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박범신 스포츠레저부장 겸 부국장 = 제3기 소집을 앞둔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 구자철 등 대표팀 자원들을 현지에서 지켜보고 26일 귀국했다. 홍 감독이 주말에 세 번 째 대표팀 소집을 한다. 다음달 6일 열리는 아이티와 10일 치러지는 크로아티아와의 두 차례 국내 평가전을 위해서다.

9월 평가전에는 국민적인 관심이 더 쏠려 있다. 홍명보호가 그간의 골 가뭄을 해소하고 과연 첫 승을 거둘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난 6월 25일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홍 감독으로서는 9월 평가전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취임 후 치른 동아시안컵과 페루전 등 4차례의 경기에서 1승(3무1패)도 거두지 못하고 골도 고작 한 골밖에 기록하지 못하는 ‘빈공’에 그쳤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내와 일본 진출 선수 중심으로 치른 이전과는 달리 9월 평가전부터는 유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합류하기 때문에 뭔가 달라진 경기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출범 초반 기대만큼의 경기력이 나오지 않은 홍 감독으로서는 마음의 짐이 클 수밖에 없다. 대표팀 훈련 소집 사상 처음으로 선수들이 구두를 신고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으로 파주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 입소로 달라진 면모를 보여주고 ‘원팀(One Team) 원스피릿(One Spirit) 원골(One Goal)’로 대표팀 운영 철학을 내세우며 호기롭게 출발할 때와는 달리 주변의 분위기가 호의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2000년 이후 부임한 대표팀 감독 가운데 가장 많은 경기를 치르고도 무승을 거뒀다는 불명예에다가 심지어 일각에서는 그의 지도력에 의문부호를 달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나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홍 감독은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브라질 월드컵 개막을 앞둔 내년 5월까지 자신의 로드맵대로 대표팀은 이상 없이 움직여 나가고 있어 한 경기 한 경기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 자신도 그간 치른 4차례의 경기에서 나타난 경기력에 대해서는 썩 만족스러움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다. 자신의 대표팀 첫 승을 월드컵 본선에서 했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한편 느긋하면서도 배짱 있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홍명보 감독. 한국 축구가 낳은 최고의 선수 출신 지도자이다. 현역 시절에는 최고의 수비수로 명성을 떨치며 13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 A매치 135경기에 출전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는 주장을 맡아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함께 4강 신화를 일궈냈다. 2005년 대표팀 코치로 처음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뒤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의 올림픽 축구 사상 첫 (동)메달 획득이라는 쾌거를 일궈낸 인물이다.

‘영원한 리베로’ ‘카리스마의 제왕’, 그의 이름 앞에 붙는 대표적인 애칭이다. 축구 포메이션에서 골키퍼 앞에 서는 최후의 수비 보루로서 자유롭게 공격에도 적극 가담하는 역할인 리베로는 그 책임이 다른 포지션에 비해 막중하다. 게다가 ‘영원한’ ‘제왕’이라는 말을 아무나 쉽게 얻지 못한다. 독일 전차군단의 전설로 불렸던 프란츠 베켄바워 정도에 어울린다고 할까. 경기 전체의 흐름을 읽는 시야와 경기운영력, 개인기, 그리고 대단한 자신감이 없다면 골문을 비워두고 공격에 적극 가담할 수는 없다. 홍 감독이 골을 자주 허용했다면 포항 아톰즈 시절의 허정무 감독이나 2002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이 가만히 두고만 보았을까. 그런 실력과 자신감이 바탕이 돼 후배들을 이끌 수 있는 통솔력이 생겼고 무게감 또한 더해졌다.

홍 감독은 팀 운영에 있어 선수들의 기본 정신자세와 팀워크를 가장 중시하고 있다. 태극마크를 단 대표 선수로서의 긍지와 사명감, 격(格)을 갖추는 것을 선수 개인 능력보다 더 우위에 두고 있다. 이는 대표팀 소집훈련 때 선수들이 지켜야 할 불문율처럼 된 '구두·정장 입소'라는 행동 규범에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소집훈련 때 승용차를 이용하는 대신 정문부터 걸어서 들어오도록 한 지침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대표 선수로서 반듯한 정신자세가 돼 있은 후에야 팀의 경기력 향상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멕시코대표팀 감독을 지낸 우고 산체스. 요즘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리오넬 메시라고나 할까. 5차례나 득점왕에 오르며 1980년대 스페인 프로축구에서 최고의 골잡이로 명성을 떨쳤던 그는 슈퍼스타답지 않은 성실한 훈련 자세와 겸손한 매너로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레알 마드리드 담당 기자들은 그의 한 마디를 듣기 위해 팀 훈련이 끝난 뒤 1시간씩 회견장에서 더 기다려야 했다. 산체스가 팀 훈련 때는 동료들과 전념해 호흡을 맞춘 뒤 팀 훈련 후 개인 슈팅 연습만 1시간 가량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 성심껏 답하고 사인을 원하는 팬들에게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가 멕시코에서 스페인으로 이적할 때는 자신의 경기를 모두 멕시코에 TV로 생중계한다는 것을 협상 카드의 맨앞에 올려놓아 국민들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홍 감독이 사령탑을 맡은 후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대표팀 소집 때마다 보여주고 있는 '구두·정장 입소' 규범만 봐도 된다. 이는 기본을 강조한 준비된 자세를 뜻하게 때문이다. 우리 조상의 생활 규범에 '의관정제(衣冠整齊)'가 있다. '옷과 갓을 정돈해 가지런하게 한다'는 말이다. 바깥 출입을 하거나 남을 만날 때 자신의 매무시를 먼저 돌아보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잡고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갖춤이다. 더 나아가 ‘나는 준비가 돼 있으니 만만하게 함부로 보지 말라’는 무언의 메시지도 담고 있다.

대표팀의 전력강화에 앞서 강조한 선수들의 기본 자세만 보더라도 홍 감독이 대표팀 운영에 있어 방향을 잘 잡았다고 볼 수 있다. 기본 자세가 잘 돼 있으면 전력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고 난 뒤부터는 더욱 가속도가 붙기 때문이다. 홍 감독만큼 현재의 대표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은 없다. 모든 결정은 홍 감독이 하며 책임 또한 그의 몫이다.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이들의 애정의 표현이겠지만 현재론 홍 감독에 대한 비판보다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줄 때이다. 관심을 갖고 인내심 있게 기다려야 한다. 내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12년 전 지구촌을 뜨겁게 달궜던 ‘대한민국’의 함성을 기대해 보면 어떠할까.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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