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민 작가의 역사장편 연재소설

 

▲  ©Newsjeju
▲차영민 역사장편소설 '펜안허우꽈'. ©Newsjeju

몽골군, 그들의 움직임은 일사불란했다. 삼별초 군사들이 쓰러지는 모습은 순식간이었다. 피비린내가 진하게 풍기는 현장까지도 눈 깜짝할 사이에 정리되었다. 나를 포함해 숨어있는 사람들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눈치였다.

그들의 시선이 우리 쪽을 향한 순간, 모두 숨 막힐 기세로 침묵에 충실했다. 나뭇잎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도 소음이 되게끔 주변 공기마저도 스칠 기세로 숨도 꾹 참아냈다. 발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우리 쪽으로 가까워졌다. 그림자가 우리 쪽에 바깥 가까워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여기서 누구 하나 머리카락이라도 휘날리면 그들의 시야에 붙잡힐 정도였다.

왜 하필, 이럴 때 난 코가 간지러운 걸까? 콧구멍이 벌름거리더니 나도 모르게 입을 한껏 벌리고 숨을 들이마셨다. 여기서 가슴팍까지 차가운 공기로 가득 채운 순간, 다시 발소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별다른 기미 없이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그들의 발소리가 완전히 희미해질 때, 온몸을 부르르 떨며 참았던 재채기를 내뱉었다.

“내 속이 시원하네!”

옆에 있는 사람이 크게 헛기침하였다. 우리는 다시 삼별초가 있던 그곳으로 내려가보았다. 실오라기 하나조차 남김없이 싹 사라진 모습이었다. 누군가 지나치지 않았던 듯. 오히려 우리의 흔적이 질퍽한 흙바닥 곳곳에 역력했다. 여기서 또 다른 기다림은 의미가 없을 터, 결국 여기서 물러나기로 했다.

다른 곳으로 가자는 얘기도 나왔지만. 몽골군의 등장에 주저하는 모습이 더 많았다. 여기서 또 다른 대안은 없었다. 그저 조용히 돌아가는 것만이 방법일뿐. 이마저도 조금 더 몽골군의 뒤를 밟아보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말만 그랬을 뿐 누구 하나 선뜻 나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빈손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돌아간 마을은 저 멀리서부터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위치가 들킬까, 대낮엔 더더욱 큰불을 때지 않았건만. 서둘러 다가가니, 그곳에는 다름 아닌 조금 전 보았던 몽골군이 있었다. 그들 앞에는 목이 달아난 마을 사내들로 가득했고. 우리를 보자마자 난데없이 웃기 시작하더니 보란 듯이 또 한 사람의 목을 베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 중에 섣불리 대응하려는 움직임이 없었다. 오히려 우리를 이끄는 노인이 손짓으로 말릴 정도였으니까.

“좁은 섬에 좋은 요새가 있다니!”

몽골군사 중 한 사람이 칼을 허공에 휘두르며 앞으로 나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외형은 몽골이었지만 말투가 고려 사람이었다. 그것도 개경에서 흔히 쓰는 그런 말투였다. 두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나보다 한참 어린 목소리이기도 했다.

“왜 놀라시나, 대원제국 군사는 고려말 좀 하면 안 되는가? 한때 내 조국이기도 했건만.”

특히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어째, 어디서 낯이 익은 거 같기도 하고. 어느새 우리는 그들이 들이대는 칼끝에 조금도 저항할 기세 없이 양손을 바짝 들었다. 무릎을 바닥에 갖다 붙이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그중엔 머리도 바닥에 붙이는 자도 있었다. 마을 사람들도 자신의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몽골군에게 몸을 바짝 숙이며 덜덜 떨기만 할 뿐이었다.

“우린 너희를 딱히 해하려 온 게 아니다. 다만 우리를 좀 도와주어야겠다.”

핏기로 가득한 칼을 바닥에 쓰러진 자들의 옷으로 닦아내는 그들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애써 참아내고 있었다.

“저흰 간절하게 기다렸사옵니다.”

엎드린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은 건, 노인이었다. 그들 앞으로 다가가서 바짝 엎드리더니 느닷없이 “대원제국 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오히려 놀란 건, 몽골군이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도 잠시 머뭇거리더니 금방 따라하는 게 아니던가? 여기서 나라고 돌처럼 꼿꼿하게 가만있을 순 없는 노릇. 사람들의 흐름에 최대한 맞춰서 움직였다.

“참 요상한 것들이구나. 좋다, 이리 나온다면 친히 네놈들 얼굴을 꼭 기억해두마. 장군께서 아주 기뻐하실 것이야.”

고려 말을 쓰는 몽골군사가 가장 크게 웃었다. 이내 내용을 전달 받은 나머지 군사들도 함께 웃기 시작하더니. 허리춤에 찬 포대를 입에 갖다 댔다. 거기서 나오는 묘한 삭힌 내가 코를 아주 날카롭게 간질였다.

마을은 금세 새로운 군영으로 모습을 바꾸어나가기 시작했다. 힘 좋고, 사지 멀쩡한 사내들은 그들의 방식에 따라 훈련을 받았다. 여인들은 주변에서 먹을 거리를 직접 구해왔고, 최소한 몽골군에게 식량을 빠짐없이 챙겨다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생김새와 몸의 윤곽이 괜찮은 여인들은 크게 눈에 띄는 일은 하지 않았으나, 몽골군의 숙소가 자주 들락거렸다. 간혹 밤늦게 들어간 여인이 다시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경우도 있었지만. 누구도 그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고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머지 사람들은 온갖 허드렛일에 동원되었는데 그마저도 쓸 수 없는 사람들은 하나둘씩 마을에서 모습이 사라지고 말았다.

난 일단 군사처럼 훈련을 받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며 진지 구축 작업에 동원되기 시작했다. 다들 노인이거나 너무 어려서 딱히 힘을 제대로 쓰고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주변에서 나뭇가지를 모아왔고, 흙을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퍼오거나 나르는 게 전부였다. 돌멩이도 그렇고. 몇몇 발이 빠른 어린아이들은 몽골 군사들의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를 관리하는 건, 바로 노인이었다. 물론 모든 건 몽골군의 뜻대로 움직였지만, 세세한 부분은 모두 노인의 입으로 결정되었고 그 자체로 인정을 받는 중이었다. 분명 이상하게 돌아가는 상황이지만 누구도 불평의 목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오히려 표정이 밝아진 사람들도 많을 정도였다.

달포쯤 흘렀을까, 몽골군이 마을 사람들을 한꺼번에 모이게 했다.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완전히 무장한 상태였고, 노인은 그들 앞에 몽골 군복과 비슷한 차림을 하고 허리를 바짝 세웠다.

“감히 대원제국에 끝까지 저항하는 세력이 여기서 버티고 있다. 그들을 몰아내고, 대원제국의 백성들을 구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순간, 내 귀를 의심하고 말았다. 이곳은 엄연히 탐라 땅인데 어째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몽골의 백성으로 말할 수 있단 말인지. 등골이 서늘하고 팔다리가 떨려오기 시작했다. 탐라에 처음 발을 디디고 다시 돌아온 이후에 지금까지를 모두 통틀어서 가장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 분명 조정은 몽골과 강화에 협조하였고, 최소한 나라로서 유지는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그 과정에서 땅을 내어준다는 얘긴 한 번도 들어본 바가 없다. 그런데 말단 몽골군의 입에서 어찌 저런 말이 쉽게 나올 수 있단 말인지.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뒤엉키기 시작했지만. 오래 담아둘 겨를이 없었다.

몽골군은 훈련을 받은 마을사람들과 함께 바깥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삼별초 기지를 습격하겠다는데, 여기에 나도 포함이 되었다. 전투할 때 뒤에서 이런저런 일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나? 너무 가기 싫었지만 이미 난 그들과 함께 마을 바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코끝으로 아주 진한 피비린내가 스치고 있었다. 이번엔 정말 두렵기 시작했다. (계속)

▲ 차영민 소설가. ©Newsjeju
▲소설가 차영민. ©Newsjeju

 

저작권자 © 뉴스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