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우리집에도 4.3사건 전에는 부룽이(숫소)와 암소, 말 등이 있어 농사짓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부룽이는 밭을 갈았고, 암소는 새끼를 낳았고, 말은 짐을 실어 나르는 일에 제각각 자기 역할을 다했다.

부종(조씨 뿌리고 밭을 밟는 일)하는 시기에는 다 같이 밭을 갈고 또 밟는 일에 동원되기도하였다.

평화스럽게 농사지으며 살던 우리집이 4.3사건으로 불태워져 버렸고, 소와 말도 불타 죽거나 총맞아 죽거나 해서 하루 아침에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4.3사건이 진정되고 마을이 재건된 뒤에는 동네에 소를 가진 집이 하나도 없어 농사짓는데 심한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농촌에서는 농사일에 소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으나, 소를 살 경제적 여유를 갖춘 농민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의 여유있는 사람들이 저축하는 방법으로 소를 사서 농민들에게 맴쇠를 주어 서로 이득을 보게 된 제도이다.

맴쇠로 이득을 나누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성내(제주시내 중심지) 사는 돈있는 집에서 저축수단의 하나로 암소를 사서 농가에 맴쇠를 주는 것이다.

돈 있는 사람이 암소를 사서 농부에게 사육을 위탁하는 것인데, 농부는 그 소로 밭을 가는 등 농사일에 부리기도 하고 또한 암소가 새끼를 낳아 자라면 팔아서 이익을 반씩 나누는 것이다.

암소는 어디서 자라나든지 그 소유는 어디까지나 소를 산 사람의 소유였고 송아지에 대한 이익만 나누는 것이다.

결국 농가에서도 송아지가 생기게 되는 것이므로 맴쇠를 원하는 희망 농가가 많았다.

우리집에서도 어려운 경쟁 끝에 맴쇠를 얻을 수 있어 오랜만에 암소를 키우게 되었다.

맴쇠를 얻어온 지 반년만에 숫 송아지 한 마리가 태어나자 그 송아지 값의 반은 우리 몫이라는 생각에 더욱 더 애지중지 키웠다.

흔히 부룽이 송아지면 뛸 듯이 기뻐했고, 암송아지면 시무룩했는데 그것은 부룽이가 암송아지 보다 가격이 높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더욱 더 기뻤다. 우리 맴쇠에게서 태어난 송아지를 판 값의 반을 챙겨들고 서울로 대학입시 보러 갈 수 있도록 여비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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