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제주도의회 소회의실서 개최
이상봉 제주도의원, 2021년 '죽음교육 진흥조례안' 발의
토론 참가자들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바꿔야"

'메멘토 모리(Mememto mori)'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다. 고대 로마에서 승리를 거둔 장군이 돌아올 때 노예를 시켜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고 한데서 유래했다. 당시 '전쟁에서 이겼다고 우쭐대지 말라, 너도 언젠가는 죽으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뜻으로 쓰였다.
현대사회에서 '메멘토 모리'는 조금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죽음을 의식해 삶을 더 가치있게 살아가라"에 가깝다. 죽음을 받아들이면 신기하게도 삶과 더 가까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들 말한다. 우선순위를 선별하는 눈이 명확해질 뿐더러 현재 우리가 가진 것들을 더 가치있게 영위할 수 있다고. 두렵고 기피하고 싶은 '죽음'이라는 대상이 오히려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다.
품위있고 존엄하게 생을 마감한다는 '웰 다잉(Well-Dying)'은 전국에서 트렌드이자 문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009년 대법원이 무의미한 연명치료 장치제거 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면서부터 본격화됐다. 이후 2016년 일명 '존엄사법'이 제정됐고 2018년 시행되면서 사망 임박 임종과정 환자들이 자신의 결정에 따라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기반, 즉 죽음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법적 근거가 갖춰졌다.
전국적으로 '웰 다잉' 관련 조례는 죽음에 임박한 노년층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경향이 많았다. 이는 2021년 제주도의회 이상봉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제주특별자치도 죽음교육 진흥 조례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한 단계 발전했다.
'죽음교육 진흥조례'의 가장 큰 목적은 웰 다잉, 잘 죽는 것을 한 단계 넘어서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가치를 깨닫고 삶과 죽음에 대한 합리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조례가 제정된 후 전국 최초로 제주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죽음에 대한 지자체 차원의 교육이 이뤄지게 됐다.
이 의원은 해당 조례안에 대해 "죽음의 본질을 명확히 인식하고 또 죽음을 이해해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가치를 깨닫고 삶과 죽음에 대한 합리적 태도를 가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지난 25일 제주도의회 소회의실에서는 '죽음교육 확산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서는 죽음교육 진흥을 위한 교육기반 구축, 죽음교육 전문가에 대한 역량강화와 지원 등에 대한 협력을 점검하고 웰 다잉 문화 정착과 확산을 위한 정책을 모색했다.
이날 주제발표는 '죽음에 대한 긍적적 인식, 자신의 삶에 대한 열정'을 주제로 고려대학교 죽음연구센터 신경원 센터장이 맡았다. 그녀는 죽음교육의 목적이 삶의 위기와 문제를 재조명 해 우선순위를 정립할 수 있게 하는데 있다고 설명한다. 언젠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함으로써 현재의 삶을 소중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이로써 우리가 가진 것을 조금 더 가치있게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제발표 뒤 이어진 토론에서 제주마음치유교육원 박세원 원장은 죽음 충동을 '잠깐 존재하는 순간적인 마음'이라고 봤다.
그는 "예를 들어 부모의 이혼이나 왕따로 죽음을 생각하는 청소년들이 있을 때 그 마음은 어떤 조건을 대상으로 잠깐 존재하는 마음인 것"이라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죽고 싶은 감정이 자세히 보면 감정이 머물다 사라지는 것의 연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죽고싶은 감정에는 기질적 성향과 살아오면서 했던 교육이나 판단들이 작용한다. 그 감정을 일으키는 상대와의 관계에 따라 얼마나 지속되는지 결정되기도 하고 그날 개인의 상태에 따라서도 자극받는 세기가 달라진다"며 "따라서 죽고 싶은 마음은 나의 의지가 아니라 상황이 만들어 준 결과이기 때문에 결국 사라진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면 차츰 회복될 수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명상하면 감정을 객관화할 수 있고 스스로 회복하는 과정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제언했다.
BBS제주불교방송 이병철 부장은 죽음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에게 죽음교육을 하게 만들 수 있는 조례를 제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어느정도 연세가 있는 분들은 어쩔 수 없이 죽음에 대한 어떤 습관이 축적돼왔기 때문에 (인식을) 바꾸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며 "인터뷰를 진행하다 '아이들한테 죽음에 관련된 동화책을 읽어주는데 자연스럽게 잘 받아들이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앞으로 죽음교육이 좀 더 확산되려면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춰야한다는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문원영 제주도 평생교육팀장은 토론회에서 "지금까지는 웰다잉, 죽음을 준비하는 당사자에 대한 교육이나 문화 조성에 치중해 왔다면, '죽음 교육 진흥조례'의 가장 큰 목적은 그걸 한 단계 넘어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가치를 깨닫고 삶과 죽음에 대한 합리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게하는 교육활동"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주가 자살률이 높기 때문에 웰다잉 문화와 인간 존엄의 교육 투트랙으로 나가야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봤다"고 밝혔다.

토론자들은 이날 아직 도민사회에 만연한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해야할 점으로 언급했다.
신경원 고려대 죽음교육연구센터장은 "상담이나 도움을 구할때는 자기의 마음이 열려있어야 한다"며 "그래서 죽음교육은 탑다운 형식(조직 상위에서 먼저 수립 후 하위직에 전달해 실행하도록 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죽음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미 교육이나 방안들은 마련돼 있기 때문에 위쪽에서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장을 한번 마련하던가 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의견을 표했다.
좌장을 맡은 윤용택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도 "교육청에서 학생들을 위한 교육조례를 마련할 때 여러가지 안되는 이유가 있었다"며 "교사들이 하는 일이 워낙 많다보니 업무부담 문제도 있고, 학부모들의 공감부족 등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아직 어린데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고 자살 예방 교육 등 유사 조례들과 중복된다고 받아들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현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죽음교육에 관한 준비는 됐는데 일선 교육 현장의 반대로 진행이 안된다는 말을 듣고 안타깝다"며 "일본에서 한 고등학교 교사가 1년에 12번 죽음 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몇 년 뒤 교내폭력이 30%이상 감소했다. 실제 교육 효과가 있는데 '죽음을 이야기하면 비관적이고 염세적이 되지 않겠느냐'는 인식때문에 자꾸 시기를 놓치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죽음에 대한 혐오가 심한 예를 들자면 2~3년 전 강의를 요청받아 제목을 '죽음은 소멸인가'로 잡은 적이 있다. 제목을 바꿔달라고 해서 '지성인을 위한 아름다운 마무리'로 했다. 내용은 전혀 바뀐 것이 없다. 강의하는 16년 간 이런 일이 참 많았다. 최근 들어서 줄었다고 생각했는데 워낙 (이런 인식들이)뿌리깊게 있어서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여한 문원영 제주도 평생교육팀장과 황순실 제주도 보건위생과장은 죽음교육 확산과 부정적인 인식을 줄이기 위한 긴밀한 협조를 약속했다.
문원영 팀장은 "오늘 토론회에서 죽음을 공포와 두려움의 단어가 아닌 새로운 긍정의 단어, 생명 존중의 단어로 바꿔야하는 것이 가장 큰 지향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지금까지 입관체험이나 상실에 대한 치유 등으로 교육방향을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긍정 단어로 바꾸는 데 집중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황순실 과장 또한 "토론회를 참여하고 지켜보면서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며 "저희가 웰 다잉 부서다보니 60대나 중장년 층을 대상으로 경제활동 프로그램 등과 죽음교육을 결부시키면 거부감도 줄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저희 부서에서도 적극 노력하겠다"고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