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안허우꽈?] 91화, 떠나지 못한 자
[펜안허우꽈?] 91화, 떠나지 못한 자
  • 차영민 작가
  • 승인 2019.08.10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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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민 작가의 역사장편소설
▲차영민 역사장편소설<펜안허우꽈?>. ©Newsjeju
▲차영민 역사장편소설<펜안허우꽈?>. ©Newsjeju

“오랑캐에 복종한 자, 참수로 나라의 기강을 다스리겠다!”

그랬다.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다. 오히려 그동안 저 얘기를 듣지 않은 날들이 신기할 정도였으니까. 온몸이 줄에 묶여 무릎 꿇으며 판결을 차분히 들었다. 숨이 가빠진다거나 가슴이 갑자기 두근거린다거나 땀이 주욱 흐르진 않았다. 오히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그럼, 그렇지. 

나와 같이 재판을 받은 자들의 낯빛은 전혀 아니었다. 얼굴이 허옇게 질리거나 아예 검게 물들어버리거나. 아예 터질 듯 빨개져서 알 수 없는 말로 괴성을 내지르기도 했다. 물론 곁을 지키던 군사의 발길질과 몽둥이에 금세 잠잠해질 수밖에 없었지만. 재판 과정에서 오히려 고마운 건, 일부러 고신을 하진 않았다. 억지로 뭘 물어보려고 하거나, 어떤 대답을 끌어내려는 노력도 없었다.

그저 고려군 소속이고, 탐라 땅을 밟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죽을 죄였다. 이걸 왜 내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는 건지. 스스로 황당하여 실소가 계속 나올 뿐이었다. 눈이 동그래진 건, 나보다 판결을 내린 관리였다.

“실성을 했구나!”

기껏 내뱉은 말이라곤 그것뿐이었다. 그 길로 우린 한동안 몸을 맡겼던 옥사로 돌아왔다. 당장 달라진 건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리 놀라워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 있는 이상, 시간의 차이일 뿐. 이슬처럼 사라지는 건 서로 침묵으로 알고 있었을 뿐. 

“어떻게 방법이 없겠소?”

여기서 가장 안달이 난 건, 나와 함께 잡혀 온 고려군들이었다.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며,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했지만 누구도 듣지 않았다. 당장 나부터도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물론 이대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 여태까지 탐라에서 죽을 듯 살 듯 어찌어찌 계속 버텨온 건 사실이지 않은가. 지금까지 탐라에서 봐 왔던 것들도 모두 남겨야만 했다. 개경에 있는 장인이든 조정의 누구라도 이 사실을 알리고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을 벗어날 자체가 자신이 없었다. 또 어디서 어떻게 버티고 죽다 계속 살아야만 하는 건지. 스스로 다독거려줄 명분도 떠오르지 않았다. 특별히 방안도 없었고, 그저 이러다가 조용히 잠들고만 싶었다.

“눈 떠, 눈을 뜨란 말이야!”

다음날, 동이 틀 때쯤. 옥사를 가득 메운 목소리가 있었다. 바로 고려군 중 한 명이었다. 식은땀으로 가득한 얼굴은 허옇게 질려 있었다. 그가 두 손으로 붙잡은 또 다른 고려군의 얼굴은 이미 퍼런 기운으로 뒤덮인 상태였다. 심지어 몸에서 썩은 내가 나기도 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내가 가고 싶었던 그 길을 먼저 떠나버리고 말았다. 버려질 짐짝처럼 질질 끌려서 옥사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울부짖었던 그 고려군도 갑자기 밤중에 싸늘하게 식고 말았다. 역시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고, 그저 삼별초 군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질질 끌고 나갈 뿐이었다. 며칠 사이, 고려군들은 모두 밤 중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떠나고 말았다. 함께 갇혀 있는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멀쩡히 살아 있는 나를 귀신 대하듯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나오시오.”

그러고도 다시 몇 번의 날이 밝아온 날. 삼별초 군사들이 내게 손짓했다. 옥사에 나오자마자 팔과 몸이 꽁꽁 묶였고. 발등을 바닥에 긁어대다시피 그들의 손에 이끌렸다. 걸으려면 걷겠다만. 꼭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딱히 통증이 올라오거나 그러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덤덤할 뿐이었다.

“자넨, 정말 대단해.”

바닥에 내동댕이치듯 엎드렸을 땐,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김통정. 그의 뒤에는 커다란 칼을 들고 있는 군사가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난 그대로 고개를 들었다. 옆에 군사들이 손으로 머리를 눌렀지만. 이때만큼은 숙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려다보는 김통정이 눈과 정확히 마주치려고 노력했다.

“이번엔 아닐세. 미운 정이라고 인사는 하러 온 거니. 잘 가시게.”

김통정이 한 발 뒤로 물러서자, 곧바로 큰 칼이 하늘로 치솟았다. 햇볕을 머금은 칼날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베일 것만 같았다. 군사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을 바로 그때, 저 멀리서 나팔과 북이 크게 울리는 게 아니던가. 순간, 김통정의 눈빛이 흔들렸다. 주변에서 군사들이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중 하나가 김통정 곁으로 다가왔다.

“개경에서 군사를 보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더냐, 개경에서 군사라니!”“오랑캐 놈들과 함께라고 합니다. 동쪽과 서쪽으로 한꺼번에 상륙하였습니다!”

“말도 안 된다, 그럴 리가 없다. 앞장서라!”

김통정은 군사들과 함께 이끌고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나를 끌고 왔던 군사들은 서로 눈치만 보더니, 다른 군사들이 손짓하자 바로 다른 곳으로 달려가는 게 아니던가. 심지어 조금 전까지 나를 베려던 군사조차도 갑자기 힐끔 쳐다보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무릎 꿇고 엎드린 상태에서 가만히 있어야만 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가까스로 움직이긴 했는데 그냥 무기력하게 뒤집히고 말았다. 손을 아무리 움직여도 줄은 풀릴 기미가 없었고, 거칠거칠한 바닥에 머리와 등이 긁히기만 할 뿐이었다.

그 사이 군사들에 이어 다른 사람들도 쏟아지듯 나왔다. 사내들도 있고, 여인들도 제법 많았다. 그들은 모두 몇몇 군사의 호령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기 바빴다. 그 와중에 나를 스쳐 지나간 자들도 제법 많았으나 누구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심지어 다른 군사들도 나를 힐끔 내려다보더니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애써 온몸을 양쪽으로 움직여보려 했으나. 여기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었다. 아, 이렇게 가는 건 아닌데. 햇볕이 너무나도 따갑게 얼굴을 내리쬐었다. 사방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발소리가 쏟아졌지만 귓속을 파고드는 새로운 고통이었다. 나도 모르게 숨이 거칠어질 때쯤, 햇볕을 가리는 그림자가 드리웠다. 반쯤 감았던 눈을 서서히 떠보니, 그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로 그가. (계속)

▲소설가 차영민. ©Newsjeju
▲소설가 차영민. ©News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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