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 보고 듣고 느낀대로

오현고등학교 개교 이래 내가 서울대학에 합격하던 해에 가장 많은 인원인 14명이 서울대학에 합격했다. 황순하 재단이사장은 기분이 좋았던지 합격자들을 서울의 자택으로 불러 저녁대접을 해주었다. 특히 이사장은 나를 옆에 앉혀놓고 야간출신으로 서울대에 합격한 것을 축하하면서 우리들에게 다달이 장학금을 주겠다고 말했다.

저녁을 얻어먹은 주제에 당돌하게 장학금 액수와 조건을 물어볼 수 없어 조용히 앉아 있다가, 그래도 그 중 나이가 많은 내가 말을 꺼냈다.
“장학금 액수와 장학금 받은 후의 조건이 있으면 말씀해 줍서.” 하고 입을 열었다.

이사장은 “느네 선배들에게도 장학금을 주고 있는데 월 2만원을 줄 것이고, 졸업 후 2년간 모교에서 선생을 하면 된다.” 고 말했다.

월 2만원이면 1년에 24만원인데 1학기 대학등록금은 30만원 정도이고 1년이면 60만원이 필요한데 1학기 등록금도 안되는 금액을 장학금으로 준다니 이해가 안되었고, 더구나 졸업후 모교에 가서 2년간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한다니 밥맛이 떨어졌다.

“저는 졸업 후 은행으로 갈 생각을 하고 있어 졸업 후 모교에 가서 2년간 복무할 약속을 지키지 못하겠으므로 장학금을 사양하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이사장은 “자네야말로 돈이 필요한 사람인데 왜 그러느냐?”고 되물었지만 다른 애들에게나 많이 주라고 말하고 끝내 사양해버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지점장으로 있을 때 Y선배가 찾아와 저녁식사를 같이 하는 기회가 있었다. Y선배는 재단이사장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았음에도 모교에 와서 2년간 봉직하지 않은 분이어서
“형님은 이사장으로부터 장학금 받고도 모교에 와서 2년간 근무하지 않았으니 약속을 어긴 셈 아니우꽈?” 하고 따졌다.

Y선배는 “멍청한 자식하고는... 주는 돈 받아먹고 볼 것이지...모교에 와서 근무 안 했다고 지금 와서 누가 뭐랜 허는 사람 있나?” 하고 오히려 나를 미련한 사람 취급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도 자신만만한 Y선배의 처신을 부러워해야 할 지, 미련한 나 자신을 한탄해야 할 지, 잠시 판단이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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