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여당 빠진 75주년 4.3 추념식, 내년 행사도 우려
진정성 의구심 가득한 윤석열 대통령의 추념사... '약속했다'는 말 뿐이 아닌가

▲ 제75주년 제주 4.3희생자 추념식. ©Newsjeju
▲ 제75주년 제주 4.3희생자 추념식. ©Newsjeju

제75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이 3일 제주4.3 평화공원 일대서 거센 광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개최됐다. 

실제 이날 평화공원 현장에서의 날씨는 험악했다. 제주도심권에선 포근해 보인 듯한 기온을 보였으나, 정작 평화공원에선 의자가 날아가고 책상이 뒤집어 질 정도의 세찬 바람이 매우 거세게 불어 상당히 추웠다. 바람이 너무 강해 헌화도 하지 못했다.

그간 역사적으로 보면 4.3 추념식은 매번 춥고 비가 내리는 등 궂은 날씨 속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었으나, 최근 몇 년 동안은 상당히 좋은 날씨 속에서 개최됐었다. 그러다 올해 다시 예년과 같은 험악한 날씨가 연출됐다. 

이 때문인지 많은 도민들은 "4.3 영령이 노하신 것 같다"는 말을 늘어놓기가 일쑤였다. 물론 당연히 인과관계는 없을테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았고, 최근 정부 여당과 극우세력이 4.3을 폄훼하는 일을 일으키고 있는 데 따른 결과로 비춰지는 모양새여서다.

이날 75주년 행사로 개최된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엔 예고된대로 윤석열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참석을 요청하는 제주도지사와 여러 4.3 단체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은 일정 상의 이유를 대며 한덕수 국무총리를 대신 보냈다. 

지난 4월 1일엔 한국 프로야구 개막식에 참석해 시구까지 했던 대통령의 4월 3일 일정은 아무것도 없다. 해외 출장을 간 것도 아니고, 어디 중요 행사장에 들른 일도 없다. 빈 공람으로 비어있다.

그냥 오기 싫은 게 아니었을까. 그러면서도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독하게 한 추념사에선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때 했던 약속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는 감언이설로 도민들을 꾀고만 있다.

추념사 전문을 읽어보면, 진정성이랄 게 느껴지지도 뭔가 와닿지도 않는다. 국가의 당연한 의무를 다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했지만 곧이어 뜬금없이 '콘텐츠'와 'IT'를 언급하더니 제주를 품격 있는 문화관광 지역으로 발전시키겠다는 허황된 공언(空言)으로 도민을 현혹시키려는 모습을 띠었다.

설령 그렇게 도민들을 어루더듬기라도 하겠다고 한들, 이미 자신이 약속한 관광청 제주 신설 약속은 온데 간데 없어졌다. 정부의 여러 첨단산업 추진에 제주가 모두 빠져있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 현실을 반추해보면, 윤 대통령이 '지금도 약속은 변함이 없다'는 말은 영혼없는 공허한 메아리로만 들릴 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과는 달리 짧아도 너무 짧았던 추념사는 그래서 더더욱 의례적인 처세술에 불과해 보였다는 게 중론일 수밖에 없다. 이번 4.3 희생자 추념식의 슬픈 모습이다.

▲ 윤석열 대통령은 3일 특별한 일정이 없었는데도 불참하고,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신 참석했다. ©Newsjeju
▲ 윤석열 대통령은 3일 특별한 일정이 없었는데도 불참하고,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신 참석했다. ©Newsjeju

# 국민의힘 여당에선 당 대표 및 지도부 모두 불참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곧바로 여당인 국민의힘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김기현 당 대표와 주호영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 모두 참석하지 않으면서 정부 여당으로부터 외면당한 추념식이 되고 말았다.

김병민 최고위원과 박대출 정책위의장, 이철규 사무총장, 이준석 전 대표 정도만이 참석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힘 지도부는 불참하는 사유로 '민생 챙기기'를 언급했으나 정확하지도 않다. 이날 추념식에 참석했던 김병민 최고위원은 기자들의 여러 질문에 시종 '동문서답'으로 일관했다.

'4.3 후속조치 사업들에 예산 편성은 어떻게 지원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병민 최고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과거 당선인 신분으로 참석해 발언했던 것으로 대답하면서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마음가짐으로 왔다"고 말했다.

이어 5.18처럼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 조항을 담은 4.3특별법 개정에 대한 질문에 김병민 최고위원은 "두 번 다시 되풀이되선 안 되는 과거사"라면서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미래로 나갈 수 있도록 모두가 한 뜻을 모으는 데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두루뭉술한 답변으로 대신했다.

또한 제주4.3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에 대한 질문에도 김병민 최고위원은 "당 대표와 원내대표께선 '2030 월드엑스코'라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늠할 국제실사단이 국내와 와 있어서 오늘 함께 오지 못했다"면서 "조만간 제주로 와서 그 때 좋은 의견들을 경청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 제75주년 제주 4.3희생자 추념식. ©Newsjeju
▲ 제75주년 제주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당 대표. 국민의힘 측에선 당 대표는커녕 원내대표조차 오지 않았다. ©Newsjeju

# 더불어민주당에선 이재명 당 대표 포함 최고위원 총출동

반면, 더불어민주당에선 이재명 당 대표를 포함해 원내대표와 최고위원 모두가 참석했다. 이들은 그간 4.3에 대한 그간의 성과를 열거하면서 항상 민주당이 앞장서왔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재명 당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불참한 데 대해, 당선인 신분 시절 추념식에 참석했을 때 약속했던 것들이 '부도났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평가엔 국민의힘이 태영호 국회의원의 4.3 왜곡 발언에도 아무런 대응에 나서지 않은 채 오히려 최고위원으로 선출시키고, 진실화해위원장에 극우 세력들의 발언을 일삼았던 인물을 앉힌 것도 한 몫한 결과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반드시 4.3을 왜곡·폄훼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을 담은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박홍근 원내대표와 정청래, 박상대, 서영교 최고위원 등도 모두 한 목소리로 이를 강조했다. 이와 함께 유전자 감식과 가족특례법, 직권재심 등에 대한 문제해결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의 협조가 없더라도 이번 4.3특별법 개정안은 무난히 통과될 것이 유력해보인다. 4.3 명예회복과 완전한 해결엔 여야가 따로 없다고 인정까지 했던 국민의힘이었으나, 정작 미온적인 대통령의 행보를 따라가느라 '밉상'스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민주당 측에선 이를 질타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박홍근 원내대표는 "오늘 추념석이 모습을 비추지 않았지만 내년 총선 때엔 표를 의식해 얼굴을 비출 것"이라고 비꼬았다. 

이어 박 원내대표는 "선거에 도움 될 때만 잠깐 이용하고마는 윤석열 대통령과 정권의 행태가 5.18 민주화 운동부터 제주4.3까지 한결같이 이어지고 있다"고 꼬집으면서 "이중적 행태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하고, 이게 제주4.3을 대하는 윤석열 정권의 민낯"이라고 일갈했다.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이상, 내년 76주년 추념식 때에도 이날과 같은 풍경이 재현되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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