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참여환경연대 "수의계약 사유 밝히지 않은 현황 공개는 무의미"
"도지사 지인 업체에 수의(계약) 하나 주라"
"의원 예산이니 의원한테 물어봐아 한다"
"여기저기서 압력 넣으니 입찰로 넣으려고 해도 빠꾸 당하고 너무 힘이 든다"
"다음 선거를 대비하려는 것인지 올해 부쩍 심해졌다.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
올해 2월 제주시청 공직자 익명 게시판인 '골을樂(락) 들을樂'에 게시됐던 글이다.
이 글을 두고 제주참여환경연대는 26일 성명을 내고 "도지사 지인이거나 도의원이 올린 예산인 경우, 수의계약으로 하라는 강요가 있었다는 말이고, 도의원에게 어느 업체에 수의계약을 줄지 물어봐야 한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해석하면서 민선8기 오영훈 제주도정이 들어선 이후 수의계약 비율이 전임 원희룡 도정 때보다 무려 4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위 글을 봤던 당시의 공무원들은 "완전 공감한다"라거나 "담당자만 새우 등 터진다"는 댓글을 달며 파장을 일으켰다. 제주도의회에서도 이를 지적하자 당시 제주시 부시장은 "최근 1년치 수의계약을 다 들여다보겠다"고 답했지만, 자격도 없는 업체와 수의계약을 체결하는 등 많은 위반 사례가 적발되면서 여러 건의 업자와 공무원들간의 유착비리가 드러났다.
제주참여환경연대는 수의계약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올해 10월 6일부터 11월 24일까지 제주도 계약현황 게시판에 게시된 5만 9009건의 사례에 따른 모든 데이터를 종합해 본 뒤 분석한 결과를 이날 공개했다. 5만 9009건은 원희룡 전임 도정 2기 4년차였던 2021년 7월 1일부터 오영훈 도정 3년차 마지막 날인 2025년 6월 30일까지의 기록이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임 원희룡 도정 때를 제외한 오영훈 도정 하에서 이뤄진 수의계약은 총 4만 6082건이다. 액수로는 1조 114억 150만 원이다. 특징적인 건, 서귀포시의 수의계약 건수가 오영훈 도정이 들어선 이후 액수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원희룡 도정 2기 4년차에 이뤄진 수의계약 총액은 330억 원이었고, 그 직후 오영훈 도정이 들어서면서 1년차에 724억 원으로 급증했다. 이후 오영훈 도정 3년차엔 서귀포시에서만 1332억 원에 달하는 수의계약이 이뤄졌다. 이 때 제주시는 641억 원, 제주도 본청이 418억 원이었던 것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차이를 보인다.
'수의계약'은 경쟁 입찰을 거치지 않고 특정 업체를 선정해 체결하는 계약 방식을 말한다. 제도의 성격상 올바르게 체결하지 않으면 특정 업체를 위한 '특혜' 의혹에 휩싸이기 쉽다. 이 때문에 법적으로 공사·용역·물품 계약은 2000만 원 이하에서만 수의계약을 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다만, 여성·장애인·사회적기업에겐 5000만 원까지 가능하도록 예외를 두고 있다.
2000만 원 이하로 수의계약을 할 수 있다해도 제주에선 횟수와 총 계약 체결 금액에 제한이 걸려있다. 조례를 통해 공사나 용역은 1년 내에선 3회, 총 6000만 원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으며, 물품 계약일 경우엔 연 5회나 총 5000만 원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제한을 두고 있다. 다만, 여성·장애인·사회적기업에겐 누적금액이 1억 원까지 허용하고 있으며, 긴급이나 천재지변, 특허, 특수공법, 마감공사, 하자책임곤란 등으로 발생한 금액은 제외된다.
문제는 오영훈 도정이 들어선 이래 2000만 원을 초과하는 수의계약 비율과 액수가 계속 불어나더니 3년차엔 무려 4215회에나 예외사항이 적용됐다는 점이다. 계약금액만 2700억 원 규모다.
이를 두고 제주참여환경연대는 "물론 4215회의 계약 건이 모두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니겠지만, 수의계약을 부문별로 보면 토건 인프라(주로 도로건설) 관련한 액수가 1328억 원에 이르는데 이 분야의 수의계약은 대부분 레미콘과 관련한 물품계약이 많다"며 "제주엔 많은 레미콘업체들이 있기에 경쟁입찰을 해야하는데도 불구하고 레미콘협동조합에 수의계약을 주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며 "이 외에 각종 행사에 144억, 행정체제개편에 14억, 차 없는 걷기 행사에 2억 3400만 원 등 오 지사의 핵심 공약과 관련한 수의계약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주참여환경연대는 "자료를 분석하면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보이는 건, 수의계약 관련 정보공개가 부실하다는 것"이라며 "타 지역에선 수의계약 시 계약사유는 물론 물품별 내역과 단가까지 공개하고 있지만 제주도정은 투명성을 담보할 만한 이러한 내용은 일절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제주참여환경연대는 제주연구원이 올해 11월에 발표한 '민선8기 3년 제주도정 성과 도민 인식조사'에서 나타난 문제점도 곁들었다. 이 조사에서 부정평가가 33.9%였는데, 부정 평가의 가장 많은 이유(36%)가 행정의 불투명성과 불공정성을 꼽았다.
이에 제주참여환경연대는 "수의계약이 불투명하고 불공정하다면 법적 책임까지 물어야 하는 사안"이라며 "만일 그러지 않고 투명히 집행했다면 지난 3년간 이뤄진 수의계약의 구체적 사유와 물품 내역 등의 상세한 정보를 모두 공개하면 될 것"이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제주참여환경연대는 내년 지방선거까지 '청렴한 제주를 만들기 위한 수의계약 파헤치기'를 권력 감시의 주요 활동과제로 삼고 매진하겠다고 선언했다.
