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시장직을 걸었던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개표기준을 넘기지 못하고 끝남에 따라 사실상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기정사실화되면서 정치권이 크게 술렁이고 있다.

오 시장은 이르면 26일 서울시장 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힐 것으로 알려져 이 경우 정국은 10·26 서울시장 보선 격랑으로 급속히 빠져 들게 됐다. 특히 이번 서울시장 보선은 내년 4월 19대 총선과 12월 18대 대선의 전초전 성격으로 여야가 사활을 걸고 달려들 가능성이 높아 정국의 '블랙홀'이 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여야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차기 서울시장 보선에 자천타천으로 거명되는 인사들이 10여명나 거론돼 여야 내부 경쟁이 점차 가열되고 있다.

주민투표가 끝난 직후 가장 먼저 테이프를 끊은 인물은 민주당 천정배 최고위원이다.

천 최고위원은 투표 이튿날인 25일 긴급기자간담회를 열고 "10월에 선거가 치러지는 것을 전제로 내년 대선·총선 전 서울시장 선거가 과거세력과 미래진보가치의 결전이 될 것"이라며 "서울시장직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천 최고위원은 또 "(출마하려면) 선거 60일 전에 서울시민이 돼야 하는데 알고 보니 시한이 내일까지"라며 주소지 이전 계획을 언급하면서 "이 일(서울시장 선거)이 크게 보면 안산만의 일이 아니고 전체 대한민국을 전진시키자는 것인 만큼, 이해해주실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미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투표율 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으로 천 최고위원이 거론되긴 했지만 이 같은 전격적인 출마 선언은 상당히 이례적인 부분이다.

그는 이미 누구보다 일찍이 내년 대선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공언한 데다, 그동안 4선 의원이라는 긴 경력을 경기도인 안산에서 쌓아온 인물이다. 더욱이 평소 상당히 진지하고 신중한 그의 스타일을 볼 때 이처럼 갑작스레 전면에 나서기로 결심한 것은 의외다.

이처럼 천 최고위원이 곧바로 주소지를 옮겨가면서까지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이번 주민투표로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될 경우 얼마나 경쟁이 치열해질 지를 예고하는 대목으로 볼 수도 있다.

역시 같은 날 또 한 명의 야권 인사가 서울시장 출마를 저울질하고 나섰다.

비례대표와 서울 구로을 지역구를 포함해 3선 의원을 지낸 김한길 전 의원이다. 김 전 의원은 천 최고위원이 출마 선언을 하던 같은 시간 기자들과 만남을 갖고 "(서울시장 출마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전 의원은 이날 "18대 국회에서는 대선 패배에 책임을 지고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지만 내년 총·대선 승리에 기여하기 위해 내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할 때가 왔다"며 "나도 그 저울 위에 올라가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집권여당 당시 수도권발전대책위원장을 맡았고, 지역구였던 구로을 출마 당시 서울시 가운데 54%의 최고득표율로 당선됐다는 점 등을 들어 자신의 경쟁력을 에둘러 내세우기도 했다.

이처럼 주민투표 이후 곧바로 서울시장 선거로 인한 분위기가 급속히 가열되면서 야권에서는 경쟁력있는 인물을 꼽기에 바쁜 모습이다.

특히 최근 정부·여당에 대한 민심이반 속에서 내년 총·대선 때 야당이 유리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번 주민투표에서도 분위기가 야권으로 쏠리면서 내부 경쟁은 특히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에서는 김 전 의원으로부터 구로을 지역구를 이어받은 박영선 정책위의장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한나라당에서 나경원 최고위원이 나설 경우 여성 상대후보로서 경쟁력이 있다는 분석이다. 여성으로는 추미애 의원 역시 서울시장 출마에 뜻을 두고 이달 말께 출판기념회에서 자신의 생각을 밝힐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무상급식 주민투표 대응 과정에서 무상급식대책위 위원장으로 앞장서 투표거부 운동에 직접 나선 이인영 최고위원이나 오랜 지방자치단체장 경력을 지닌 서울시당위원장인 김성순 의원, 정책위의장 출신으로서 현재 서울시 수해진상조사단장인 전병헌 의원 등도 후보군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원외에서는 이미 지난 6·2지방선거에서 오 시장과 대결을 벌였다가 아쉽게 탈락했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 외에 두 차례나 서울시장 후보경선에 나섰던 이계안 전 의원,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 밖에 민주노동당에서도 이정희 대표를 비롯해 최규엽 새세상연구소장, 김종민 서울시장위원장, 이상규 전 서울시장 후보 등이 자천타천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더욱이 내년 총·대선에 앞서 통합·연대 문제가 야권의 화두가 돼있는 상황에서 오는 10월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될 경우 내년 선거의 방향성을 보여줄 수 있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한편 주민투표 패배로 인해 내홍에 휩싸인 한나라당은 어수선한 분위기를 추스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장 보선 문제에 있어서는 아직 상대적으로 잠잠한 편이다.

내년 총·대선에 앞선 전초전이 돼버린 이번 선거의 패배로 인해 또 다시 서울시장 출마자를 내세워야 하는 상황에서 계파별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런 가운데 나경원 최고위원의 경우 대중적인 인지도를 바탕으로 여성으로서 지난 전당대회 때 3위를 차지한 데다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도 서울시장 후보로 경선에 나선 바 있다. 이 같은 점을 바탕으로 성대결이 이뤄질 경우 강점을 보일 수 있는 후보로 꼽히고 있다.

전당대회 당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원희룡 최고위원도 출마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또 서울 출신인 정두언 박진 권영세 의원 등도 거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는 10월 선거가 치러지게 되면 외부인사 영입 가능성이 어려워짐에 따라 정운찬 전 총리를 비롯해 정치인 출신 장관들의 차출 가능성도 함께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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