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범 이사장 이어 오임종 직무대행까지 사퇴... 왜?
오임종 "만장일치로 직무대행 앉혀놓더니 자기네 뜻대로 요구"
유족회 감사까지 현 이사진에 반발... 내부 분열 심각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던진 돌에 제주4.3평화재단이 쑥대밭이 됐다.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에 대한 임명권한을 제주도지사가 갖겠다며 오영훈 제주도정이 관련 조례를 개정하려하자, 조례 개정에 찬성하는 이들과 반대하는 이들 간의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재단 내부가 완전히 와해됐다.

고희범 이사장이 오영훈 지사의 결정에 반발하며 '사퇴'하는 초강수를 뒀으나, 오영훈 지사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이에 재단 이사진은 일단 이사장 자리에 오임종 전 제주4.3유족회장을 직무대행으로 앉혀 조례 개정 절대 반대를 공고히 하고자 했다.

허나 오임종 직무대행은 재단 이사진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오영훈 지사와 적극 대화에 나서면서 '갈등'을 '화해' 무드로 풀어가려 했다. 이에 재단 이사진은 오임종 직무대행과 정면 충돌했다.

재단은 지난 20일에 제131차 긴급 이사회를 열어 이 문제와 관련 언론 대응에 나설 이를 따로 지정하면서 사실상 오임종 직무대행을 무력화시켰다. 아이러니한 건, 오임종 전 유족회장을 직무대행에 앉힌 건 바로 이들 이사진들이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무려 만장일치로 결정한 조치였다.

▲ 제주4.3평화공원.
▲ 제주4.3평화공원.

# 제주4.3평화재단 이사회, 제주도정에 "중대 결심" 경고

제주4.3평화재단 이사회는 21일 입장문을 내고 오영훈 도정이 조례 개정을 계획대로 밀어부칠 경우 "중대한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이사회는 지난 20일 이 문제로 제131차 긴급 이사회를 열고, 지난 130차 이사회에서 의결했던 '제주4.3평화재단 조례개정안 입법예고'를 철회해 줄 것을 제주도정에 요구한 의결사항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사회는 또한 전임 이사회에서 의결된 비상대책위원회의 활동을 조례개정안이 철회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키로 했다. 이러한 이사회의 입장을 대변할 이사를 선임해 언론 대응을 일원화하기로 했다.

이에 임시 대변인엔 김동현 이사가 담당키로 했다. 이에 따라 재단 이사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오임종 전 제주4.3유족회장이 지난 20일 권한대행직을 사퇴했다.

이와 함께 이사회는 22일까지 입법예고안에 대한 의견을 정리해 제출키로 했다. '제주4.3평화재단 설립 및 출연 등에 관한 조례' 전부개정안이 지난 2일 입법예고됐으며, 이에 대한 의견제출 기한이 오는 22일까지여서다.

그러면서 이사회는 재차 오영훈 도정에 입법예고를 철회하라며, 철회되면 그 때 후속조치를 논의하겠다면서 "그럼에도 계획대로 처리하게 되면 중대한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 오임종 전 제주4.3유족회장.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직무대행을 맡은지 불과 17일만에 사퇴했다. 사실상 '해고' 수순을 밟았다. ©Newsjeju
▲ 오임종 전 제주4.3유족회장.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직무대행을 맡은지 불과 17일만에 사퇴했다. 21일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실상 '해고' 수순을 밟았다. ©Newsjeju

# 오임종, 직무대행 맡은지 20일도 안 돼 사퇴, 왜?

이번 사태로 고희범 전 이사장이 지난달 30일 오영훈 지사를 만난 뒤 사퇴의향을 던지면서 배수의 진을 쳤으나, 먹혀들지 않았다. 재단은 지난 4일에 오임전 전 제주4.3유족회장을 직무대행으로 이사장에 앉혔으나, 불과 17일만에 그만뒀다.

이에 대해 오임종 전 유족회장은 21일 제주도청 기자실에 나타나 입장을 밝혔다. 오임종 전 회장은 "이사장 직무를 얼굴 마담이나 하면서 가만히 있으라고 일부 몇 분의 이사가 작당을 하면서 무력화시켰다"며 "이사회의 결의 내용을 밀어부치면서 이대로 갈 것을 내게 종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오 전 회장은 "재단이 새출발 할 수 있도록 우선 대화의 채널부터 열어보고자 오영훈 지사를 만났던 거였지만, 결과적으로 엄청난 항의를 받아야만 했다"며 "이사회를 소집하려 했지만 그것조차 못하게 막고선 몇몇 이사가 압력을 넣어 대변인을 별도로 만들겠다고 하자 물러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 전 회장은 "직무대행을 맡은 날에도 대화로 풀어가야 한다고 했는데도 이사회에선 조례 개정에 대한 찬반 의견개진은 물론 어떤 의견을 나눠보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철회만 요구하면서 (도지사를)만나지도 말라고 압박을 받았다"고 부연했다. 

특히 오 전 회장은 "최근 두 차례의 회의록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해보면 알 것"이라며 "더는 재단이 4.3영령 팔이, 4.3유족들을 들러리나 세우면서 정치화 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유족회 감사, 재단 측에 이사진 전원 사퇴 촉구

상황이 이렇게 재단 내분이 격화되는 방향으로 흘러가자, 아무런 입장 표명도 없던 제주4.3유족회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이날 오임종 전 회장과 함께 제주도청을 방문한 박영수 제주4.3유족회 감사는 제주4.3평화재단 이사진들을 향해 '전원 사퇴'를 촉구했다.

박영수 감사는 "이렇게 되기 전, 갈등을 봉합해보고자 제가 자처해서 메신저 역할을 하겠다고 해서 이사회로부터 승인까지 받았지만, 정작 개최된 이사회에선 아무런 발언기회도 얻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감사는 "재단이 어느 특정인들의 소유물이 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재단 측에선 이제껏 유족회에 이번 일과 관련해 간담회를 하자거나 어떤 정보를 공유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며 "정의롭게 4.3을 해결해 나가겠다는 단체가 이래도 되는거냐"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박 감사는 "이사회 내부 전원 사퇴하라.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는 문제고 용납할 수도 없다"면서 현 재단 이사진들을 강력히 규탄했다.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지사.
▲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지사.

한편,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비상근직이다. 허나 재단엔 연 100억 원의 혈세가 투입되고 있다. 100억 중 40억 원 정도가 제주자치도의 출연금이다. 

제주도정의 출자출연기관으로 설립됐지만 이사장이 비상근이라 제대로 된 지도감독을 받지 않고 있다. 이러다보니 혈세가 일부 부적정하게 사용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됐고, 급기야 제주도정이 지방공기업평가원에 재단에 대한 컨설팅을 의뢰하기에 이르렀다.

컨설팅 결과가 상당히 충격적이게도 재단 운영을 다른 기관에 맡겨야 한다는 것으로 도출되자, 재단은 강력 반발했고, 제주도정은 이 참에 재단을 다른 출자출연기관들처럼 이사장을 상근으로 돌려 제주도지사가 임명할 수 있도록 조례 개정에 착수했다.

문제는 도지사가 임명할 수 있게 되면, 향후 도지사가 다른 이로 바뀌게 될 시 해당 도지사의 정치적 성향에 맞는 인물이 임명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즉, 제주4.3의 정치화가 우려됐다. 이에 고희범 이사장이 강력히 반발했고, 급기야 사퇴하기까지 했다.

허나 오영훈 지사는 "오히려 공개적인 절차를 통해 임명될 수 있기에 더욱 투명하게 조직을 운영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이러한 우려를 일축하면서 조례 개정 추진을 밀어부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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