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진보 정치권의 잇단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줄곧 시민사회운동 테두리 안에서만 활동해오던 박원순(55)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왜 갑작스레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할 결심을 했을까.

6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지지선언이라는 최대 우군을 등에 업고 현실정치에 뛰어들게 된 박 상임이사는 당장 우리나라 정치지형도를 뒤바꿀 돌풍의 진원지로 지목되고 있다.

스스로를 '소셜 디자이너' (Social Designer)라고 부르며 시민사회운동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던 그가 극적인 변신을 하게된 계기는 2009년 불거진 국가정보원(국정원) 사찰논란에 있다는데 이견이 없다.

박 상임이사는 그해 6월 '위클리 경향'과의 인터뷰에서 "희망제작소가 행정안전부와 맺은 3년 계약이 1년 만에 해약되고 하나은행과의 후원사업이 갑자기 무산됐다"며 "나중에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박 상임이사는 "다른 시민단체 역시 관계 맺는 기업의 임원까지 개별적으로 연락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주고 있는데 명백한 민간사찰이자 국정원법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그러자 국정원은 곧바로 "정부기관이나 기업의 시민단체 사업계약에 대해 영향력을 미칠 입장과 위치에 있지 않다"며 "시민단체와의 계약이나 합의는 개별 정부 기관이나 기업의 고유 권한으로 국정원과 관련이 없다"고 반박했다.

국정원은 그래도 성이 풀리지 않았는지 급기야 "충분한 확인절차 없이 허위 사실을 말해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2억원을 요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사건은 원고가 '대한민국'으로 돼 있어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극히 이례적인 사건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1심에서 박 상임이사가 승소했지만 검찰이 항소해 현재진행형인 사건이다.

박 상임이사는 피소 직후 자신의 홈페이지에 "우리 법률은 어떤 형태의 사찰도 금지하고 있고 그것을 처벌하고 있다"며 "처벌받아야 할 사람이 그것을 문제 삼은 사람을 벌하는 것이 우리가 뽑은 정부의 할 일인가"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수많은 시민단체에 대해 정부예산이 사라지고 기업의 지원을 문제 삼고 사람을 바꾸라는 압력이 들어온 사례는 부지기수"라며 이명박 정부의 시민단체 사찰 의혹을 거듭 제기했다.

하지만 이 과정서 '나눔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던 희망제작소가 입은 피해는 적지않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현 정부와 관계가 틀어지면서 진보정권때만해도 물적, 인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대다수 기업들이 후원을 끊었고, 이로 인해 직원의 절반 이상이 줄어 사업전반에 타격을 입었다는 후문이다.

특정 이념과는 일정 거리를 둔 채 봉사활동을 펼쳐오던 박 상임이사는 이같은 상황을 접하면서 이후 각종 강연을 통해 현 정부에 비판적인 발언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또 진보적 시민사회 인사들과 연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아닌 제3의 정치세력 만들기에 힘써왔다.

지난해 6·2지방선거를 앞두고 진보진영에서 제기된 '박원순 대안론'도 이같은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나왔지만 끝내 실현되지는 않았다.

지난달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의 책임을 지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퇴장하는 돌발변수가 발생하면서 박 상임이사로서는 자의든 타의든간에 자신의 정치적 가능성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됐다.

50여일간 동안 백두대간을 종단한 뒤 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사표를 던진 박 상임이사.

국정원 사찰 논란 이후 2년 동안의 예열을 마치고 비로소 현실 정치에 진출한 그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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