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이원석 후보자의 믿음, 소년범 '교화'
"누구에게나 빛과 그림자 있어···지속적 관심 필요"
꾸준한 교감으로 학생들 마음 열기도
소년범 교화 '손 심엉 올레' 제주 역작 사업
"제주에서 맺은 인연 늘 기억할 것"

▲ 이원석 검찰총장 후보자는 제주지검장 시절 주말마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깨달음을 얻고, 심신을 달랬다. ©Newsjeju
▲ 이원석 검찰총장 후보자는 제주지검장 시절 주말마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깨달음을 얻고, 심신을 달랬다. ©Newsjeju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말이 있습니다. 제주는 저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지역입니다. 주말마다 홀로 걸으면서 담아둔 제주의 산과 들과 나무와 꽃과 풀 향기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학생들이 제주를 걷는 사업 꼭 지켜봐 주세요."

이원석 검찰총장 후보자(54. 사법연수원 27기)가 제주지방검찰청 수장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언론에 당부한 사안이 있다. '손 심엉 올레(손잡고 올레)' 사업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달라는 말이다. 

'손 심엉 올레'는 말 그대로 제주도내 올레길을 걷는 프로그램으로 사단법인 제주올레, 제주소년원, 제주보호관찰소, 청소년범죄예방위원 제주지역연합회, 소년보호위원 제주소년원협의회가 함께한다. 

여러 사연이 있는 소년범이 도내 자원봉사자 등과 함께 올레길을 걸으면서 상처, 분노, 좌절감을 치유하고 그 과정을 통해 '선도'를 하는 것이 핵심이다. 

소년범 올레길 걷기는 프랑스에서 시행하는 '쇠이유(Seuil)'에서 착안했다. '쇠이유'는 소년원 등에 수감된 청소년이 자원봉사와 3개월 동안 총 200km를 걸으면서 석방을 허가하는 교정 프로그램이다. 이런 방식으로 프랑스는 소년범의 재범률을 낮추기에 주력한다. 제주도내 장거리 도보 구간은 26곳에 총길이는 425km다. 

당시 이원석 제주지검장은 "지나온 과거의 아픈 기억을 치유하고, 소년들의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는 일로 제주에서의 마지막 업무를 마무리하게 돼 뜻깊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이원석 검찰총장 후보자가 제주지검장 시절 학생들에게 받은 편지 일부. "검사장님의 선행으로 제 생각과 감정이 조금씩 변했다"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Newsjeju
▲ 이원석 검찰총장 후보자가 제주지검장 시절 학생들에게 받은 편지 일부. "검사장님의 선행으로 제 생각과 감정이 조금씩 변했다"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Newsjeju

"사람은 누구에게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빛도 그 사람이고, 그림자도 그 사람입니다···혼자 힘으로 설 수 있게끔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원석 후보자가 소년범을 생각하는 마음은 각별하다.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올바른 사회구성원으로 '교화'가 가능하다는 소신이다. 고민의 본격적인 시작은 수원고검 차장검사 시절 소년범과 마주하면서부터다. 

제주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취임하기 전인 2020년 이원석 후보자는 수원고검에서 '보호관찰심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위원장은 유관기관과 함께 가출소, 처우 변경, 임시 퇴원 조치 등 소년범 선도에 대한 업무를 본다. 이원석 후보자 표현을 빌리면 '소년범'이 아닌 '학생'이다. 

그곳에서 학생들과 마주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 이원석 후보자는 그들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이 후보자는 소설 같은 어려운 삶을 보낸 학생들을 보고 이야기를 들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다고 회상했다. 

물론 소년원에 있는 학생 스스로의 문제도 있지만, '만일 좋은 환경에서 자라났다면 어땠을까'라는 물음표가 강렬하게 다가왔다고 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잘 돌봐주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확고한 소신이 생겨났다. 

지난해 6월11일 제주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취임한 후부터는 소년범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소신이 본격화됐다.  

이원석 후보자는 제주지검 기관장으로 재직하면서 도내에 있는 소년원 학생들을 각별하게 챙겼다. 당시 제주소년원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특별한 검사장'이라고 후보자를 떠올렸다. 

제주소년원 관계자에 따르면 근무 기간 동안 이원석 후보자는 끊임없는 소통을 해왔다. 제주도내 보호관찰위원회 등에서 간혹 소년원을 찾는 경우는 있었지만, 기관장이 직접 챙기는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이원석 후보자는 "무엇이 필요합니까"라는 질문을 수시로 했다. 이 후보자는 처음에 혈기 왕성한 학생들이 뛰놀 수 있도록 축구공이나 농구공 같은 용품을 제공하려고 했었다. "한창 먹을 나이로 사식을 더 좋아할 것 같다"는 소년원 측의 답변이 돌아오자 이원석 후보자는 매번 피자를 넉넉하게 사서 보냈다. '행여나 학생들이 배탈이 나지 않을까'는 우려로 식품 업체도 꼼꼼하게 선정했다. 
 

▲ 제주지검장 시절 학생들에게 받은 감사 편지 내용 중 ©Newsjeju
▲ 제주지검장 시절 학생들에게 받은 감사 편지 내용 중 ©Newsjeju

이런 일화도 있었다. 피자를 보내주자 소년원 학생들이 감사 편지를 보냈다. 편지를 받은 후보자는 처음에 부담스러워했다고 한다. 자발적으로 학생들이 쓰지 않고, 혹시나 소년원에서 종용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자발적으로 쓴 글임을 인지한 이원석 후보자는 학생들이 보낸 자필 편지들을 정독했다. 다음에 소년원에 보낸 사식은 피자에서 치킨으로 바뀌었다. 사유는 한 학생의 장난스러운 한 줄의 글귀다. 학생의 편지는 "검사장님 피자 맛있게 먹었습니다. 다음에는 치킨으로 보내주세요^^(농담입니다)"라는 짧은 애교성 글이다. 이원석 후보자는 학생의 글을 기억했던 것이다. 

단발성으로 끝내지 않고 수시로 소통하자 학생들의 마음도 조금씩 열렸다. 꾸준한 관심의 누적은 견고한 유대감으로 돌아왔다. 편지 내용 역시 점점 진중함이 쌓였다. 

'검사장님의 무언가를 바라는 목적이 아닌 이유 없는 선행을 하신 모습을 보고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이 들었습니다···선행이라는 걸 할 때 무슨 기분일까···검사장님의 선행으로 제 생각과 감정들이 조금 변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주를 떠나신다고 들었는데 여기 있는 모두 검사장님을 기억할 것 같아요. 검사장님의 마음을 기억해서 나가서는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원석 후보자는 학생들의 편지 내용을 기억했다. 사식이 피자에서 치킨으로 바뀐 사연 언급에는 한참을 웃기도 했다. 

잠시 숨을 고른 이 후보자는 "(저로 인해) 감정이 변했고,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약속을 아이들이 나중에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면서도 "그 순간 친구들이 세상에 대한 시선과 그 마음을 품었다는 것 자체로 제가 행복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후보자가 제주지검장을 떠나기 전 학생들과 마주하면서 생긴 유대감을 바탕으로 좋은 사람으로 성장할 기회를 제공해주기 위해 고심한 결정체가 바로 '손 심엉 올레' 사업이다. 

이원석 검찰총장 후보자는 제주지검장 시절 학생들의 교화를 위해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을 해왔다. 
이원석 검찰총장 후보자는 제주지검장 시절 학생들의 교화를 위해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을 해왔다. 

"어려운 환경에 놓인 학생들이 많습니다. 부모들이 환자로 있어서 어린 나이에 가장 역할을 해야 하는 아이도 존재했습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좋은 환경에 있는 아이들이 소년원에 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환경이 중요했다. 어려움에 놓인 성장기 학생이 더 넓은 세상이 있고, 좋은 깨달음을 얻게 하는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이원석 후보자는 생각했다. '손 심엉 올레' 사업은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과 만남이 시발점이 됐다. 

서명숙 이사장 등에 따르면 이원석 후보자는 제주 부임 시절 매주 홀로 도내 곳곳을 걸었다. 올레길 전 구간을 완주했고, 한라산 둘레길과 제주의 오름을 모두 다녔다. 길에서 만난 도민과 이야기를 나누며 제주를 이해했고, 심신을 달래는 힐링의 기회가 됐다. 

올레길에서 여러 깨달음을 얻은 이원석 후보자는 제주올레여행자센터를 방문해 서명숙 이사장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이사장은 후보자에게 소년원생들이 올레길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했다. 

이사장은 교정·교화 프로그램을 종전부터 지속적으로 여러기관에 건의했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특수시설이라는 이유로 걸림돌이 많았다. '이번에도 받아주지 않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뱉은 발언이었지만, 이원석 후보자는 귀를 기울였다. 

이원석 후보자는 이사장과 헤어진 뒤 곧바로 두 팔을 걷어 올렸다. 서명숙 이사장은 유관기관과 위원회 등을 이원석 당시 제주지검장이 약 2주 정도 계속해서 설득에 나섰다고 전했다. '손 심엉 올레'는 제주뿐만 아니라 전국화로 정착돼서 학생들이 자연을 벗 삼아 깨달음을 얻고 교화해 멋진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토록 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 이원석 후보자는 "제주를 떠났지만 그곳에서 맺은 인연을 잊지 않고 있다"고 지속적인 지역사회 관심을 약속했다. ©Newsjeju
▲ 이원석 후보자는 "제주를 떠났지만 그곳에서 맺은 인연을 잊지 않고 있다"고 지속적인 지역사회 관심을 약속했다. ©Newsjeju

"제가 약 25년 동안 검사일을 해보니 사법적인 형사처벌만으로 사회를 깨끗하고 맑고, 향기롭게 만들기는 참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회적으로 모두 넓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만 우리 공동체가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원석 후보자는 자신이 사람을 대하는 철학도 언급했다. 짧은 기간 제주에서 느낀 점과 인연, 소년원 학생들과 교감 등을 '장무상망(長毋相忘)'이라고 했다.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뜻인 장무상망은 추사 김정희가 1844년 제주에서 지내던 시절 제자 이상적에게 선물한 그림 '세한도'에 있는 인장이다. 

이 후보자는 "지금은 제주를 떠났지만, 그곳에서 알게 된 인연들이 종종 연락이 온다"며 "손 심엉 올레 사업부터 4.3사건까지 늘 관심을 두고 제주에서 맺어진 인연을 잊지 않고 챙기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원석 검찰총장 후보자는 광주 출신으로 서울중동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98년 서울지검 동부지청을 시작으로 ▲법무부 법무심의관실(2008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 부부장검사(2010년) ▲제주지검 형사 2부장(2011년) ▲대검찰청 수사지휘과장(2015년) ▲해외범죄수익환수 합동조사단장(2018년)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2019년) ▲수원고등검찰청 차장검사(2020년) ▲제주지방검찰청 검사장(2021년) 등을 두루 거쳤다.

올해 5월 법무부 인사를 통해 대검 차장검사로 발령 났고, 현재는 검찰총장 후보자 신분으로 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