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는 말이 갑자기 유행하고 있다.

사회현상적으로 어떠한 '말'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경우 그 사회는 그 만큼 그러한 현상이 미약해져 있다는 것이 역설적사실이다.

5월21일을 '부부의 날'로 우리가 정하게 된 것 또한 그 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그 부분에 대한 가치관이 미약해 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높은 지위에 있는 만큼 사회에 대한 책임도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거져는 없다'라는 말이다.

초기 로마시대에 귀족들이 자신이 누리는 신분적 위치와 사회적 명성에 걸맞게 책임과 의무를 다해 로마를 세계제국으로 만든 정신적 도덕의식을 가리켜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공짜는 없다'이다.

이같은 도덕성으로 인해 세계제국으로 우뚝 선 로마가 제정 로마로 정치체제가 바꾸어지면서 권력이 개인에 집중, 귀족들이 향략에 빠지면서 망국으로 치 닫는 역사적 사실은 지도층은 물론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할때 나라가 망한다는 흥망의 근간이 될 수도 있다는 뜻에서 이 말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말이 유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사회에 '거져 먹겠다'는 '공짜의식'이 만연해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기업 감사들이 집단으로 외유성 남미출장을 갔다 여론의 도마위에 오르는 것도 이러한 '공짜의식'의 발로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비단 이것 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입지가 어디에 있는지 그 입지에 따라 어떻게 처신을 해야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충족시키는지도 모른채 휩쓸려 '묻어'가며, 정치적 '인기'나 얻어 보려는 자칭 지도자들이라면 이들도 '공짜의식'에 젖어 있다는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대중의 눈을 현혹시켜 스스로 내가 커 보이게 되는 자가당착에 빠져, 입지에 마땅한 행위의 적정성을 망각하고 소위 '오버'를 해버리게 되는 결과가 빚어지는 것은 아닌가.

토인비가 '굳 센스'라는 말로 극찬한 '중용'은 처신의 철학이다.

한마디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도덕성과 처신을 말하는 것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처신을 달리하는 것이 '중용'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중용은 '화(和)'라고 칭한다.

'어울리는 것'이다. 그것은 '멋'이고 '편을 가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제주도는 어떠한가.

어울리는 멋은 없고 편만 가르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교육은 물론 지역까지도 편만 가르고 있다.

여기에다 그 지도자들은 그에 걸맞는 '책임과 의무'는 뒷전이고 편가르고 싸움하는 사이에 끼어 '목소리를 높이며' 말로만 하는 '인기'에 편승, '무엇인가'하는 것처럼 도민들 눈을 현혹시키고 있다.

자신의 처한 입지와, 대중 모두를 위해 어울리려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적 행동을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외면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도 저것도 아닌 안개속인지 헷 갈리게 하는 노련한 기술이 있는지, '오버 액션'들을 하고 있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하도록 부채질 하고 있다고 본다면 잘 못 보는 시각인가.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개인이 국가나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만은 아니다.

국가나 사회에도 그것은 있다.

지역도 마찬가지다. 제주특별자치도와 국가간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도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아닌가해서 하는 말이다.

'거져는 없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일부러 편을 갈라 놓고 그 틈새에서 '인기'를 얻어보려는 것을 '중용'은 '소인'이라고 칭하고 있다.

중용에서 소인은 '어울리지는 못하고 편만가르는' '동이불화(同而不和)'라고 하고 있으며 대인은 '편은 가르지 않고 어울리려 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FTA협상결과에 대한 도민들의 입장도 그렇다.

이제 국회비준절차가 남아 있으나 이미 타결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부에 건의할 종합대책도 토론과 공청회를 거듭하며 정리를 했다.

이러한 차제에 '선물을 주겠다'고 찾아 온 장관을 그처럼 문전박대 할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에게 득이 될 것인가.

그것도 너무 '오버'를 한 것이라 안타깝기만 하다.

편 만 가르고 으르렁 대다가는 네편 내편을 떠나 '다 같이 간다는 것'을 '최근의 역사'에서도 배우지 않았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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