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지사, 제주의 민주주의와 싸우려는 건가"
"원희룡 지사, 제주의 민주주의와 싸우려는 건가"
  • 뉴스제주
  • 승인 2019.11.0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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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일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 윤여일 제주대학교 학술연구교수. ©Newsjeju
▲ 윤여일 제주대학교 학술연구교수. ©Newsjeju

“도민의 의견수렴 과정을 64회 거쳤습니다.”

지난 10월 8일 제주특별자치도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제주사회의 갈등 해결을 위해 제2공항 추진에 관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은가”라는 정동영 국회의원의 질의에 대해 원희룡 도지사가 내놓은 답변이다. 도민의 의견수렴 과정을 충분히 거쳤으니 이제 와서 별도의 공론화 절차는 필요 없다는 내용이었다.

64회. 이 수치가 궁금했다. 제2공항 추진 여부를 둘러싸고 몇 차례 공청회와 토론회가 있긴 했지만, 64회는 대체 어디서 산출된 수치일까. 이 수치와 더불어 의심스러워진 것은 원지사의 ‘도민의견수렴’에 관한 이해였다. 

원지사가 도민의 의견을 무엇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도민의 의견을 어떻게 수렴하려 하는지는 무척 중요하다. 「공항시설법」 3조에는 '국토교통부장관은 종합계획을 수립하거나 제3항에 따라 종합계획을 변경하려는 경우에는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의견을 들은 후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여야 한다'라고 적시돼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의견’은 원희룡 도지사의 개인 의견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장으로서의 의견’, 즉 제주도민의 집합적 의견이어야 한다. 그리고 여러 차례 여론조사에서는 제2공항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제주도민의 찬반 의견이 엇비슷하고, 국토부가 성산 지역에 추진하려는 제2공항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의견이 늘어나고, 특히 공론화에 대해서는 압도적 다수가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희룡 도지사의 의견과 제주도민의 의견은 현재 무척 괴리되어 있다.

그리고 「공항시설법 시행령」 제7조에는 '국토교통부장관으로부터 종합계획의 수립 또는 변경에 관한 의견제시 요청을 받은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종합계획안을 14일 이상 주민이 열람하게 하고 그 주민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돼 있다.

이에 따라 11월 4일까지 ‘제주 제2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안)’에 대한 도민의견 수렴과정이 진행되었으며, 11월 5일 제주도는 그 결과를 공개했다. 의문으로 가득한, 사실 편향성이 노골적인 내용이었다.

의견 접수는 홈페이지 360건과 방문접수 105건, 도합 465건으로 보고되고 있는데, 그 내용이 ‘보상대책마련’ 19건, ‘지역상생발전’ 50건, ‘생활기반시설’ 13건, ‘문화시설확충’ 1건, ‘지역문화보존’ 1건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런데 전체 의견의 81%에 이르는 381건이 기타로 분류되어 있다.

이 중 홈페이지를 통해 제시된 360건은 게시물의 제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들여다봤다. 기본계획에 반영되길 바라는 제안 이전에 제2공항 반대의 의견이 비등했다. 전체 360건의 게시물을 제목에 근거해 찬성과 반대 측으로 분류하면 반대 의견이 250건, 찬성 의견이 80건 정도였으며, 그밖에 조류충돌, 지반침하, 도민공론화 등에 관한 질의도 있었다. 그런데 이것들 대부분이 기타로 처리되어 소중한 도민의 의견이 지워진 것이다.

사실 “제2공항에 국제선 노선을 마련하라”라는 의견 등은 현 기본계획에 대한 문제제기이긴 하나 제2공항의 필요성 자체는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찬성 의견으로 셈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 의견이 찬성 의견에 비해 3배나 높았다.

물론 이것을 곧 제주도민의 여론으로 간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체 제주도민 가운데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한 소수의 입장만이 확인되며, 동일인이 여러 차례 의사를 피력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기본계획 확정과 추진을 위한 도민의견 수렴과정이었다고 하나 찬반 의견이 뚜렷하게 대립하는 공방전이 되었으며, 반대 의견이 상대적으로 많았다는 사실이다. 즉 제주도민의 여론을 보건대 기본계획의 확정과 추진으로 넘어갈 시기가 결코 아닌 것이다. 보다 많은 논의가 필요한 때다.

제주도정이 내놓은 「제2공항 기본계획(안) 주민열람 의견접수 현황」을 통해 제주도민의 전반적 의견을 가늠하긴 어렵다. 오히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제주도정의 입장과 태도다. 

첫째, 3배나 높은 반대의견이 드러나지 않도록 기타로 처리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제2공항 추진 입장이 확고하다. 이는 익히 알려진 바이나, 이를 위해 개진된 도민의견을 자의적이고 편향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취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둘째, 도민의 의견을 대하는 태도가 지극히 관료적이다. 465건이나 되는 도민의 의견을 수합한 뒤 불과 수 시간만에 정리 결과를 공개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도민의 의견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분류한 게 아니라 ‘보상대책마련’, ‘지역상생발전’, ‘생활기반시설’, ‘문화시설확충’, ‘지역문화보존’이라는 범주를 미리 설정하고 거기에 해당하는 의견만을 카운팅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결과 도민공론화 요구를 포함하는 전체 의견의 81%가 기타로 분류되었고 ‘문화시설확충’, ‘지역문화보존’은 단 1건인데도 비중을 갖고 제시되었다.

이렇게 ‘제주 제2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안)’에 대한 도민의견 수렴을 거쳤으니 원지사는 이제 도민의 의견 수렴 과정을 65회는 거쳤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민의견 수렴의 횟수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당연히 의견의 내용이며 의견이 반영되는지 여부다. 도민의 의견을 받고서는 묵살하고 지운다면 도민의견 수렴과정은 불필요한, 아니 있어서는 안 될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

현재 많은 제주도민이 제2공항 추진 여부를 도민 스스로가 결정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리고 원지사는 제주의 민주주의와 싸우고 있다. 지금 제주의 민주주의가 패배한다면, 제주사회는 돌이킬 수 없는 장기적 갈등으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제주의 민주주의는 아직 죽지 않았다. 지금의 이 지난한 과정을 겪으며 더욱 성장할 것이다.

*외부 필진의 기고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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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8 07:12:33 IP 182.226
논리에 비약이 있다고 봅니다. 제2공항 건설 절차가 민주적이어야 한다는데는 동감을 합니다만, 민주적이어야 하니 모든 사업이 주민의 의견을 묻고 다수결로 처리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주도민의 의견만 물을 게 아니라 전국민의 의견을 묻는게 민주적 절차에 더 가깝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모든 국책사업을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다수결로 결정해야 한다면 이것이 가능한 일이며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럼 제주에서 하수처리장이나 대형 건설사업을 진행할때마 그런 절차를 따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런 문제들 때문에 환경영향평가나 기타 주민의견수렴절차를 거쳐서 국책사업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지금껏 몇년간 그런일들을 반대하고서 이제서야 절차적 민주주의를 들먹이며 반대하는건 무슨 논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