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시정 사상 처음으로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초등학생 친환경무상급식 전면실시 또는 단계적실시를 묻는 투표였지만 사실상 정치적 투표였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결과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과 진보야당의 승리였다. 이들의 바람대로 최종 투표율이 25.7%에 그쳐 개표 조건인 '마의 선' 33.3%를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투표함도 열어보지 못한 채 맥없이 끝난 셈이다.

◇정치인들은 잇속 차렸지만…시민은?

이를 지켜보는 서울시민들의 심정은 복잡하다. 어느쪽을 지지했건 실제로는 얻은 것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까닭이다.

그간 무상급식 논란이 확산되면서 진보-보수간 복지논쟁도 심화됐다. 아울러 사회적 갈등과 혼란, 상흔도 깊어졌다.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었을지라도 그 값을 너무 비싸게 치렀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이를 책임지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오세훈 시장이 투표결과에 책임을 지고 시장직 사퇴와 대선불출마 약속을 지키는 듯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평론가들은 이번 투표 결과를 두고 '오 시장은 지고도 이겼다'고 분석한다.

서울시 최초 주민투표를 발의해 '족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한나라당의 지원사격 없이도 25%대의 투표율을 올려 한나라당 대주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주민투표가 '무상급식 찬반'이 아닌 '단계적 또는 전면적 무상급식'이었다는 점에서 보수층과 일부 서민들의 공감대도 얻었다. '가난한 아이'에 대한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굳이 '부자아이'에게까지 무상급식을 실시해 세금을 더 낼 필요가 없다는 '합리적'이어 보이는 논리도 보수층의 충성도를 높였고, 일부 서민들로까지 지지층을 넓혔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시를 장악한 가운데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오 시장의 판단이 주민투표로까지 이어졌다는 분석도 내놨다. 자신은 '비운의 주인공'으로 물러나면서 여러가지 잇속을 차렸다는 점에서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민주당 등 진보야당 역시 이번 투표를 계기로 오 시장의 시정 전반에 대해 맹공을 퍼부었다. 전면적 무상급식 비용을 상쇄시키기 위해 '한강르네상스'와 '홍수 예산 삭감' 등을 총체적으로 건드렸다. 무상급식에 대한 여야간 정책 대결은 실종되고 오로지 흑색선전만 난무했다.

어느덧 정치적 싸움으로 변질된 이번 투표가 정말 시민들을 위한 선택이었는지 여야 모두에게 묻고 싶은 대목이다.

◇주민투표 180억+보궐선거 300억+사회적 비용=?

오 시장이 시장직을 사퇴하면 당장 재보궐선거로 인한 막대한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 주민투표에 든 공식비용 180억과 보궐선거 추정 최소비용인 300억원, 이에 사회적 비용까지 합하면 시민들에게 돌아가는 부담은 결코 적지 않다.

또 이번 투표 결과에서도 나타났듯 강남권과 비강남권의 갈등이 또 다시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오 시장의 당선을 견인했던 강남·서초·송파는 이번에도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며 탄탄한 보수진영 '표밭'을 자임했다. 반면 관악·금천·강북·은평 등은 저조한 투표율을 보여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결국 정치쇼에 놀아난 것 아닌가"

투표 참여와 상관없이, 또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아이들밥그릇과 시민들을 볼모로 한 이번 투표에 염증을 느끼는 시민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은 하나같이 '정치인들의 정치쇼'에 놀아난 것 같다며 허탈해했다.

회사원 김현태(31)씨는 "순전히 오 시장의 정치 놀음판에 시민들이 놀아난 것으로 보인다. 시장직을 걸고 대권에 나가지 않는다고 해서 민생고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폭우로 인한 산사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라며 "이기적인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이번 투표와 향후 들어갈 비용을 청년실업전셋값 폭등 문제 등에 썼으면 시민들의 삶의 질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았겠는가"라며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고 울분을 토했다.

대학생 오선주(25·여)씨는 "오 시장은 정치생명을 걸고서라도 정책적 의지가 걸린 사안은 끝까지 관철해낸다는 이미지를 가져갔지만 정작 시민들은 얻은 것이 없다"며 "투표가 끝나고 나니 더욱 허탈하다"고 토로했다.

왕해나(26·여)씨는 "정치인들의 정치쇼에 시민들만 놀아난 기분"이라며 "복지로 접근해야 할 것을 정치문제로 비화했고, 복지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긴 것 같아 안타깝다"고 지적했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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