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인권신장의 상징이신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배출한 민주당, 그 당의 중앙당 지도부가 행한 반인권적이고, 비민주적인 결정에 대해 분노를 넘어 슬픔을 느낍니다.

저는 민주당 중앙당이 우근민 전 제주도지사의 복당을 허용하는 과정을 주시해 왔습니다.

정치의 도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선거에서는 승리가 선이라는 주장이 있다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해 왔고 여성인권신장을 위해 여성부를 만들고, 성폭력특별법을 제정했던 민주당의 역사가 있는데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중앙당 지도부는 ‘성추행용인정당’이라는 비난에도 아랑곳없이 마치 정해진 일정을 따라가듯이 그를 당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김민석 최고위원의 제주 방문 이후, 우 전 지사의 복당 결정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일들에 대해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지난 2월 26일 제주도를 방문해 우 전 지사를 만나서 ‘당 대표 최고위원 등 지도부의 의견을 모아서’ 복당을 ‘공식’ 요청하며, 경선방식까지 밝혔습니다. 이후 3월 3일 민주당 지도부의 일부가 도열한 가운데, 우 전 지사는 복당을 신청하고 민주당 제주도지사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그리고 3월 7일 일요일 저녁 당원자격심사위의 결정이 나오고, 바로 그날 밤에 연이어 최고위원회의 승인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일사천리였습니다.

도지사 시절 그것도 집무실에서 여성직능단체장을 성희롱하여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았고, 또 허위사실 유포, 유사기관설치, 선거비용보고서 허위제출, 사전 선거운동 및 기부행위 등 선거법 위반으로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받아 제주 도정을 중단시켰던 정치인에게 마치 구걸하듯 복당을 요청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복당신청을 밝히는 자리에서 선거출마를 선언한 것은 이미 복당이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니었습니까? 또 복당을 요청하고 난 뒤 당원자격심사위를 연 것은 요식행위가 아닙니까?

공천심사위원회의 논의와 후보들 간의 협의를 거쳐 정해져야 할 경선방식을 마치 기정사실인 양 밝힐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입니까? 이 모든 일들은 우 전 지사를 민주당의 제주특별자치도지사 후보로 세우려 이미 계획된 것이 아니었습니까? 이런 과정이 밀실야합정치가 아니라고 어떻게 변명할 수 있겠습니까?

민주당 대변인은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복당 승인에 대해 ‘순간의 실수나 과오가 영원히 주홍글씨’로 남아야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라고 강변했습니다.

우 전 지사의 성희롱 사건은 2002년 1월 25일에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그가 취한 행동들을 보면 그것은 순간의 실수나 과오가 아니라 8년 이상 지속되어온 사건이었습니다.

성희롱으로 여성부에 신고했다고 피해여성과 상담을 맡았던 여성단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습니다. 또 지난 3월 2일에는 제주도의 13개 시민사회단체가 제기한 ‘성희롱 전력자 지사 출마 포기’ 요구에 대해 바로 그 날로 ‘악의적인 주장’과 ‘왜곡된 판단’이라 강변하며 13:1의 ‘맞짱 토론’을 주장하였습니다.

그의 억울함을 해소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당원자격심사가 있던 날, 우 전 지사는 성희롱 사건에 대한 소명 자료를 제출하였고, 복당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는 소명서를 제출한 2010년 3월 7일까지, 피해여성이나 관련단체 그리고 제주도민들에 대해 한 번도 사과를 한 적이 없습니다. 성희롱판결이 피해자의 판단을 가장 중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희롱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피해자에게 가장 먼저 해야 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 그의 진정성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공직에 나가는 사람의 자격기준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당의 자세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죄도 진정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한다면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당의 복당 승인이라는 면죄부는 자연인 우근민이 아니라 제주도지사로 출마할 뜻을 가지고 복당한 우근민이라는 정치인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공직에 나가고자 하는 이에게는 일반인에게 요구되는 것보다 더 엄정한 도덕적 기준이 있습니다. 그 예로 2008년 한나라당에서는 한 국회의원이 성희롱을 했다는 이유로 그를 사실상 출당 조치했고, 이후 무소속으로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지만, 아직까지 그의 복당을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당시 우리 민주당에서는 그 국회의원과 한나라당을 어떻게 비난하였습니까? 그 비난의 근거가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것과 다른 것입니까?

제가 민주당에 입당한 이유는 수탈과 억압, 인권유린과 학살의 역사를 고스란히 몸으로 감내해야 했던 제주도민의 아픔을 그 어느 정당보다 민주당이 알아주고 또 해원해주고자 노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시절에는 숱한 이념적 공세에도 제주4.3특별법을 제정하였고, 노무현대통령께서는 국가의 수장으로서 진심으로 제주도민과 4.3피해자 유족들에게 사과하였습니다. 이렇게 제주도민의 아픔과 제주의 역사를 이해하고 위로해 준 민주당이야말로 제가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당이었습니다.

저는 변방으로 치부되던 제주도가 말 그대로 ‘특별한 자치’를 통해 평화의 섬, 풍요의 섬, 미래의 섬으로 거듭나는 데 민주당이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줄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민주당에 입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제주도당과 일체의 협의도 없이, 제주도민들의 정서도 고려하지 않은 채 밀실에서 결정하여, 우 전 지사에게 복당을 ‘요청’하고 또 그가 성희롱을 소명하였다고 복당을 허용함으로써 제주도당과 당원들, 그리고 제주도민을 무시했습니다. 이는 민주당 지도부가 제주도를 원칙과 상식으로 대하지 않아도 되는 변방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두 분 대통령의 비통한 서거 후, ‘행동하는 양심’으로 ‘사람 사는 세상’을 이루고 말겠다던 민주당 지도부의 결의와 각오는 다 어디로 내팽개쳤습니까? 한나라당이 침묵 속에 민주당에 쏟아지는 조롱을 즐기고 있는 게 보이지 않습니까?

우 전 지사의 복당으로 제주도뿐 아니라 전국에서 민주당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져 최악의 결과를 낳을 것을 어찌 예상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또 지방선거 필승을 위한 야권과 시민사회의 연대의 틀인 5+4에서 ‘성희롱을 용인한 정당’인 민주당 발언은 어떤 무게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우 전 지사의 성희롱 사건 당시 여성부장관이자 남녀차별개선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가해자에게 1천만원의 손해배상을 결정한 책임자가 한명숙 전 총리였습니다. 같은 당에서 예비후보들이 성희롱 결정자와 피결정자로 나란히 서는 이 희한한 광경이 어찌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우리당 중앙당에 요구합니다.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서도,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킨 민주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도 우 전 지사에 대한 복당 결정은 철회되어야 마땅합니다. 또 공직의 엄정함을 주장하고 여성인권을 보장받아야 할 가치로 여긴다면 우 전지사의 복당 결정은 철회되어야 합니다.

예비후보로서 경쟁자일 수 있는 사람의 복당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마땅치 않다는 비판도, 초년병의 정치적 미숙함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야유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안위만을 걱정하는 것이 오히려 도리가 아니라고 제 양심의 소리가 저를 흔들어 깨웁니다.

제주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말씀드립니다. 밀실에서 야합한 결정으로 제주도민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 전지사의 복당을 철회하십시오.

민주당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두 분 대통령에 대한 존경과 우리당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말씀드립니다.이제 ‘성희롱용인정당’으로 추락하여 제주도민은 물론 온 국민의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민주당 중앙당은 우근민 전 지사에 대한 복당 결정을 철회하십시오.

저는 무기한 단식으로 이 요구를 관철시킬 것입니다.

2010년 3월 9일

민주당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예비후보  고 희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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