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0월18일, 고등학교 '불법 촬영' 사건
의뢰했다는 휴대전화 포렌식 '거짓'···"수사 의지도 없어" 주장
전문가 절레절레, "상식적으로 납득 불가능한 경찰 행보" 

제주경찰청 자료 사진
제주경찰청 자료 사진

최근 도내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불법 촬영 수사가 답보 상태다. 피의자는 자수했지만, 2주가량 조사에 진척이 없다. 심지어 관련 절차도 엉성한 행보다. 피해자와 전문가들은 경찰 수사의 안일함을 지적한다.

2일 <뉴스제주> 취재를 종합하면 제주도내 고등학교 불법 촬영 범죄는 지난달 1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 고교 측은 체육관 여성 화장실에서 불법 촬영 기기(휴대전화)를 발견해 신고했다. 휴대전화는 갑티슈 안에 숨겨져 위장된 상태로 여성 화장실 바닥에 있었다. 휴대폰은 동영상 촬영 기능이 활성화된 상태였다. 

당시 경찰은 범행 도구로 쓰인 갑티슈와 휴대전화를 수거했다고 언론에 설명했다. 또 갑티슈는 지문 감식을, 휴대폰은 포렌식을 맡겼다고 덧붙였다. 

학교에서 불법 촬영 흔적이 나오자, 내부 소행 가능성과 제3의 인물일지 모르는 우려가 공존했다. 피의자는 자수를 택하면서 빨리 특정됐다.

수사는 '자수'로 물꼬를 트는 듯했다. 그러나 사건 접수 2주가 지난 현재까지 피의자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당연히 범행 시기와 가장 중요한 피해자 범위 역시 특정되지 않았다. 

제주경찰은 수사의 어려움이 있다는 입장이다. 

고등학생 신분인 피의자 A군이 정신적 불안감을 호소한다고 했다. 경찰은 A군의 심리 상태를 살피면서 차분하게 수사를 진행하려고 했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을 때, "휴대전화 포렌식을 의뢰했다"고 밝힌 사안이 거짓이었다. 경찰 공식 입장과 실제 수사 진행 상황은 괴리감이 컸다. 

취재 결과 휴대폰 포렌식 절차는 한동안 방치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10월 31일에야 슬그머니 분석 절차를 밟았다. 사건 발생 14일 만이다. 

이 과정도 피해자가 직접 나섰다. 사건 발생 이후에도 A군과 마주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피해자는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 학교당국과 경찰에 문의해도 해결되지 않았다. "언론에 제보하겠다"고 말했고, 경찰은 그제야 휴대폰 분석 작업을 의뢰했다. 

관련 전문가들은 피의자의 심리적 안정 여부를 고려해도, 휴대전화 포렌식 수사 절차는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최근 디지털 성범죄는 재빠른 수사가 관건이다. 휴대폰 포렌식은 범행 시기 특정과 방식, 증거 수집 차원에서 먼저 확인해야 한다. 

이 절차가 중요한 이유는, 포렌식 결과를 토대로 수사 확대 여부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국을 경악하게 만든 N번방 사건 등 최근 디지털 성범죄는 휴대폰 앱을 이용해 클라우드에 저장하게 만드는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혹은 치밀한 범죄자는 주도면밀하게 공기계를 바꿔가면서 범행을 시도한다. 횟수나 피해 규모 등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서다. 

이와 함께 휴대폰을 홈캠처럼 해놓고, 실시간으로 다른 장소에서 엿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존재하는 등 디지털 범죄는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확보된 증거물(휴대전화)을 빠른 시간에 분석하고, 의문점이 든다면 피의자 주거지와 노트북, 외장하드 등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일련의 과정은 최근 디지털 성범죄 수사의 당연한 기본적 절차라고 했다. 2차 피해 예방이 핵심이다. 

통상적으로 휴대폰 포렌식 감식 결과는 빠르면 하루, 분량이 방대하다면 2~3일 정도가 소요된다. 저장했거나 삭제한 불법 영상물도 확인할 수 있고, 외부로 공유하게 하는 프로그램 존재 여부까지 특정할 수 있다. 

전문가는 경찰의 안일한 수사를 두고 "부정적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제주 경찰은 피의자가 범죄 혐의점을 훼손·은닉할 시간을 벌어주는 꼴"이라며 납득하기 어렵다는 소견을 제시했다. 

교육당국과 피해자는 경찰의 불친절하고 방관적인 태도를 지적했다. 

이들은 "경찰에 빠른 수사 협조를 부탁했지만, 담당 경찰은 '휴가다', '바쁘다', '주말에 당직 있으니, 그때 와라' 발언 등을 남발했다"며 "수사에 나설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제주 여성인권연대 송영심 대표는 피해자의 불안함보다 가해자의 정서적 안정을 고려하는 경찰 수사에 아쉬움을 표했다. 

디지털 성범죄라는 하나의 사건은 수많은 피해자로 파생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간과하면 안 된다고 했다. 가해자가 불안해한다면, 심리 상담으로 돌리고 경찰은 본연의 업무를 충실히 해야 피해자가 자신의 일상을 하루빨리 찾을 수 있다고도 제언했다. 

송영심 대표는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성범죄 사건을 경찰이 적극적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을 보이고, 믿음을 심어줘야 유사 사건 발생 시 피해자들은 적극적인 신고에 나설 수 있다"며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잘사는 세상이 곧 정의고, 공평이다"는 소견을 내세웠다. 

제주 경찰은 "확인 결과 적절하지 못한 사안을 발견했다"라며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빠르게 수사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지난달 30일 부임한 신임 이충호 제주경찰청장은 취임사를 통해 "개인의 주관적 불안감·두려움·불편함을 사전에 해소토록 경찰 활동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며 "눈높이에 맞는 공감받는 경찰은 '시대정신'에 부합해야 하고, 도민과 사회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업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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