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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읍사무소 김종원

 청렴이 화두인 세상에서 누구나‘청백리’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는 조선시대 선정을 위해 청렴결백한 관리를 양성하고자 실시한 표창제도를 말한다. 이러한 청백리 제도는 과거부터 청렴에 대한 관심과 그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많았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청백리 정신을 대표하는 인물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이순신 장군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이순신은 36세 되던 선조 13년(1580) 지금의 전라도 고흥 발포의 수군만호로 수군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때 그의 직속상관인 전라좌수사 성박이 군관을 보내 관사 뜰에 있는 오동나무를 베어다 거문고를 만들겠다고 통보했다. 그러자 이순신은 "저 관사 뜰에 서있는 오동나무는 나 개인의 물건이 아니라 나라의 물건이오. 더구나 저 같이 오래된 나무를 하루아침에 베어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오." 하면서 수사의 군관을 꾸짖어 돌려보냈고 그는 이 일로 결국 파직되고 만다.

 누구나 쉽게 청렴을 외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처럼 본인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올곧게 행동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만약 필자가 충무공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과연 오동나무 하나도 관유물이라 생각하여 상관의 명을 거절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물론 이순신 장군은 뇌물이나 요령 피우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강직함을 유지하면서도 유연하게 상황을 대처했다. 원균이 이순신 장군 부하들의 전공을 빼앗아 그 군사들이 이순신 장군에게 억울함을 호소하였지만 충무공은 당시 경상 우수영을 담당하는 원균을 망신시킬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여 그 군사들에게 술과 밥을 먹이어 다독여 주고 모르는 척 넘어간다.

 진정한 청백리라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단순히 원리원칙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유연성을 가지는 것이 진정한 청백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유연성이라는 것은 원리원칙을 지키면서 더 큰 가치가 있는 일을 행할 때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라는 전시상황에서 우리 수군의 화합을 위하여 원균의 행위를 눈감아 준 것이다.

 오늘날 청렴의 가치는 사회가 다원화되고 그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도덕불감증의 그늘 아래 점차 퇴색되어 왔다. 최근 들어서 국민들은 공직자들의 온갖 뇌물과 비리에 대한 뉴스를 항상 접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 공무원들은 단순히 청렴의 가치만을 강조하기 보다는 진정한 청렴이 무엇인지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며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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