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안허우꽈?] 118화, 갑작스러운 요구
[펜안허우꽈?] 118화, 갑작스러운 요구
  • 차영민 작가
  • 승인 2021.07.22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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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민 작가의 역사장편소설
▲ 차영민 역사장편소설 '펜안허우꽈' ©Newsjeju
▲ 차영민 역사장편소설 '펜안허우꽈' ©Newsjeju

산으로 가야 한다, 산으로. 그러나 머리 위로 스치는 화살이 우리를 막고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저 멀리 우리를 향한 그림자들은 점점 좁혀올 것이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대로 사로잡히거나 쓰러질 것이 분명했다. 준비된 것은 없었다. 각자 손에 칼을 대고 있었을 뿐.

“산으로만 가면 되는 것이오.”

옆에 자리 잡은 그가 입을 열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칼을 앞으로 내던졌다. 이내 저 멀리서 신음이 크게 울리더니, 잠시 적막이 찾아왔다. 그것도 잠시 갑자기 우리 쪽으로 그림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저들만 쓰러뜨리면 되는 것인가.”
그가 중얼거렸다. 동행한 자들이 갑자기 일어나서 자신의 무기를 들고 돌진하였다. 순식간에 그림자들과 맞붙었고, 나도 얼른 몸을 일으켜 조금 더 가까이 붙었다. 전투에는 차마 합류할 수는 없었다. 이미 몽골군사들 대부분은 나와 함께한 이들의 손에 하나둘 낙엽처럼 쓰러지고 있었다. 여태 숨어서 움직였던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지금까지 본 것은 본 것이 아니어야 할 것이오.”

알 수 없었다. 눈앞에 보여진 모습을 어찌 보지 못 한 것이라 할 것인가. 이대로면 어느 용맹한 장수가 와도 순식간에 쓰러뜨릴 기세였다. 어쩌면 우리 조정이 몽골에 꼭 조아릴 필요도 없지 않은가.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쓰러진 몽골 군사들의 피비린내가 뜨겁게 올라왔다. 그들을 뒤로하고 다시 이동을 다시 시작했다. 마을 입구에서 잠시 멈추었다. 산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길은 마을을 관통해야 하지만, 이대로 진입하는 것은 망설여졌다. 혹여나 남은 몽골군사들이 더 있을 수도 있고, 또 어떠한 변수가 남아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우회로가 안전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탐라의 지형상, 사람이 살지 않은 곳은 통행도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역으로 곳곳에 매복한 몽골 군사들이 있을지도 모를 터.

“어찌하면 좋겠소?”

그나마 탐라에 오래 머무른 내 결정이 유일한 방법이다. 마을을 우회하자는 얘기를 입밖으로 내놓으려던 순간, 그가 떠올랐다. 지금 우리가 찾아야 하는 바로 지슬. 탐라에 머무르는 동안 언제나 그리 멀리 있진 않았다. 다만 지척에 두고도 계속 엇갈렸을 뿐. 피하지 않고 맞서는 것이야말로 지슬과 가장 빨리 만나는 방법일지도 모를 일. 내가 먼저 마을 안쪽으로 발길을 이끌었다.

“미리 말해두건데, 우린 탐라 백성들을 구할 수 없소이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바로 내 뒤를 따른 그가 눈에 힘을 주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먼저 곳곳에서 썩은내가 진동을 했다. 오히려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는 피비린내가 신선할 정도였다. 어둠이 짙게 드리워 주변의 집들은 선명하게 보이진 않았으나 그림자만으로 다소 기울어진 건 알 수 있었다. 탐라는 지금 어딜 가도 하나 성한 곳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하루 빨리 조정에 이를 확실히 알려야 할 터, 괜히 발걸음이 빨라졌다.

“잠깐!”

그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잠시 멈춰서자, 우리를 둘러싼 눈빛들이 느껴졌다. 아직 그들이 남아 있었던 말인가. 눈을 질끈 감고 싶었던 그 순간, 불빛이 보였다. 그 너머로 비쩍 마른 노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하나둘 가까워지는 다른 사람들도 나타났는데, 노인과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사내들도 몇몇 보였지만 다리를 절룩거렸고, 아예 주저앉아서 엉덩이로 바닥을 끄는 자들도 있었다.

“어디서 온 것인가!”

처음 나와 눈이 마주친 노인이 목청을 높였다. 그의 손에는 끝이 뾰족한 나무막대기가 들려있었다. 우리를 둘러싼 노인과 아이 중 몇몇은 비슷한 무기를 손에 쥔 상태였다. 나와 동행한 이들도 칼을 꺼내려고 했으나, 손짓으로 일단 제지했다. 일단 길을 잃은 행인이라고 일단 둘러댔다. 그러나 저들의 눈빛은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무기를 우리 쪽으로 더욱더 바짝 겨누고 있었다. 마을에 전혀 해가 되지 않을 것이며, 이대로 조용히 지나가길 원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 말을 어찌 믿으란 말인가!”

노인은 얼굴에 핏대를 세웠다. 지금까지 마을을 그냥 지나친다고 했다가 오히려 혼란스럽게 했던 자들을 나열하였다. 기존 탐라 관리들부터 삼별초, 고려군, 몽골군까지 누구 하나 그대로 두지 않고 어떻게든 피해를 주려고 했다는 것. 사정을 보아하니, 이곳이 탐라 곳곳으로 통할 수 있는 중요한 길목에 속한 마을이기도 했다. 다만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건장한 사내들을 데려가고, 여인들도 팔다리 성하면 보이는 족족 끌고 가 버렸으니. 이제 남은 건 우리 눈앞에 있는 노쇠하거나 어리거나 성하지 않은 사람들 뿐이었다.

“숨기지 말고 빨리 할 일을 하고 가시오.”

한참 목청을 높이던 노인이 갑자기 바닥에 무기를 내려놓았다. 그 자리에서 완전히 주저앉는 것이 아닌가. 몇몇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렸지만 이들이 바닥에 내려놓은 침묵만큼은 완전히 깨뜨릴 순 없었다. 도저히 발을 바닥에 떼어낼 수 없는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도대체 여기서 무엇을 해달란 말인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함께 온 이들의 눈만 바라볼 뿐이었다. 이대로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까? (계속)

▲ 소설가 차영민. ©Newsjeju
▲ 소설가 차영민. ©News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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