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바둑 후 흉기에 찔려 숨진 피해자
피고 "깨나 보니 죽어 있더라, 나와는 무관"
범행 추정 시각 제각각···피해자 혈중알코올 0.4% 이상
"그 정도 만취 상태면 찔렸을 사실조차 모를 정도"

제주지방법원.
제주지방법원.

함께 술을 마신 뒤 바둑을 둔 상대방이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범인으로 사건이 벌어진 장소 거주자 정모(67. 남)씨를 지목했다.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에 나선 정씨는 "깨나 보니 숨져있었다"며 혐의를 부인 중이다. 

사건의 쟁점은 제3자 침입으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과 정씨의 거짓 주장 여부로 나뉜다. 법원은 수사기관이 특정한 범행 시각과 증인 등의 언급한 시간의 공백이 커서 정확한 시간대를 특정하라고 검찰에 말했다. 이와 함께 숨진 피해자는 만취 상태로, 별다른 저항 없이 피해 여부조차 몰랐을 것이라는 소견이 나왔다. 

지난 26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부장판사 진재경)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정씨 재판을 속행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정씨는 올해 7월8일 저녁 같은 건물에서 살고 있는 이웃 주민 A씨(50대. 남)와 함께 식당에서 소주 3병을 마셨다. 

이후 둘은 정씨 주거지로 이동해 바둑을 뒀다. 이튿날 A씨는 정씨 주거지 거실에서 가슴과 목 등 9곳이 흉기로 찔린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됐다.

수사기관은 범인으로 정씨를 지목했다.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는 이웃의 진술 등을 토대로 범행 시각은 7월8일 밤 11시40분쯤으로 특정했다. 범행 사유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화가 났다'고 판단했고, 흉기는 과도로 특정해 기소했다. 

이날 재판은 이웃주민과 부검의, 혈흔 분석관 등 세 명이 증인으로 나섰다. 

이웃주민 B씨 진술에 따르면 사건 발생 주거지 건물 전체는 대체로 방음에 취약하다. 집 안에 조용히 있으면, 설거지 소리와 화장실 소리, 말하는 소리, 코골이까지 들릴 정도다. 

사건 발생 당일인 7월8일 밤, 피해자는 술에 많이 취한 상태로 피고인의 집으로 들어갔다. 시간대는 밤 9시30분부터 10시 사이다. 약 20여분 후 "너 죽을래?"라는 정씨 목소리와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억양과 목소리 등으로 피고인임을 알 수 있었다. 밤 11시가 안 될 무렵, 소란은 잠잠해졌다. 

B씨 발언을 보면 범행 추정 시각은 밤 10시 후반대가 된다. 다만 B씨의 시간은 휴대폰이나 시계 확인을 통한 기억 의존이 아니다. 유선방송 드라마를 자기 전에 시청하고는 하는데, 당시도 해당 드라마를 봤다. 즉, 방송 프로그램 편성 기반으로 한 시간의 인지다.   

재판부는 검찰 측에 범행 추정 시각(사망 추정 시각)을 다시 확인해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공소사실에 기재된 밤 11시40분과 증인 등이 언급한 밤 10시라는 시간대는 공백이 크고, 객관적인 공소사실이 흔들린다고 지적했다. 검찰 측은 피고인 주거지 인근 CCTV에는 외부의 흔적은 담기지 않았다고 했다.

법원은 검사의 증거 제출을 위한 속행을 예고했다. 

한편 이날 재판에서 부검의는 숨진 피해자 몸에는 날카로운 흉기에 찔린 손상 자국이 총 9군데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치명상은 왼쪽 가슴 주변 자창으로, 깊이가 10.3cm라고 했다. 

흉기에 찔린 여러 부위 흔적은 피해자가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은 상처 형태라고도 했다. 숨진 피해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감정 결과 0.421%다. 

부검의는 0.4% 이상의 혈중알코올농도는 어쩌면 살해당하는 순간까지 통증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흉기에 찔리면 통증을 느껴 몸이 움찔거리는 반응이 있어야 했지만, 피해자는 그런 행위 흔적이 몸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표피 손상이 없었다 

여러 사안을 토대로 부검의는 항거불능 상태에서 피해자가 흉기에 찔려 숨졌을 것이라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마지막 증인으로 나선 혈흔 분석관은 사건이 발생한 정씨 주거지에 흩어진 출혈 등의 과학적 소견을 토대로 검찰과 변호사의 질문에 답했다. 

분석관은 혈흔 형태와 방향성, 응고성 여부 등을 두루 설명했다. 다양한 과학적 분석으로 사건 현장을 재구성했다. 피해자는 당시 앉아있는 상태로, 가해자는 서 있는 상태로 범행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했다. 일방적으로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현장이라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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