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제주도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목축을 위하여 공동목장을 조성하였고 가축사료(목초)와 초가지붕 보수를 위한 새왓(띠밭)을 케왔(계밭)으로 운영해 왔다.

혼자힘으로 관리운영하기보다는 동네 여러 사람이 계를 만들어 공동 운영함으로써 인력과 경비를 절약하고 지역공동체의 화목을 이루는 상부상조의 정신을 계승해 왔으니 이것이 원시 협동조합 정신이다.

4.3사건으로 집집마다 기르던 가축이 줄어들고 6,70년대에 이르러 개발이 시작되면서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계밭의 효용가치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외지인의 부동산 투기에 휘말려 하나 둘 팔아 버리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공동목장도, 계밭도 찾아 보기 어렵게 되었다.

조상들이 조성해 놓은 공동목장과 계밭을 팔아 돈으로 나누어 보았자 각자에게는 큰 돈이 안되어 살림에 보탬이 안되는 푼돈이 되므로 팔지 말고 그냥 유지하자고 종용했으나 먹혀 들지 않았다.

우리가 이제 돈을 모아 이 땅을 새로 산다고 가정하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어서 「팔지 말고 견디면 보람이 있다.」고 설득했지만 부동산 부로커의 장난에 모두가 휩싸여 버려 끝까지 버티던 나도 손을 들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영남목장만은 팔지 말고 지켜야 되겠다는 각오를 했다. 영남목장은 노형동, 연동, 도두동 주민이 조합원이었지만 그 중 노형동 주민이 많았다.

조합운영을 책임맡은 조합장이 조합운영에는 정신이 없고 조합원으로부터 지분을 헐값으로 매수 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 이를 저지하는데 신경을 쓰고 있었다.

어느 해, 영남목장 정기총회가 있다기에 전년도 결산보고서를 지참하고 참석하여 결산보고와 감사보고를 듣고 전년도 결산보고서와 대조해 검토하고 있는데 S조합장은 일사천리로 원안통과 시키려 했다.

나는 발언권을 얻고 일어나서 “전년도 결산보고서에는 차기 이월금이 1천만원 있었는데 금년도 결산보고서에는 전년도 이월금이 없으니 감사는 전년도 차기 이월금 1천만원이 행방을 밝혀 주십시오.” 하고 말했다.

내 발언에 S조합장이 당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감사 보고한 감사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고 말았다.

참석자들은 순진한 농민들이어서 결산보고서 내용을 깊이있게 따질 입장이 못되었지만 내 발언이 있고 부터는 저마다 한 마디씩 떠드는 바람에 감사의 사과와 S조합장이 「변상하겠다.」는 사과로 총회를 끝낼 수 있었다.

당시 1천만원은 큰 금액이어서 S조합장은 이를 변상하느라 애를 먹었고 결국은 실추된 체면이 건강에 타격을 주었는지 젊은 나이에 타계하고 말았다.

이렇게 영남목장을 지키려고 애썼으나 조합원들의 의지가 약하여 지분을 처분하는 바람에 나도 역부족으로 지키지 못하고 말았으니 서운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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