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재판부 "사안의 중대성 ·자수 모두 감안한 판결 정당"

▲ 지난해 5월 17일 중국인 여성 살인사건의 범인인 쉬모(36)씨가 범행 장소인 제주시 도평동에서 현장검증을 할 당시 모습. 경찰과 함께 살해 장소에 도착한 쉬씨는 "가족과 지인이 자신을 알아볼까봐 언론에 노출되기 싫다"며 현장검증을 거부하기도 했다. ⓒ뉴스제주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20대 중국 동포 여성을 흉기로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후 빼앗은 돈으로 유흥과 도박에 탕진한 30대 중국인에 대한 항소심이 기각됐다.

광주고등법원 제주 제1형사부(재판장 마용주 수석부장판사)는 8일 강도살인 혐의로 구속기소된 쉬모(36 ·중국)씨와 검찰의 쌍방 항소를 기각, 원심 형량인 징역 22년을 유지했다.

쉬씨가 "형량 22년은 자수한 점에 비춰 형량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하자, 무기징역을 구형했던 검찰은 원심 형량이 너무 가볍다며 쌍방 항소로 맞섰다.

검찰은 "강도살인 혐의를 부인하면서 별다른 반성이 없는 점, 20대 젊은 여성을 살해하고 지역사회에 불안감 조성한 점, 사안이 중대한 점 등을 감안해 사회로부터 영구 격리시켜 달라"며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1심 형량에서 검찰이 구형한 무기징역 보다 가벼운 징역 22년이 선고되자 쉬씨는 형량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소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경찰 조사에서 울먹이며 자신의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현장검증 조차 거부하고, 재판과정에서도 괴롭다는 표정을 지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표정이다.

이 때문에 쉬씨가 재판 결과를 수용할 경우 검찰에서도 항소로 대응하지 않을 가능성도 점쳐 졌지만, 쉬씨와 검찰 모두 항소했다.

쉬씨는 경찰과 검찰, 재판에 이르기까지 살인은 인정하되, 계획된 범행은 아니라는 주장과 '강도 살인'이 아니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번 재판의 쟁점은 살인과 사체유기는 인정한 만큼 '우발적 살인' 또는 '처음부터 금품을 노린 계획범죄'인지 여부다. 이 때문에 법정에서도 강도의 고의성 여부만 다퉜다.

피해 여성 A씨(24)는 생전에 유흥주점에서 일했었다. 유흥주점에서 알게 된 둘은 1차례 성관계를 가졌다. A씨는 이로 인해 아이를 임신했고, 양육비로 1000만원을 주지 않으면 이를 아내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하자 우발적으로 살인하게 됐다는 것이 쉬씨의 주장이다.

검찰은 쉬씨가 살해하기 직전 카드 비밀번호를 알아낸 것으로 보고, 처음부터 금품을 노린 계획된 범행이라고 최종 판단해 재판에 회부했다.

이 남성은 여성을 살해하기 직전 여성에게 카드를 빼앗았다. 이후 여성의 직불카드로 세 차례에 걸쳐 현금 619만원을 인출해 카지노 도박과 유흥으로 탕진했다.

하지만, 쉬씨는 숨진 여성으로부터 빼앗은 카드 비밀번호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에 대해 명확히 소명하지 못했다.

그동안 앞선 두차례의 재판에서 어떻게 카드 비밀번호를 알게 됐는지 소명하지 못하다가 세 번째 기일(8월 16일)에서야 "피해 여성에게는 카드 2장이 있다. 이 중 한 장은 300만원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비밀번호를 알게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머지 한 장의 카드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경우 '계획범행'이 아니라고 부인하기 어렵다. 설령 이전부터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쉽사리 납득하기 힘들다.

검찰은 쉬씨가 형량을 줄일 목적으로 강도의 고의성을 부인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강도살인 혐의가 인정될 경우 '사형' 또는 '무기징역'으로 법정 최고형까지 처하도록 하고, 유족과 합의가 안되고 엄벌을 탄원한 만큼, 법정 최고형 가능성도 점쳐졌다.

재판부도 강도 살인의 고의성과 처음부터 돈을 노린 계획 범행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쉬씨가 비록 본인에게 수사망이 좁혀 오자 뒤 늦게 자수한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감안해 검찰의 형량보다 다소 낮은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이 불리한 정상과 유리한 정상을 모두 참작해 판단한 만큼, 형량이 가볍다거나 무겁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지난해 11월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이전에 1회 성매매를 하고, 이후 피해자가 돈을 요구하자 사건 당일을 포함해 4회에 만난 것에 불과하다.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자신의 카드 비밀 번호를 알려줬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은 피해자가 불러준 비밀번호를 기억하기 위해 피해자를 살해한 직후 자신의 휴대전화에 입력해 전화를 거는 방법으로 저장한 점, 돈을 계좌로 인출하면서 현금 지급기에 비밀번호를 잘못 입력하기도 했던 점에 비춰보면 범행 당시 피해자 카드의 비밀번호를 알지 못한 것으로 보이다. 피고인이 피해자를 위협해 카드 비밀번호를 알아낸 것은 어디까지나 피해자로부터 돈을 빼앗을 목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살해 다음날 새벽에 은행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인출하고, 시신을 자신의 차량 트렁크에 싣고 다니면서 추가로 돈을 인출해 예금 대부분을 꺼내 도박과 유흥 등 개인 소비 행적에 비춰보면 금품을 노린 계획적 범행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의 범행으로 인해 피해자는 매우 극심한 고통에 생을 마감했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자신의 지문을 지우기 위해 피해자 사체에 락스를 뿌리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하고, 살인 사실을 숨기기 위해 며칠 간 피해자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며 연락이 오는 피해자의 지인들에게 살아있는 것처럼 문자를 전송하는 행태도 보였다"고 말했다.

또한 "이 사건으로 피해자의 가족들은 매우 큰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받았고, 이는 평생에 걸친 상처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피해회복을 위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유족들도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도 "피고인에 대한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경찰에 자수한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한다"고 판시했다.

쉬씨는 2015년 12월 30일 오후 3시~4시 사이 A씨를 자시의 차량에 태워 제주시 도평동 소재에 있는 외각 길로 데려가 흉기로 목과 가슴 등을 6차례를 찔러 살해했다.

그는 시신을 차량에 싣고 다니다가 올해 1월 3일 새벽 2시경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임야에 유기했다.

수사는 지난해 4월 13일 고사리를 채취하러 나선 50대 남성이 동광리 임야에서 시신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데서 시작됐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쉬씨는 시신이 발견된 이후 한달만인 지난해 5월 13일 경찰에 자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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