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바둑 후 흉기에 찔려 숨진 피해자
피고인 "깨나 보니 죽어 있었다" 무죄 주장
재판부 "직접 증거 없지만, 범행 현장 분석 토대로 유죄 인정"

제주지방법원.
제주지방법원.

바둑을 함께 둔 이웃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60대가 "나는 범인 아니다"라면서 '무죄'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중형을 선고했다.

1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부장판사 진재경)는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 된 정모(68. 남)씨에게 징역 15년 형량을 선고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정씨는 2023년 7월8일 저녁, 같은 건물에서 살고 있는 이웃 주민 A씨(50대. 남)와 함께 식당에서 소주 3병을 마셨다. 이후 둘은 정씨 집에 가서 바둑을 뒀다. 이튿날 A씨는 정씨 주거지 거실에서 가슴과 목 등 9곳이 흉기로 찔린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됐다.

수사기관은 범인으로 정씨를 지목했다.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는 이웃의 진술 등을 토대로 범행 시각은 7월8일 밤 11시40분쯤으로 특정했다. 범행 사유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화가 났다'고 판단했고, 흉기는 과도로 특정했다. 숨진 피해자의 혈중알코올온도는 감정 결과 0.421%로 분석됐다. 

법정 다툼은 치열했다. 정씨는 "나는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깨어 보니 피해자가 숨져 있었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사건 쟁점은 제3자 침입으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과 정씨의 거짓 주장 여부로 나뉘었다. 증인 등이 언급한 범행 시각 밤 10시 추정과 검찰이 공소장에 기록한 밤 11시40분이라는 시간대도 공백이 컸다. 

이날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직접 증거는 없지만, 간접증거만으로도 충분히 유죄가 인정된다"고 했다. 

피고인이 살해되는 장면을 본 목격자나 범행이 담긴 CCTV는 없지만, 사건 현장의 혈흔 분석 및 DNA, 옆방에 거주하는 이웃이 "너 죽을래"라는 소리가 들렸다는 진술 등이 고려됐다. 사건이 발생한 건물은 방음이 되지 않아 옆집의 소리도 들리는 구조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살해 동기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술에 취해 바둑을 두다가 순간적으로 격분해서 범행할 수도 있다"며 "사건 당시 혈흔 형태 등 분석 결과를 봐도 참작된다"고 말했다.

외부인 침입 가능성 유무는 "건물 주변 CCTV에 타인 출입 흔적이 없고, 피해자만 죽인 뒤 피고인과 집 안 금품 등은 건들지 않고 사라졌다는 것은 논리가 맞지 않다"고 했다.

법원은 "피고인은 바둑을 두다가 만취한 피해자를 우발적으로 죽였다"며 "과거 폭력 등 전과와 피해 회복 노력이 없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실형 사유를 밝혔다.

제주지법 1심 재판부는 피고인에 징역 15년 형량과 보호관찰 5년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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