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피해 구제법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정치권은 지난 9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해 지난 2008년 9월 이후 영업정지 조치를 받은 저축은행 가입자들에 한해 5천만원 이상(예금보호한도) 예금 및 후순위채 피해액 일부를 보전해주는 내용의 특별조치법을 마련했다.

저축은행 피해자들 중에서는 힘든 환경 속에서 평생 일해 모은 돈을 노후 자금으로 쓰기 위해 모아둔 서민들이 많다. 5천만원 이상 예금은 보호가 되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금융정보 조차 알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일부 부유층들이 예금금리가 높은 저축은행을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 예금액을 5000만원 단위로 쪼개 가족 이름으로 여러 저축은행에 넣어둔 것과 비교된다.

알토란같은 재산을 맡긴 예금자들 입장에서는 특별조치법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가뭄에 단비같은 소식이다.

특히 이번 저축은행 사태가 정부의 정책실패와 감독부실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정부가 피해자들 구제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은 일면 타당하다.

문제는 법의 형평성 문제와 재원마련 방안이다.

정치권이 추진하고 있는 피해구제법은 직접적으로 현행 예금자보호제도의 근간을 뒤흔든다.
재원으로 거론되고 있는 예금보험공사 자금은 은행, 보험 등 모든 금융기관들이 혹시 발생할지 모를 금융사고에 대비해 일정비율로 갹출한 비축금과 정부 출연금으로 마련된 사실상의 공적자금. 운영 기준이 정치적, 정책적 이해에 따라 흔들리거나, 자의적으로 활용되는 순간 이 자금은 '주인없는 공돈'으로 전락한다.

예금보호한도를 최대 5000만원으로 제한한 것은 주인없는 공돈으로 전락하지 못하도록 마련한 방어막이자, 이 이상의 금액은 예금자가 스스로 책임져 달라는 당부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번 저축은행 사태에 대해서만 특별한 조치가 마련된다고 상상해보자.
2008년 9월 이전에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고객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의 사정에는 '피눈물나는 스토리'가 없을 것 같은가.

나아가 앞으로 저축은행 사태와 유사한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특별한 조치'를 요구할 것은 불을 보듯 확연하다. 정무위가 법과 원칙을 무시한 채 부산 민심을 달래기 위해 무리하게 특별법을 강행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정치권의 충심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하필 특별법을 마련하겠다는 시기가 총선 코앞이다.

벌써부터 특별법이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고 법사위에서 표류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무위가 애초 통과시키지도 못할 법안을 내놓고 '생색내기'를 한 게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올 정도다.

저축은행 피해자들의 구제는 현 시스템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실제 저축은행 피해자들은 정부 당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정치권에서도 피해자들의 소송 지원을 자임하고 있다.

갈등을 수반한 사회적 합의는 늘 진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타협'은 늘 가깝지만, 이를 뛰어넘어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게 바로 '정치'가 할 일이다.

표를 의식해 국회 스스로 법 원칙을 훼손하는 위험을 감수할 게 아니라, 우선 숨을 고르고 소송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피해 구제책은 '보상'이 아니라 '배상'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정치권이 주목해야 할 부문은 다시는 이번과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금융 개혁을 가속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서울=뉴시스】김민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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