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의 울분을 웃음으로 승화해 나가는 이사람”

세상인심이 아무리 각박해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많은 분들이 이런 물음에 잠시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물론 그를 아는 이들은 한순간의 고민도 없이 이사람“안택훈”을 생각해 낸다.
그리고는 말한다. 아마 이사람 만큼은 변치 않을 거라고 말이다.

□ 험한 세상살이에 웃고 싶다고 외치지만 공허한 메아리에 불평만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예외인 사람이 여기 있다.

‘안택훈(남자, 41)’ 그는 금전적으로 넉넉하거나 사회적 위치도 높지 않다.
남들이 좀더 나은 삶을 위하여 발버둥치고 헤어나려고 할 때 그는 자신보다 어려운 이들, 특히 불우한 청소년들에게 자신이 못다한 꿈을 위하여 이야기를 전하고, 그 이야기속에 언제나 사랑이 가득한 미소와 웃음이라는 희망 메시지를 전해 준다.

안택훈씨는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시절)3학년 재학시절 급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로 인하여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껌팔이, 신문배달, 구두딱이, 병 줍기 등 그 어린나이에 안 해 본 일이 없다.
어머니가 계셨지만 중증 시각장애인이어서 가족들의 경제적인 뒷바라지를 못하게 되었다.

그는 일찍 가장이라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힘든 세상에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에 경제적인 압박으로 인하여 탈선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자신 뒤에 있는 가족들과 자신에게 무한신뢰를 보내는 주위 어른들에게 실망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굳은 결심이 오늘날 훌륭한 희망전도사가 된 것이다.

소년가장으로서 험한 세상에 나아갈때마다 뒤에서 절대적 힘이 되어준 어머니마저 시각장애와 뇌출혈로 고생하시다 얼마 후에 세상을 등졌다.

□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전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 장차 커서 공 갚아야 한다”라는 말씀을 평생 머리에 각인시켜 살아가고 있다.

한국불우청소년선도회 제주도지부 문예부장을 맡아서 청소년 선도 캠페인, 청소년 유해환경 감시활동, 청소년 흡연 예방활동 등 불우청소년들에게 바른길과 희망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고, 또한 BBS지도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모두 어떠한 댓가를 받는 것이 아닌 무료자원봉사활동이다.
어려운 살림에 자신과 같이 어려운 삶을 사는 어린 친구들에게 무한 봉사와 자신이 금전적 여유돈이 있을라치면 지갑속이 무안할 정도로 한 푼도 남김없이 다 줘버린다.

주위에서 “자신도 어려우면서 그렇게 한푼도 남김없이 돈이고 물건이고 다 줘버리면 어떻게 살려고 하느냐”며 나무릴라 치면 그는 특유의 너털 웃음을 내며“괜찮아요. 저보다 더 삶이 어려운 분들도 살아가는데, 저는 그저 살아있는 것만도 하느님께 감사한데요. 뭐”라면서 걱정스런 이들의 호통을 살며시 피해간다.

이런 모습에 안타깝게 여긴 지인들이 “자네는 성실하니까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야”라면서 한사코 부담스럽다며 거절하는 그에게 십시일반 자금을 모아서 ‘오름광고’라는 지하에 조그마한 광고회사를 만들어 주었다.

지속적으로 거절하기가 미안해서 그는 지인들이 라이타, 명함 등 광고의뢰가 들어오면 밤을 지세우더라도 빨리 만들어 드리려 하고, 가격도 이익 없이 주다보니 구입하는 사람이 더 돈을 내려고 하고, 판매하는 사람은 더 가격을 깍는 웃지 못할 일이 매번 일어난다.

그리고 그가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든 계절을 자신의 애마인 오토바이로 운전하고 다녀서 광고 관련하여 찾아가는 지인들은 사무실로 직접 찾아간다.
혹시라도 오토바이로 찾아오다가 불행한 일이 생길 것 같아서, 위험스럽고 안타까워하기에......

□ 요즘 그에게 답답한 고민이 더 늘었다.

뇌병변 3급을 가진 아내가 점점 증세가 악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 이야기를 하게 되자 다시금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면서“아프지 않으면 내년이라도 식을 올리려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마음을 추스르더니 웃으면서“아내는 제가 보여주는 밝은 모습과 웃음소리를 좋아합니다. 그러기에 아내를 위하여, 그리고 나를 위하여, 더 나아가 저희들을 지켜보는 많은 분들에게 밝은 모습만을 보여주려 합니다. 현재 어렵고 너무나 벅찬 상황이라도 이겨 낼 겁니다. 저보다 더 힘든 분들도 많은데요. 제가 밑바닥부터 시작된 삶을 만족하기에 큰 욕심도, 특별히 허황된 마음도 없습니다.”라며 다시금 씩씩하게 웃는다.

아프지만 언제나 곁에서 힘이 되어준 사랑스런 아내, 주변에 그 자신 보다 더 아끼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많은 분들, 그리고 그의 숙명이라 철썩같이 믿고 사랑을 실천하고 나아갈 대상자인 불우청소년들이 있어 언제나 행복하다는 안택훈씨.

인터뷰가 끝나고, 어두운 지하방에 만든 사무실에서 정성스레 도안을 만드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필자의 얼굴이 화끈 거렸다.

아마도 그가 글쓰는 필자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졌다는 것을, 내가 진정 알아서일까?

 


참고로 안택훈씨는 85년도에 제주지역 소년, 소녀가장 대표로 청와대 초청에 갔다 왔고, 86년도에 어린이재단에서 주최한 소년, 소녀 가장 수기에 “태양을 향한 힘찬 발걸음”으로 장려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필자가 그의 재능을 알기에 어린이 동화나 수필을 써보시라고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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