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 동행’ 이희호 여사 마지막 인사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민주화 운동 동지이자 반려자인 부인 이희호 여사가 김 전 대통령과 마지막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이희호 여사는 20일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거행된 입관식에 김 전 대통령에게 작별 선물을 줬다. 표지 안쪽에 마지막 편지를 써넣은 자서전 ‘동행’과 병원에서 김 전 대통령 배를 덮었던 뜨개질 담요, 손수건, 성서를 관 속에 함께 넣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 여사는 편지에서 “같이 살면서 나의 잘못됨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당신은 너그럽게 모든 것을 용서하며 아껴준 것 참으로 고맙다”고 했다. 이어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했다”며 “어려운 잘 감내하신 것을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줄 안다. 자랑스럽다”고 썼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37일간 투병 동안 “의지가 강한 분이시니 훌훌 털고 일어나실 것”이라고 오히려 측근들을 위로했다. 서거 이후 측근들을 통해 일부 추모객에게 돌출행동을 자제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등 시종 침착함을 유지했다. 하지만 입관식에서 남편의 마지막 얼굴을 보고는 끝내 오열했다.

의사인 부친을 둔 이 여사는 이화고녀, 이화여전,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 램버스 대학, 스카릿 대학을 나온 드문 엘리트 여성이다. 그는 남녀 평등 의식이 강한 지식인이었다. 서울대 사범대 재학 시절 그의 별명이 독일어로 중성(中性)을 뜻하는 ‘다스(das)’였을 정도다.

첫 부인 차용애씨와 사별한 김 전 대통령과 62년 결혼해 늘 곁을 지켰다. 김 전 대통령도 이 여사에 대해 ‘사랑과 존경’을 표시했다. 동교동 자택에는 ‘김대중’과 ‘이희호’ 문패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이 여사는 “남편에게 정치가 꿈을 이루는 길이며 존재 이유였다면, 나에게는 남녀평등의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 중의 하나”라며 “남녀 간의 뜨거운 사랑보다는 서로가 공유한 꿈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인연이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끊임없는 가택연금, 사형선고, 망명, 세차례의 대선 실패를 함께 버텨냈고, 97년 15대 대선에서 이겨 청와대 안주인이 됐다. 이 때문에 “김대중 정부 지분의 40%는 이 여사의 것”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런 47년 해로의 시련과 영광을 뒤로 하고, 이 여사는 비탄 속에서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여정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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