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엄창섭교수의 교육칼럼]

“스스로 정보를 찾아 요약하는 능력”

▲ 엄창섭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교수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과 토론을 벌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다양한 방법으로 수업을 하라고 권장하지만 실제 대부분의 수업은 강의식으로 진행된다. 강의에서는 교수가 교과서를 포함한 여러 자료들로부터 수집된 내용을 학생들에게 요약 혹은 발췌하여 전달하고 학생은 교수의 강의를 듣고 그 속에서 나름대로 중요하고 기억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추출하게 된다. 주제에 따라 학생이 발표하거나 토론을 하는 것이 적절한 경우도 있고, 실습을 하거나 문제를 풀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그래서 교수는 학생들의 학습에 가장 도움이 될 만한 효과적인 수업 방식을 선택하려고 노력한다.

어떤 방식으로 수업을 하든지 학생이나 교수가 질문을 하는 경우와 같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경우가 있다. 필자는 학생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하는 것 외에 토론을 위해 질문을 하는 경우를 별로 경험하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 내가 가르치는 “해부학”이나 “조직학”이라는 학문이 몸의 구조를 다루는 것이어서 일단 토론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사람의 몸에 관한 논의를 한다고 하더라도, 토론이나 문제풀이 방식으로 접근을 할 때는 학생들과의 소통이 상당히 중요하게 된다. 이 경우 교수가 질문을 할 때 학생들이 “묵묵부답”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과의 토론이 쉽지 않은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 본다.

첫째로,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문화적 배경이다. 어른들에게 공손해야 하고 부모나 선생의 말은 옳던 그르던 일단은 잘 듣고 함부로 대꾸하거나 토를 달지 않는 것이 윗사람에 대한 올바른 신뢰와 존경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유교적 관념 하에서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데 자유롭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둘째로, 학생들이 익숙해져 있는 공부법과 관계가 있다. 요즈음 소위 열린교육을 표방하여 비교적 자유롭게 발표도 하고 과외활동도 하는 초등학교 들이 많이 있다. 문제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 초등학교 때의 공부 방법을 잊어야 한다는 데에 있다. 중고등학교 교육이 “지덕체(智德體)의 조화로운 발달”이란 교육목표의 균형을 상실한 채 “대학입시를 위한 지적 탐구 활동”으로 집중되다 보니 당연히 학습방식도 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중요한 내용을 요약하고 집중해서 기계적으로 공략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성적도 올라가고 궁극적으로 대학 입시에서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내용을 스스로 요약할 필요는 없다. 과외나 학원 등 사설교육기관에서 족집게처럼 잘 정리된 내용을 제공하므로 그 힘을 빌리면 된다.

가끔 학생들의 이러한 습관이 대학교에까지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교수로서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중 하나가 학생들에게 수업에 사용된 파워포인트 자료나 요약된 강의록을 제공하라고 하는 학교의 지침이다. 학생들은 아주 쉽게 또 그러한 자료를 달라고 요구하고, 학교 당국에 교수가 자료를 주지 않아 공부를 못한다는 불평을 토로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수업에 필요한 관련 자료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를 교수가 직접 만들어서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교수가 제공하는 수업은 단지 푯대에 불과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교수의 수업을 바탕으로 학생 스스로 여러 관련 서적과 자료들을 뒤져 자기의 지식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이유로는 독서를 포함한 정보 습득의 절대적 부족을 들고 싶다. 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독서지도를 아주 잘 하고 있다.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읽어야 할 추천도서 목록을 제시하고 일정량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 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도하고 있다. 입시 준비에 바쁜 학생들이 스스로 책을 골라 읽을 여유가 없어 이를 도와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으나, 추천도서 이외의 책을 읽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 의문이 든다. 학교에서 읽어야 할 필독 추천도서를 읽게 되면 마치 숙제를 마친 것과 같이 더 이상의 책을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고, 책을 읽더라도 역시 입시에 적잖은 부담을 느껴야 한다. 책은 그나마 추천 목록이라도 있지만, 텔레비전이나 신문 등의 경우는 더 심하다. 누군가가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영화는 꼭 보아야 한다고 정해주고, 입시에 출제된다고 하면 아마 많은 학생들이 필수적으로 볼 것으로 생각한다.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어느 정도 정형화된 학습에 지장을 초래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 들어있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알게 됨으로서 나의 의견을 정교히 하고, 수정해 가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 수업시간의 토론은 사회에서 생존을 위한 대화를 연습하는 과정이다. 그 대화는 결국 자신의 의견이 없으면 지속될 수 없는 것이고, 자신의 의견은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정보를 습득하고 습득된 정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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