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포스트 재보선' 악몽이 또 다시 재연됐다.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주민투표법상 개표 기준인 33.3%를 넘기지 못하면서, 사실상 한나라당의 패배로 마무리됐다.

주민투표의 내용은 '소득 하위 50%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안'과 '소득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는 2011년, 중학교는 2012년부터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안의 양자택일 형태였지만, 한나라당은 투표 참여운동, 민주당은 투표 거부운동으로 맞섰기 때문이다.

지자체의 정책투표였지만 한나라당이 중앙당 차원의 전면 지원에 나서고도 개표기준에 한참 못 미쳤다는 점에서 민주당에 향후 정국 주도권을 내준 셈이 됐다.

◇수도권 "예상된 패배였다"…애써 태연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은 "예상된 패배였다"며 차분한 반응을 보였지만, 한편에선 내년 총선과 대선을 의식해 불안함도 감추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지난 4·27 재보선의 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 선거 4곳 중 경남 김해을 단 한 곳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모두 패배했다.

특히 '천당 아래 분당'이라고까지 불렸던 텃밭 중의 텃밭 분당을 야당에 빼앗기면서 수도권의 민심이탈 현상을 경험했었다.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수도 서울을 배경으로 치러진 이번 주민투표에서 맞이하게 된 또 한 번의 패배가 반가울리 없다. 위기감을 재확인한 서울과 수도권 의원들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진 것이다.

이종구 서울시당위원장은 이날 뉴시스와 가진 전화통화에서 "사실 개함 기준인 33.3%를 넘기기 어려운 것은 언론에도 나왔다시피 모두 공감하고 있는 내용이었다"며 "유감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투표함을 열어보지 못했으니 한나라당의 패배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한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민심 이반현상에 대한 지적에 대해선 "민주당의 적극적인 투표 반대운동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지지자들은 많이 투표장을 찾아주셨다"며 "투표자들의 거의 대부분이 한나라당과 오세훈 서울시장을 지지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번 투표를 통해 한나라당에 대한 변함 없는 지지를 확인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반면 서울지역의 한 의원은 "애초부터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는데 우리가 왜 여기까지 끌려왔는지 모르겠다"며 "정책투표로 정리하면 되는 문제를 당대당의 이념 전쟁으로 가게 된 것은 조금 억울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강남의 다른 의원 역시 "선거는 무조건 이기는 것이 좋다. 백방으로 뛰었지만 결과가 거기에 미치지 못해 안타깝다"며 "4·27 재보선에서의 분당 패배로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내년 총선까지 분위기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조금 걱정이 된다"고 우려했다.

◇복지 분야 친서민정책 강화에 '초점'

이번 주민투표의 결과는 내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양대 선거를 앞두고 '보편적 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 의사를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3+1(무상보육·무상급식·무상의료+반값등록금)'을 내세운 민주당과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한나라당 역시, 복지의 범위와 혜택을 확대하는 문제에 대해선 긍정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법인세, 소득세 등에 대한 감세철회나 대부업 이자율 인하, 무상보육 등의 친서민 정책들은 '보편적 복지'와도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 내부에서 내년 총·대선을 앞두고 복지 분야의 친서민정책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질 가능성이 있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선거를 앞두고 야당이 복지 정책에 대한 프레임 전쟁을 더욱 적극적으로 시도할 것"이라며 "무상급식에 대한 문제는 접어두더라도 감세나 주택정책 같은 부분은 약간의 수정·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소장파 의원도 "진 것은 아쉽지만 패인을 분석하고 차후를 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며 "민주당의 투표 거부운동은 비민주적이었지만 앞으로 친서민 정책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측면으로 보면 유의미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지도부, 오세훈 책임론 '후폭풍'

한나라당은 다음 달 1일부터 천안 지식경제부 공무원연수원에서 1박2일로 의원연찬회 일정이 짜여 있다.

한나라당은 이번 연찬회에서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결과를 손에 쥔 채 내년 총선과 대선의 전략구상에 돌입해야 한다.

애초부터 중앙당의 전면 지원에 반대했던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홍준표 대표 등 지도부의 책임론이 대두될 가능성도 있다.

친박계 유승민 최고위원과 소장파 남경필 최고위원은 당초 최고위원회의에서 무상급식의 범위를 결정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정책투표에 정치적인 관여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당과의 사전조율 없이 주민투표와 시장직 연계를 선택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징계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 시장의 시장직 연계로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불가피해진 만큼 오 시장의 사퇴시기를 놓고 당 내부에서 갑론을박이 벌어 질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하반기 정국운영과 내년 총·대선에 대한 고민을 한아름 안고 불편한 연찬회를 맞을 수밖에 없게 됐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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