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농협 제주출장소가 도지부로 승격되고 청사건물이 신축되어 구색을 갖추어 나갈 무렵 P씨가 과장대리로 발령받고 부임했다. 군인 출신이어서 업무 내용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고 제주와는 인연이 전혀 없는 육지 태생이라 직원들과 어울리는 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그 지역 출신이 아니라 할 지라도 업무능력이 있으면 기존 직원들과 어울리는 데 어색함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P대리는 군인장교 출신이라 업무는 백지인데 군사혁명 덕분에 책임자로 발령받고 온 사람이어서 그야말로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P대리가 부임한 지 2,3개월이 지난 어느날 중앙회 본부에서 회의가 있어 P대리를 서울로 출장 보내게 되었다.

출장 명령서와 여비지출결의서를 만들어 결재를 올렸는데 P대리는 나를 부르더니 “비행기를 안 탈 터이니 여비지출결의서를 배편으로 바꾸어 주시오.”

하는 것이었다. 불편하게 배타고 출장갈 필요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비행기는 하늘을 날아가므로 불안해서 못 타겠다고 대답을 했다. 본인 요구대로 여비지출결의서를 배편으로 바꾸어 작성하다가 발견한 것은 항공편 출장여비보다 배편 출장여기기 본인에게 실익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항공편 출장여비는 실비만 주는데 배편으로 하면 배 2등실 여비와 여관비까지 포함되어 있어 배에서 3등실을 이용하고 여관을 이용하지 않고 새벽기차를 타면 여관비도 절약할 수 있어 본인에게 몇 만원 가량의 이득이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P대리에게 결재서류를 들고 간 나는 항공편을 사양하고 배편을 택한 저의가 어디 있는지 알았다고 농담을 던졌더니 극구 부인하면서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

저녁배로 출장을 떠나게 된 P대리는 퇴근하는 나를 끌고 식당으로 가더니 곰탕에 소주 한 병을 나누어 마시며, 하늘을 나는 비행기 공포를 다시 강조했다.

P대리의 속셈을 짐작하고 있는 나는 “사람이 가장 많이 죽는 장소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방바닥 구들장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밤마다 잠자기 위해 몸을 눕히면서도 방바닥을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비행기 타서 죽을까 걱정하지 마시고 다음부터는 비행기로 편히 다니세요.“

하고 놀려 주었다. 저녁도 얻어먹은 처지여서 부두까지 동행하여 출장 떠나는 P대리를 전송하고 돌아왔다.

다음 날 출근하자 목포결찰서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P대리가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비보였다.

나는 그 날 저녁 출발하는 목표연락선에서 P대리 부인을 대동하고 목포로 달려갔다.

P대리는 새벽 4시경 목포에 도착하여 여관에는 가지 않고 부둣가 해장국집에서 해장을 시켜 먹고 그곳에서 한잠 자고 아침 기차 시간에 맞추어 역으로 가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기차 시간이 다 되어도 일어나지 않아 깨워 보니 벌써 늦었다는 말이었다.

결국 내 짐작대로 여비 몇 만원을 아끼려고 여관에 가지 않은 것이 해장국집 방바닥에서 아까운 생명을 버린 꼴이 되었다.

사태를 수습하고 돌아오니 어떤 부인이 찾아왔다. 본인이 P대리 부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제주에서까지 데리고 왔던 부인은 누구란 말인가, 결국 퇴직금은 정식부인에게 지급할 수밖에 없었다. 제주까지 따라왔던 여인에게는 여비를 채워 떠나 보냈다. 정말 허망한 죽음을 맞이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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