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차 원희룡 도정, '협치' 새롭게 한다더니...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지난 7월 1일, 취임 1주년을 맞아 그동안 누누이 강조해왔던 '협치'가 무색해졌다는 비판을 듣고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며 "2년차엔 새롭게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취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말만 그러했을 뿐'이라는 평가가 벌써부터 뒤따르고 있다. 말이 무색하게 원희룡 지사는 제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두고 제주특별자치도의회와 또다시 갈등을 빚었다. 도민혈세인 예산을 놓고 도의회와 벌인 힘겨루기는 지난해 말 2015년도 본예산을 두고 다퉜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도청 일부 공직자들은 원 지사에 대한 지나친 충성심(?) 때문인지 '협치'는 커녕 상식을 벗어난 행동들을 연이어 드러냈다. 이제는 견제 대상이 되어버린 의회의 활동을 감시(?)하기 위해 몰래 브리핑 내용을 녹음하려다 들킨다거나, 제주신공항 지역설명회에 찾아가 소음민원을 제기하려는 주민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 것을 압박(!)한 일련의 행동들에서 의아심을 느낄 정도다. 물론 중산간 난개발 방지를 위해 조례를 마련하고 이호 테우해변의 사유화를 막아내는 등 사람과 자연, 문화의 가치를 키우겠다는 기치에 걸맞는 움직임도 있었다.

제주 도시첨단산업단지 조성사업에 대한 계획은 지난해 원희룡 지사가 취임했을 때부터 시작됐다. 정부 국토부 고시가 6월 26일이었고 지자체 대상 설명회가 7월 3일에 있었으며, 그 뒤 제주도정은 9월 25일에 제안서를 제출했다. 즉, 원희룡 지사는 이미 도남동 해당 부지에 대한 사업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를 숨겨왔다가 올해 1월 18일, 국토부로부터 공모사업에 선정됐다는 결과를 통보받고 일제히 밝힌 것이다.

올해 3월 9일 반대대책위는 도지사실에 항의방문했다. 하지만 그 이후 반대대책위는 도지사를 만날 수 없었다. 권혁성 제주 도시첨단산업단지 반대대책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은 같은 달 27일에 면담을 신청했지만 담당자에게 전가시키며 모르쇠로 일관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 제주도시첨단산업단지 조성사업에 반대하고 있는 해당 사업부지 토지주들이 내건 현수막. ⓒ뉴스제주

# 용역 과업내용서, 반드시 추진해야 되는 사업?

한국토지주택공사(사장 이재영, 이하 LH)가 밝힌 제주 도시첨단산업단지 조사설계용역 과업내용서엔 이 사업이 반드시 추진돼야 할 것처럼 기술돼 있다.

용역 목적에 보면, "본 과업은 제주 도시첨단산업단지 조성을 차질없이 수행하기 위한 조사설계용역을 목적으로 한다"며 "철저한 검토로 해당 인허가를 적기에 이행하고, 각종 설계도서의 충실한 작성으로 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차질없는 과업 이행에 목적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이 사업은 현재 토지주들과의 교감이 전혀 형성돼 있지 않다. 그러다보니 권혁성 부위원장은 "공청회는 커녕 사업 자체를 반대한다"며 "사업부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철회를 요구하며, 토지보상 협상은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행정에선 "지금 토지주들과 나눌 수 있는 대화는 없다. 구체적인 사업계획이 나와야 대화에 나설 수 있다"며 한 발 물러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 행정과 토지주들 간 대화는 전혀 이뤄지고 있지 못한 상태다.

권 부회장은 "토지주들이 정당한 정보 제공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어떤 정보도 전해듣고 있지 못하다"며 "안타깝고 억울한 심정 뿐이다. 현재로선 이런 부당함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방법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권 부위원장은 "제주도정이 누구를 위한 도정인지 모르겠다"며 "원 지사가 비자격 농지를 농민들에게 돌려주겠다고 했다. 산업단지로 인해서 주변 비자경농지들이 어마어마한 시세차익을 보게 될텐데 이에 대해 원 지사가 과연 뭐라고 대답하는지 듣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권 부위원장은 "단지 주변에 농지를 무단 전용한 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업단지에서 배제시켰다. 농지원부가 없는 업체에 팔아 명의신탁만 해 놓은 경우도 있다"며 "오히려 법을 위반한 토지는 인정해주고 농사짓는 땅을 빼앗아 가려는 것에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게다가 권 부위원장은 "입주희망서를 제출했다고 한 넥슨은 이미 노형동에 입주했고, 국토부에 제출된 제안서가 80페이지 정도 되는데 입지에 대한 내용은 단 3페이지에 불과하다"며 "그런 제안서를 낸 제주도정도 문제고 그걸 받아 준 국토부도 정상이 아니"라고 힐난했다.

▲ 토지주들은 자신들의 농지에 제주도청 및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이 무단 침입할 경우 강력한 대처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뉴스제주

# 해당 부지는 이미 개발하기 힘들었던, 주민들의 한이 서려있던 곳

사업부지엔 전체 약 148필지가 개발행위제한 구역으로 묶여 있고, 묘지 및 도로를 빼면 90필지 정도된다. 거의 전부 농지며, 건축물은 농지를 관리하기 위한 창고가 전부다.

그런데 알려진 사업부지의 면적이 다 다르다. 언론에 뿌린 보도자료엔 16만 3535㎡로 기록돼 있으며, 도시계획위원회는 18만 7000㎡을 심의했다. 반면 LH가 조사설계용역에 고시한 면적은 15만 2000㎡다. 이를 두고 권 부위원장은 "제주도정과 국토부 간 행정의 엇박자를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道기업지원과 관계 공무원은 "당초 계획한 사업부지는 16만 3535㎡"이라며 "이를 국토부에 신청한 것이고, 18만 7000㎡는 개발행위허가 제한지역으로 고시한 면적이다. LH공사에서 내부적으로 어떤 검토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실질적인 사업계획이 나오기 전에는 정확한 면적이 산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권혁성 부위원장은 "이미 그 땅은 지난 수 십 년 동안 행정으로부터 핍박받아 온 땅"이라고 밝혔다.
권 부위원장장의 설명에 따르면, 산업단지 부지는 1990년대 중반까지 그린벨트로 묶여 있었고 90년대 후반기 때엔 중앙공원으로 묶여 있다가 제주시청사를 이전한다며 시민복지타운 조성용으로 토지를 강제 수용하면서 토지주들을 애타게 했던 곳이다. 그러다가 이젠 첨단산업단지가 들어선다고 해서 다시 개발행위허가 제한구역으로 고시했다.

이를 두고 권 부회장은 "대체 행정에서 토지주들을 몇 번 죽이는건지 모르겠다"며 "올해 6월 3일에 제한구역으로 고시됐지만 항의해봐야 별 의미가 없다 해서 안 했던 거고 일부 토지주만 나서서 항의를 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권 부회장은 "우리 토지주들은 LH공사와 제주도청 관계자들의 출입을 전면 통제하겠다"면서 "무단침입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불상사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제주도에 있다"고 경고했다.

▲ 산업단지 반대대책위에서 내건 현수막. 토지주와 협의없이 추진하는 제주도시첨단산업단지 추진을 절대 반대한다고 써있다. ⓒ뉴스제주

# 주민 협의 없이 추진되는 사업? 협치는 어디로...

제주도는 지리적으로 2차 산업이 매우 취약한 지역이다. 1차산업과 관광산업에 대부분의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일자리가 제한적이다. 제주의 많은 인재들이 이곳을 벗어나려는 이유 중의 하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주도정은 대기업들을 제주로 유치하는데 많은 힘을 쏟고 있다. 또한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이사장 김한욱, JDC)와 함께 여러 유망 기업들을 제주로 끌어오기 위해 고군분투 중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도정은 기업들이 제주에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이러한 대규모 산업단지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 사업은 JDC가 현재 제주시 월평동에 추진 중인 제2첨단과학기술단지 조성사업과도 일부 겹치는 부분이 있어 과잉 투자가 아니냐는 지적도 뒤따르고 있다. 또한 LH는 이 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KDI, 한국개발연구원) 결과에 따라 용역이 중도 타절될 수 있음을 알리고 있고, 민원이 발생하거나 관계기관 협의가 지연되면서 용역 추진이 불가할 경우 중지될 수 있다고도 밝혔다.

2차 산업이 취약한 제주도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제주도정의 취지는 그렇다 할 수 있겠으나 결국 주민들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사업은 갈등만 초래하고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국가사업이기 때문에, 관계 법령에 의해서 추진되는 것이라해서 밀어부치기 보단 보다 더 현명한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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