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촬영 수사, 믿지 못하는 학부모와 피해자 
"사건 발생 50여일···수사 상황 듣지 못하고 있어"
단체 행동에 부담 느낀 경찰, '이례적' 수사 브리핑
경찰-피해자, 무슨 말 오갈까  

▲ 2019년 6월 2일, 고유정 살인사건 브리핑을 경찰이 추진했다. 이날 브리핑은 언론이 단체 보이콧에 나서면서 무산됐다. 피해자 유족 측이 있는 자리에게 언론에게 사건 질문을 하라고 한 사안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Newsjeju
▲ 경찰이 진행한 브리핑 자리가 텅 비어있는 모습 / 2019년 6월 2일, 고유정 살인사건 브리핑을 경찰이 추진했다. 이날 브리핑은 언론이 단체 보이콧에 나서면서 무산됐다. 피해자 유족 측이 있는 자리서 사건 관련 내용을 자세하게 묻는 행동이 유족의 슬픔과 아픔에 결례라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Newsjeju

제주 도내 모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불법촬영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지만, 학무모 등 피해자와 이해당사자들의 불만과 불안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학교의 답답한 대응과 경찰 수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목소리다. 

급기야 피해 학생 학부모들은 'A고 불법 촬영 피해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경찰에 수사 브리핑을 요구했다. 이례적인 행보다. 

7일 'A고 불법 촬영 피해 대책위원회(이하 A고 대책위)'는 이날 오후 5시부터 학교 대강당에서 제주서부경찰서 소속 사건 담당자와 대면 자리를 갖는다. 

도내 사건·사고 중 피해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한 이례적인 공식 브리핑이 성사됐다. 성범죄 사안이지만, 피해자와 학부모 등이 언론에 알리는 행보 역시 이례적이다. 

제주 경찰은 사안에 따라 언론 브리핑을 진행해 왔다. 브리핑은 최근 들어 축소 추세다. '피의사실공표'가 발목을 잡고 있고, 경찰청 본청에서 각 지역 경찰에 사건 보도 축소화를 지시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최근 제주 경찰에서 추진하는 브리핑 유형은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 ▲살인사건 ▲다수의 피해자가 나올 수 있는 경각심이 요구되는 사건 ▲경찰 성과 지표 건 ▲경찰 자체 주력 홍보 사안 등으로 한정된다.  

피해자나 이해 당사자를 대상으로 한 수사 브리핑은 최근 10년간 손에 꼽을 정도다.  

가장 최근 경우는 지난해 12월이다. 제주 유명 음식점 대표가 살해당한 사건으로, 관할 서장이 직접 유족 측을 만나 사건 개요를 설명하는 브리핑과 심심한 위로를 전한 바 있다. 

시간을 거슬러 2019년, 잔혹한 강력 사건의 대명사가 된 '고유정 살인사건'도 피해자(유족)를 대상으로 공식 브리핑을 추진했었다. 

이 건은 당시 서장이 언론 브리핑 자리에 유족을 초청해 '논란'이 됐다. 유족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 살인 방식 등 수위 높은 질문을 언론이 던지기가 부담스럽다는 배경에서 비롯됐다. 결국 2019년 6월 2일 언론과 유족을 동반해 경찰이 추진한 사건 브리핑은 기자들이 단체로 보이콧(브리핑 거절)하면서 성사되지 않았다. 

제주도교육청
제주도교육청

이날(7일) 오후 A고등학교에서 피해자와 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진행될 브리핑은 이례적이지만, 경찰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후속 대책이다. 

피해 학생 학부모들로 구성된 'A고 대책위' 측은 사건 진행 경과와 무성한 소문들을 확인할 수 없어 답답함을 호소한다. 

A고 화장실 불법 촬영 사건은 올해 10월 18일 발생했다. 학교에서 발견된 불법 촬영 휴대전화는 갑티슈 안에 숨겨져 위장된 채 동영상 촬영 기능이 활성화된 상태로, 체육관 여성 화장실에서 나왔다.

피의자는 같은 학교 3학년 남학생으로, 수사를 진행하면서 불법 촬영 장소가 다양하고 수많은 피해자(교사 + 학생)가 담겨 있는 영상물도 확보됐다. 

문제는 사건 발생 51일이 지났지만, 불법 촬영 피해를 당한 사실을 여전히 알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존재한다. 또 제주도교육청이 언론을 대상으로 관련 브리핑을 진행하면서 '피해자만 300명'이라는 자극적인 보도가 쏟아져 나오면서 불안감이 가중됐다. 

피해자 300명은 학교 여학생과 여교사들을 합산한 수치로, 경찰은 지난 6일 가해자 구속을 알리면서 피해자 규모를 50여 명이라고 바로 잡았다. 바로 잡는 과정만 15일이 지났다. 

수사를 진행하는 경찰은 중간 내용들을 학교 측에 전달했다. 학교는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사실을 전파하지 않고, 숨기면서 불안과 불만이 증폭됐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경찰의 초동 수사 역시 부실했다. 대표적인 예로 불법 촬영 사안으로 가해자 학생이 구속되기까지 소요된 시간만 50일이다. 불법 촬영 사건은 빠른 포렌식과 촌각을 다투는 압수수색으로 유포 여부를 확인해야 했지만, 안일했다는 지적도 피해자 측에서 나온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두고 "피해자를 특정할 만한 영상물은 유포되지 않았다"고 언론에 설명했다. A고 학생들과 교사들의 주장과는 다르다.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불법 영상물을 캡처했거나 다른 사건 범죄 영상물을 전송하는 것을 목격 혹은 들었다고 주장한다. 이 부분을 몇 차례 경찰에 건의했고, 물어봤으나 명확한 답변은 듣지 못했다고 취재진에 전했다. 

유포 여부를 두고 경찰이 언론에 설명한 "피해자를 특정할 만한 영상물은 유포되지 않았다"는 문장을 뜯어보면, 영상물 캡처본은 존재한다는 말로도 해석된다. 단지 '피해자의 얼굴이 나오지 않았다'는 우회적인 답변이다. 

피해자 학부모로 구성된 'A고 대책위'는 여러 소문을 확인하고, 정확한 피해 범위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경찰에 요청한 수사 브리핑도 이 맥락이다. 

당초 A고 대책위는 수사 브리핑을 요청하면서 삼자대면(경찰 - 피해자 - 언론)을 추진했다. 그러나 언론과 함께 하는 브리핑에 부담을 느낀 경찰이 역제안했다. 언론이 참석하지 않는다면, 학부모들에게 내용을 소상히 설명하겠다는 것이다. 대책위는 경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경찰이 학부모들 대상으로 진행할 '불법 촬영 사건 브리핑' 수락은 다른 부담감도 존재했다. 거절 시 서부경찰서를 찾아 집회에 나서겠다는 학부모 측의 선전포고다. 

이날 경찰과 만날 피해자들은 불법 영상물 유포 여부와 사건 개요 등 전체적인 궁금증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된다. 

A고 대책위 측은 "(이번 브리핑은) 부실 수사에 대한 시민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경찰에 대한 불신을 만회할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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