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정 전문가라는 러시아 해군 예비역 대령 미하일 보른스키의 언론 인터뷰가 화제다. 중국 언론과의 회견에서 그는 “대잠 초계함인 천안함이 잠수함이 쏜 어뢰에 맞아 침몰했다면 한국 해군은 밥통”이라고 했다. 중국말 ‘밥통’은 우리말처럼 ‘바보’라는 뜻이란다.

매우 제한된 범위에서 행해진 감사원의 천안함 감사에서조차 한국 군부가 저지른 조작, 거짓, 눈가림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전쟁 불사’까지 외치게 했던 이 사건은 이제 국제 망신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전쟁 북소리를 울려대며 자기네 이득을 챙기려 했던 엠비, 한나라당, 조중동, 한국방송 등이 모두 ‘밥통’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번 지자체 선거에서 많은 국민들은 이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보냈다.

이런 가운데 선거 이후 위기를 느끼고 있는 한나라당 내 일부에서 ‘국정 쇄신’과 ‘청와대 전면 개편’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어느 의원은 “(선거를 통해) 민심이 나타났는데 (그걸 무시하고) 그대로 가자는 것은 바보”라고 말했다. 세종시 수정, 4대강 등을 그대로 밀고 나가면 엠비도 ‘밥통’이란 뜻이다. 이런 ‘전면 쇄신’ 움직임에 대해 청와대 쪽 ‘핵심 참모들’은 4대강도, 세종시 수정도, 대북 강경노선도 그대로 갈 거라며 ‘그까짓 선거 결과’라는 분위기다.

그런데 그동안 민주주의가 뒤집어지고, 검찰 등 권력기관이 온갖 겁박을 하고, ‘전쟁 불사’의 모험주의가 판을 칠 때에는 잠자코 있다가, 아니 그 분위기에 편승하여 즐기다가, 선거에서 지고 나니 우국충정이 넘쳐 나는 듯 ‘인적 쇄신’ ‘국정기조 쇄신’ 등을 외치는 인사들의 모습도 코미디처럼 보인다. 진정으로 공동체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해서라기보다는 이대로 가다가는 다음 선거에서 떨어지거나, 자신의 정치입지가 좁아질 것 같으니, ‘쇄신’ 목소리를 높이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깊이 새겨봐야 할 듯하다.

더 한심한 사람들은 엠비 주변 인사들이다. 선거에서 패배한 뒤 청와대 반응이 그랬단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그렇게 국민의 마음을 못 읽으니, ‘밥통’이지 뭔가.

이명박 대통령은 어뢰 프로펠러와 어뢰 축이 발견되어 천안함 사건의 범인이 북한으로 밝혀졌다는 보고를 받고 “운이 따르는구나”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전쟁기념관에 가서 ‘전쟁 불사’의 결의를 불태웠다. 이 정도 ‘북풍’이면 지자체 선거는 간단히 넘길 수 있고, 그 여세를 몰아 세종시 수정, 4대강 밀어붙이기, 수구 기득권 홍보권력인 조중동에 종합편성채널 주기 등의 정책을 강행하겠다고 결심했을 법하다. 조중동과 한국방송 등의 동지적 보도와 북풍 소나기가 일반 여론의 흐름인 줄 알았을 테니.

그랬기에 ‘빵꾸똥꾸’를 심의·경고하고, 방송과 인터넷 쪽에 온갖 통제와 간섭을 해 온 엠비의 멘토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회피 연아’ 동영상을 ‘교육적 목적으로’ 고발했다는 “사진 찍지 마, 에이 씨×”의 유인촌 장관, 청와대 ‘핵심관계자’라며 거침없이 주요 발언들을 ‘마사지’하는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 이명박 정권에 친절한 훈수와 여론 비틀기를 해 온 조중동, 김제동·윤도현 등을 잘라내고 ‘공영’이 아닌 ‘국영’ 방송으로 되돌려놓고 있는 한국방송 수뇌부 등이 독선과 오만에 사로잡혀, 권력에 도취하여, 많은 국민의 마음, 특히 2030 젊은 세대의 마음을 제대로 보았을 리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선적 행태, 일방주의로 보아 ‘그냥 고’ 할 것 같다는 예상이 많이 나온다. 그렇게 국민을 우습게 보는 선택을 하여 스스로 몰락을 재촉하게 될지 여부의 첫 시금석은 아랫돌 빼서 윗돌 메우는 ‘인적 쇄신’ 여부가 아니라, 조중동 종편 채널 주기와 4대강 밀어붙이기 여부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기본 토양이 언론과 자연환경인데, 이 둘을 모두 파괴하는 선택을 한다면 큰 저항과 급속한 몰락의 외길을 피할 방법이 없다. 그게 지금의 민심이고, 천심이다. /서울포스트(출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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