돌 즉 현무암(玄武巖)을 그 재료로 하여 큰 귀와 왕방울 눈, 주먹코를 포인트로 하여 조각한 상반신상이다.

돌하르방은 후덕한 큰 귀와 강직 온유한 해학적(諧謔的) 얼굴, 만리를 쏘아보며 투시(透視)하는 눈을 가진 조각(彫刻)예술품(藝術品)이다.

악(惡)과 죄(罪) 지음에 대한 강력(强力)한 경고(警告)와 액막이 및 게으름을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불굴의 기상을 표현해 놓은 무뚝뚝한 석상(石像)이다.

장수(長壽)의 상징(象徵)이며 고을의 액을 막는 성문 밖 수호신(守護神)이며, 관청의 정문(正門)을 지키는 청렴결백한 수문장(守門將)이다.

만리를 쏘아보는 눈은 선견(先見)과 통찰(洞察)의 표상이며 죄 지은 사람을 뜨끔하게 경고하는 위력을 발휘한다.

 야무진 눈망울은 귀신이나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겁을 주고, 어린이나 선량한 인간에게는 정든 위엄과 유머를 준다. 보는 이로 하여금 인정스럽게 안도감을 주는 반면, 게으름이나 흐트러짐은 적극 책망한다.

두 손으로 배를 감싸 안은 숭고한 철학으로 우주공간을 두르고 우주를 암시한다.

불의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산 같은 의지와 용맹으로 앞을 쏘아 본다. 이 앞에서는 수령 이하 그 누구도 말에서 내려 지나가야 한다.

돌에는 혼이 있다. 돌이 상징하는 바는 무변(無變)과 영원(永遠)이며 달관(達觀)과 지혜(智慧)를 상징한다. 돌이라 하여 돌대가리를 연상하는 사람은 진짜 돌대가리님이다.

돌 머리는 아니라하더라도 눈이 밝은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아인슈타인은 독일어로 "하나의 돌"이라는 뜻이 아닌가.

돌하르방을 조각하는 돌의 재질은 역시 제주의 곰보돌이라야 한다.

제주의 곰보 돌에는 흡반(吸盤) 같은 그 구멍구멍마다 정(情)이 속속 박히어 있고 또 그 구멍으로 악(惡)과 질병(疾病)과 액(厄)을 흡수하거나 막아준다.

그 뚝심과 위세에 악(惡)이 감히 얼씬거리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육지부에서 대문 앞에 채를 걸어두는 이치와도 같은 것이다.

귀신 녀석이 어슬렁거리며 와서 엿보다가 괴상한 놈이 괴상한 벙거지의 옷을 보고 그 구멍을 세느라 밤새우게 하여 액을 막는다.

머리에 쓰고 있는 모자와 그 테는 하늘의 운행 원리를 상징한다.

돌하르방은 평화와 장수의 상징이며 영원성이 상징이다. 허한 곳을 막아주는 영혼의 수호신이다.

이러한 철학(哲學)과 해학(諧謔)을 지닌 돌하르방이므로 육지부에서도 집집마다 제주의 돌로 만든 돌하르방을 하나씩 집에 두어 액을 빨아들이는 역할을 부여할 만하다 .

- 현명한 연상작용(聯想作用)은 현명한 지혜(智慧)를 가져다준다. -

- 눈이 밝은 자는 천차만별(千差萬別)속에 평등(平等)을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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