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등 혐의 적용된 피고인들, 검찰 2023년 4월 5일 기소
지난해 4월 21일부터 요청한 '국참', 1심부터 대법까지 '기각' 
2023년 네 차례 공판준비기일 후 2024년 첫 재판
불만 토로한 변호인, 갈등 속 피고인과 동반 퇴정
산으로 가는 국가보안법 재판, 재판부 '진땀' 

12월19일 오전 국가정보원이 제주시 노형동 진보당 제주도당 위원장 자택을 찾아 압수수색에 나섰다
국가정보원이진보당 제주도당 위원장 자택을 찾아 압수수색에 나섰다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간첩' 혐의가 적용된 제주도내 3명의 피고인에 대한 재판에서 변호인과 피고인 모두 퇴정하는 일이 벌어졌다. 재판부와 변호인의 날 선 신경전은 거듭됐고, 피고인 동반 퇴정으로 당사자 없는 기소요지 낭독과 다음 일정을 조율하는 등 제주지법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재판으로 치닫고 있다. 

29일 오후 2시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부장판사 진재경)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고창건(54. 남) 전국농민회 총연맹 사무총장, 박현우(49. 남) 진보당 제주도당 위원장, 강은주(54. 여) 전 진보당 제주도당 위원장 재판을 열었다. 

이날 피고 변호사 측은 재판부와 날 선 신경전을 펼쳤다. 

"피고인 신분 확인을 위해 일어서서 마스크를 잠시 벗어달라"는 재판부 요구에 변호인 측은 "일체 진술 거부를 하겠다. 질문을 하려면 권리 보장을 위해 고지부터 해라"고 받아쳤다. 

재판부의 거듭된 피고인 신분 절차 요청에도, 변호인은 "궁금하면 재판장이 직접 피고인석으로 내려와서 신분증을 보고 가라"며 거부했다.

재판부와 피고인 신분이 잠시 뒤바뀌는 상황도 벌어졌다. 변호인은 "자꾸 피고인 확인을 한다면, 제가 일단 판사 신분을 확인해야겠다. 세 분 판사 이름이 무엇인가"라고 되물었다. 

또 변호인석에서 일어난 뒤 합의부 재판석 앞까지 걸어가서 "판사 얼굴 좀 보자. 이름 좀 보자'"라며 "피고인 신분증을 갖고 있으니 보라"고 언급했다. 재판부는 법정 경위를 불렀고, 경위는 변호인을 자리에 돌아가라고 했다. 방청석에서 터진 고함만 법정을 맴돌았다. 소란과 침묵은 반복됐다. 

검찰에 기소 요지를 설명하라는 재판부의 말에도 변호인은 거부권을 내세웠다. 변호인은 지난 공판기일 녹음파일을 달라고 말했다. 국가보안법 사건이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으니, 항소심 등 상급 재판부 증빙용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변호인 측은 "형사소송법에 명시된 재판 절차대로 하지 않고, 일방적인 재판이 진행 중"이라며 "재판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기소요지 낭독을 시작하자, 변호인은 피고인들을 일으켜 세워 다함께 퇴정해버렸다. 

재판부는 "임의 퇴정을 불허하겠다. 자리에 앉길 바란다"고 발언했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법정 안을 박차고 나갔다. 

제주지방법원 사진 자료
제주지방법원 사진 자료

제주 '국가보안법' 혐의 재판은 2023년 4월24일 공판준비기일로 첫 시작을 알렸다. 준비기일부터 변호인은 '국민참여재판'을 요청했다. 현 재판부는 국참을 거절했고, 이때부터 갈등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 의해 2008년부터 시행된 '국참'은 국민들이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석하는 것을 칭한다. 

배심원이 된 국민은 법정 공방을 지켜본 후 피고인의 유무죄에 관한 평결을 내리고, 적정한 형을 결정할 수 있다. 재판부는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내린 평결을 참고해 판결을 선고에 나서게 된다. 국민참여재판은 통상적으로 1~3일 안에 재판을 마치도록 하고 있다. 

배심원의 결정 사항은 법원의 판결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진 않는다. 그러나 재판부가 배심원과 다른 판결을 한다면, 그 사유를 설명해야 한다. 

검찰은 국민참여재판이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현재 기소된 '국가보안법' 재판은 공소장이 약 120쪽 분량에 증거기록까지 더하면 약 1만 쪽에 달해 비법률가(일반 국민)로 구성된 배심원들의 이해도와 출석 문제 등 변수가 많다는 이유다. 국정원 소속 신분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명분도 덧붙였다. 

변호인 측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국가보안법을 겨냥하는 시선이 현실과 맞지 않아 현재를 살아가는 국민들의 판단을 들어보는 것이 적합하다"며 국참 희망 의사를 강조했다. 

제주지법은 '국가보안법' 재판을 위해 2023년4월 24일을 시작으로 ▲5월 15일 ▲6월 5일 ▲6월 19일 총 네 차례 준비 기일을 가졌다. 이 시간 동안 원활한 쟁점 정리가 되지 않아 재판부는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또 지난해 6월 19일 네 번째 공판준비기일에서 "공소사실이 너무 방대하다"며 국참 불허 결정을 내렸다. 

피고인 등은 1심 재판부의 국민참여재판불허 결정에 대해 광주고등법원과 대법원에 항고했지만, 모두 '기각' 됐다. 대법원은 "원심이 국민참여재판을 하지 않기로 한 사안은 정당하고, 헌법이나 법률 등 규칙을 위반한 잘못이 없다"고 했다. 

이날 기일에서 재판부와 변호인 측의 날 선 신경전은 기각된 국민참여재판 등 여파가 혼합된 것으로 해석된다. 

변호인과 피고인 동반 퇴정에 법정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판례를 확인한 재판부는 "변호인까지 임의 퇴정 경험은 처음이지만, '동반 무단 퇴정 시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계속 진행하겠다"고 선언했다.

검찰은 다섯 차례 흐름이 끊겼던 기소요지를 낭독했다. 재판부는 "법원 인사 여부로 재판장이 바뀔 수도 있다"며 "변호인 측이 제출한 의견서를 검찰도 검토해 보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 3명의 피고인은 2017년부터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해 지령문을 받고, 보고서를 보냈다는 혐의와 제주 이적단체 'ㅎㄱㅎ' 결성, 북한을 찬양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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