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모든 사람은 고향을 갖고 있으며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고향을 잊고 사는 사람이 많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왜 그럴까 하는 의구심을 느끼곤 했다.

더구나 제주 출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사는 사람이 많은데 이제는 여행이 자유로워 마음만 있으면 쉽게 다녀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고향을 다녀가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수 많은 재일 교포들이 고향을 다녀가면서 우리 제주의 발전된 모습에 모두가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갈 때의 고향 제주 모습을 그대로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다가 50여년이 지난 지금 와서 보니 오히려 일본보다도 잘 살고 있음에 모두가 놀라는 것이 사실이다.

보리조밥도 먹지 못하고 굶주리던 가난한 살림, 『장콜래비』가 득실거리는 봉천수를 마셔야 했던 물, 돼지가 무서워서 뒷간에도 못 갔던 어린시절의 변소, 이런 인상만 간직하고 있는 그들은 곤밥(쌀밥)이 주식이 되고 현대식 주택에 수도, 전기, 전화, 냉장고, TV를 고루 갖추고 수세식 화장실에 자가용 승용차로 확 트인 도로를 달리는 문화생활 들을 영위하는 현재의 제주를 상상도 못했던 것 같다.

고향 제주가 이렇게 발전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고향을 등지고 사는 사람은 과연 어떤 분인가 생각해 보았다.

첫째는 4.3사건의 여파다. 남북 분단이 되고 1948년 제주도에 격화되었던 4.3사건의 피해 의식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어 고향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둘째는 조총련 소속이기 때문이다. 해방 후 일본에서는 조선인 등록을 하도록 했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조선인 등록을 했다.

그 뒤로 좌. 우익이 나뉘면서 남한쪽 사람들이 거류민단을 창설하면서 조선인 등록을 한 우리 동포들을 다 수용하지 못했다.

생활이 고된 영세민들이 민단이 뭐고, 조총련이 뭔지 모르고 살다보니 본인 뜻과 달리 조선인으로 등록된 채 그냥 있다가 조총련 사람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북한 체제를 찬양하고 활동한 열성분자야 할 수 없지만 여타 영세민들이야 조선인으로 등록되어 있더라도 조총련계로 분리해서는 안 되는데 우리 정부에서 적극적인 노력이 부족한 탓에 민단으로 끌어 들이지도 못하고 고향을 등지고 살게 방치했다.

셋째, 신분상 불이익을 당한 분들이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서자는 조상의 제사때 참배도 못하게 박대했기 때문에 그 한이 지금까지 맺혀있어 일가친척과 교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서자 출신들은 자기 조상에 대한 숭배 의식마저도 사라져 버려 씨족관념이 희박하다고 한다.

신분상 불이익을 당한 분 가운데는 양반집 종살이를 했던 소위 상놈 신분과 동네 잔치때 새각시 가마들고 다니거나 신랑이 탄 말을 이끌고 다녔던 마을 하인, 소나 돼지를 잡아 주던 피쟁이(백정) 신분인 사람들도 있다.

그분들은 고향에 대해 한이 맺혔기에 고향에 찾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지난 세월의 낡은 관습이 없어지고 이념 투쟁이 사라졌으며 이제 재일 교포 1세들도 몇 명 살아남지 않았을 터인데 그들에게 고향에 대한 한을 풀어 줄 방법이 아직도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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